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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인환 Jul 19. 2020

오늘, 일요일 저녁의 풍경

그저 지금의 평온한 기분을 조금 더 느끼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평일의 마지막. 금요일 늦은 저녁, 회사 정문 앞에서 셔틀버스를 기다렸다


 해가 저문 차로. 사람들은 부는 바람에 머릿결을 흩날리며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하얀 화면 빛이 힌 그들의 표정을 몰래 바라보는 중이다. 늘어선 자동차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거대한 셔틀버스는  한숨과 함께 문을 비스듬히 열어주었다.


 창가  좌석에 앉아 습관처럼 블라인드를 활짝 열였다. 저기  , 해가 저무는 풍경이 보인다. 힘을  빼고 창틀에 팔꿈치를 걸쳐 턱을 괴었다. 회전하는 교차로를 들어서자 눈앞은 금세 자동차 불빛으로 가득 채워졌다. 아직은 초여름. 차가운 에어컨 기류 사이로 붉은 램프 빛 따뜻한 온기로 다가온다. 일렬로 늘어선 붉은 등은 검은 바다의 부표처럼 우리들의 경로를 안내해주었다. 나도  경로를 따라 밀린 빨래와 미처 끄지 못한 조명등이 밝히는 집으로 가는 중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머릿속에 가득했던 업무들이 하나둘씩 지워진다.


 셔틀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할 때 즈음 음악을 끄고 이어폰 줄을 묶어 가방에 넣었다. 언젠간 무선 이어폰을 사야겠다 생각하며. 사실 어떤 걸 살지도 정해놓아서 바로 구매 버튼을 누르면 끝나는 일인데 아직 사지 못했다. 이어폰을 살 결정적인 동기나 의욕이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룬 일들이 너무나 많다.



 주말에 할 일이 무척이나 많다. 미룬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학원 수업을 다시 등록해야 하고, 영어시험을 다시 칠 필요도 있다. 운동도 해야 한다. 그런 결제가 필요한 일이 아니라도 또 할 것은 너무나 많다. 글을 쓴다면 일기, 에세이 혹은 새로운 소설을 쓸 수도 있고 그림을 그린다면 펜으로, 잉크로, 혹은 태블릿으로 쓸 수도 있다. 그런 여가생활이 아니더라도 월요일에 출근하면 바로 일을 할 수 있게, 미리 아이디어나 컨셉을 짜 둘 수도 있다. 산더미 같은 할 일을 뒤로한 채, 나는 보통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말을 보낼 때가 많다. 순간의 의욕과 의미에 따라 나는 하루 종일 밤을 새우며 작업하기도, 온종일 잠을 자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의욕과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끝없이 스스로를 세뇌하곤 한다.


 의욕은 마치 도핑 약처럼 한없는 행복과 최고의 컨디션을 부여하기도, 없을 때는 알 수 없는 무기력함에 빠뜨리기도 한다. 


 어제는 갑자기 신발 커스텀을 하고 싶어서 새 신발에 매직을 칠했다. 구글에서 레퍼런스를 검색하고 태블릿으로 시안을 만든 뒤, 세 시간 동안 칠하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반대로 오늘 나는 아침 8시에 일어나 아침을 주문해 배불리 먹고 다시 잠들었다. 오후 1시에 다시 눈을 떴고 개운한 기분으로 멍 때리며 잠깐 시간을 보내다 몸을 씻고 밖을 나섰다. 그러다 지하철 역에 도착했을 때, 주머니에 카드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고민 끝에 집으로 돌아가 카드 한 장을 챙긴 후 지하철을 타고 카페에 도착했다. 


 곧 장마가 올 예정이다. 습기 가득한 날씨 때문인지 나는 금세 땀범벅이 되었다. 그럼에도 기분이 좋다. 논현역에서 신논현역까지 걸어가는 동안 부는 바람이 땀을 날려주었다. 몸이 상쾌하다. 일요일, 문 닫은 도시의 풍경은 흐린 하늘 때문인지 낯설어 보인다. 천천히 걸으며 멀리 보이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그들의 옷차림과 걸음걸이를 보며 그들의 심정과 하루를 상상하며. 그러다 내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아무런 걱정도 없고 해야 할 일들도 생각나지 않는다. 지금 나는 건조한 피부로 카페 안에서 에어컨 바람과 함께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교차로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중이다.

 

 그냥 기분이 좋다. 지금 이 순간, 의욕과 의미는 없다. 그래서 열정도 자괴감도 없다. 그건 또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그저 지금의 평온한 기분을 조금 더 느끼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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