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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인환 Apr 15. 2020

오늘, 공포영화 그리고 받아들임

힘을 빼고 마주했을 때야, 사실 별게 아니었단 걸 깨닫게 되었다.

 일요일, 친구와 조조영화를 보러 갔다. 사람들은 다섯도 채 안되어서 우리들은 각자 섬처럼 떨어져 앉았다. 안락했던 조명이 점차 옅어지고 곧 어둠으로 가득 찬 극장. 사람들은 그렇게 검은 바다 위 표류하는 부표에 매달린 마음으로 공포영화를 보게 되었다.


 소리가 커지고 무서운 장면이 예고될 때마다 고민했다. 눈을 감아야 할까, 아니면 눈을 크게 떠야 할까. 내 나이 서른셋. 그냥 초연히 쳐다보기로 했다. 설마 경기를 일으키진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런데, 생각보다 무섭지 않다. 내려놓은 마음으로 받아들인 장면은 과장된 연극처럼 괴상할 뿐.


 지난날 놀이동산에 끌려가 바이킹을 처음 탔던 때가 떠올랐다. 특히 허공에 붕 뜬 감각이 싫다. 안전벨트도, 묵직한 의자도 홀연히 사라진 구간. 살기 위해 난간을 꽉 붙잡았다. 그렇게 버텨오다가 체념하고 힘을 뺐을 때. 트인 입가로 스며드는 바람과 훤한 풍경 그리고 상쾌한 봄 저녁의 쾌감이 들어찼다.




 가끔 안 좋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다른 생각으로 회피하려 한다. 미처 그런 시도조차 생각하지 못했을 땐 그 기분 그대로 밤을 지새우곤 한다. 악감정이 농익기 시작할 때면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털어놓듯 일기를 쓰곤 했다. 그렇게 포기한 채 힘을 빼고 보기 싫었던 걸 마주했을 때야, 얄밉게도 사실 그것들은 별게 아니었단 걸 깨닫게 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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