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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인환 Nov 08. 2020

오늘, 두 번의 열차와 한 번의 기일

동생은 액자로 내 머리를 살짝 때리며 또 버릇없이 말한다 다그쳤다.

 저번 주 금요일, 휴가를 썼다. 아버지 기일이라서. 썩 내키진 않았지만, 내려가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열차 시간보다 한 시간 반 정도 먼저 나섰다. 남성역에서 이수역까지 걸어갈 생각으로. 2주 전 친구들에게 떠밀려 등산을 갔던 관성 때문이다. 정장 차림으로 검은색 보스턴백을 들고 대낮 거리를 걸었다. 땀이 셔츠 깃에 스며들 때까지 2.5km을 걸었다.


 열차 안, 좌석 트레이를 꺼내 가방을 올려두고 음악을 들었다. 지나치는 차창 풍경을 바라보다 잠든 동안 해가 져버렸다. 열차가 멈췄을 때 결심했다. 이번에는 최대한 반듯한 얼굴로 원만하게 제사를 지내자고.


 미리 집에 연락하지는 않았다. 내가 몇 시에 도착한다고 말을 하면, 모두가 그 시간에 맞춰 기다릴 것이고 동생은 차를 몰고 나를 배웅하러 온다. 그런 것들이 부담이다. 그들의 입에서 내 이름이 오가고, 내가 해야 할 역할을 미리 정한 뒤 그만큼의 기대를 거는 것이. 그래서 창원 중앙역에 도착하고 나서 화장실에서 손을 씻은 뒤 아이스커피를 주문해 반을 마신 다음에야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동생은 왜 창원에 왔냐고 물었다. 아버지 기일은 다음 주라고.


 벤치에 앉아 고민했다. 이대로 다시 올라갈지, 얼굴을 비추고 갈지. 아니면 하루를 묵은 뒤 올라갈 것인지. 그러다가 갑자기 한 밤. 검은 정장과 넥타이, 구두를 신고 온 내가 '아버지 기일을 잘못 알았다' 천연덕스레 얘기하며 가방을 던져놓는 모습을 상상했다. 할머니와 친척들의 마음이 쓰릴 것 같다. 나는 다시 한 시간 뒤 열차를 예약한 뒤 서울로 올라갔다. 동생에겐 비밀을 당부하며.


 늦은 밤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도착했다. 가방은 그대로 두었다. 다음 주에 다시 쓸 거니까. 한동안 불 꺼진 거실, 소파에 누워 아버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더는 그에 대한 글을 쓰기 않기로 했지만, 그렇다고 마주칠 일들을 피할 순 없다. 사실 고백하자면 평소에도 꿈에 꽤 아버지가 자주 나타난다. 그와 나는 예전처럼 일상을 보내고, 사소한 얘기를 한다. 가끔은 꿈의 특징처럼 기이한 일들을 함께 겪기도 한다. 그래서 의식하지 않아도 그를 기억하며 미온의 유대감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제사를 지낼 때면 나는 패륜아에 가까워진다. 가족과 친척들에게 못된 말을 한다. 그리고 상처 받은 그들의 표정을 보며 나 역시 상처를 입게 된다.




 다시 금요일 휴가를 썼다. 아버지 기일을 잘못 알았다고.


 아버지 기일 얘기가 나올 때면 사람들은 진중한 얼굴로 미안해한다. 그럴 때면 내가 미안해진다. 그들에게 슬픔과 안쓰러움을 강요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나는 더욱 아버지의 기일을 가볍게 말하게 된다. 기일은 너무 무겁다며, 앞으로는 아버지 제삿날이라고 말하겠다고 했다. 아버지가 병풍 뒤에서 향 맡는 날이라며. 사람들은 웃었다. 누군가 이 말을 들으면 깜짝 놀라 비난할 걸 안다. 그럼에도 그들을 무겁게 하고 싶지 않고, 나 역시 그들 때문에 매년 의기소침해지는 게 싫다.


 금요일, 늦은 오전에 일어나 저번 주와 같은 차림으로 밖을 나섰다. 다른 점으로는 시간이 촉박해 저번처럼 이수역까지 걸어가진 않았고, 이번에는 목베개와 안대를 챙겼다. 저번 주에 본 그 푸른색 남자의 영향 때문이다.


 밤 9시가 되었을 때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도착했다. 어머니와 친척들이 변함없이 우리 집에 앉아있다. 나는 짐을 놓고 한동안 방구석에서 나오지 못했다. 흘러가는 대로 TV 화면을 보며 앉아있는 그들 곁에 앉기가 힘들었다. 직감했다. 나는 아직도 거부하고 있는 중이라고.


 제사는 11시 반에 시작할 거라고 삼촌이 말했다. 나는 한숨을 내보이며, 졸리겠네요 라고 말했다. 삼촌이 종이에 한문을 적어야 한다고 말했다. 동생이 사진이 있으니 지방을 쓸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삼촌은 그래도 쓰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게 한문의 의미, 어떻게 쓰면 더 정갈할지, 그리고 한문의 획 순서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작년처럼 화가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종이에 글씨를 반항하듯 휘갈겨 썼다가, 다시 심호흡을 하고 정갈히 글씨를 쓰고는 나를 바라보는 삼촌에게 연습한 거라 변명했다. 쓰는 김에 몇 장을 더 썼다. 다음번에 또 화날 일이 없게. 제사가 시작할 때 즘, 방에 들어가 있던 내게 장손이 왜 아무것도 안 하냐고 아버지의 동생이 타일렀다. 나는 내 동생이 장손을 하면 되겠다며, 멀치감치 떨어졌다. 그러다가 옆에서 날 바라보는 어머니와 고모의 존재가 느껴졌다. 저번처럼 더는 그들을 힘들게 만들고 싶지 않다. 나는 인형이 되어 시키는 대로 절을 하고 술을 받았고, 그렇게 제사는 금방 끝이 났다. 잠깐 집 밖에서 친척들과 바람을 쐬는 동안에는 또 금세 기분이 좋아져, 농담을 꺼내었다. 스스로가 이상했고, 갑갑했다. 다음 날 아침, 여전히 걸려있는 아버지 사진을 보며, 저 우울한 표정이 싫다고 치워버리라고 동생에게 말했다. 동생은 액자로 내 머리를 살짝 때리며 또 버릇없이 말한다 다그쳤다.



 가끔 꿈에서 만나는 아버지와 즐거운 감정을 보내면서도, 제사를 지낼 때면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아버지는 향을 피워서 우리가  년에  번씩 사후 세계에서 불러낼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준비한 음식들이 부질없는 장식이란 생각이 들고, 올리는 절이 우스꽝스러운 율동으로 느껴진다. 제사의 순서는 사실 잠깐 검색해서 외우면 되는 것인데도, 여전히 모름을 고수하는 중이다. 동시에,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아프게 만드는  역시 못난 이란 걸 조금씩 깨닫고 있다.




 다음 날 친척들과 남은 제삿밥으로 아침을 먹고 긴 낮잠을 잤다. 그리고 동생이 모는 차를 타고 어머니와 함께 바닷가로 갔다.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장어구이를 먹고 근처 카페에서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백화점에 들러 어머니가 점찍어 놓았다는 가방을 사주었다. 생각보다 비싸지 않아서, 마음이 좋지 않다. 어머니는 지난 8년간의 청약저축을 끝냈다며 통장을 쥐어줬다.


 집에 도착했을 때, 치매에 걸린 외할머니가 집에 와있었다. 몇 달 전부터 어머니와 함께 사는 중이다. 예전 내 방에는 치료를 위한 공부방이 차려졌고, 욕실에는 변기 보조 팔걸이 그리고 세신용 의자가 있다. 어머니의 노동이 그려졌다. 키 작은 외할머니는 내 배를 꼭 안으며 저녁을 먹으라고 말했다. 나는 점심을 배불리 먹어서 괜찮다 말했다. 잠깐 뒤에 외할머니는 내게 같은 말을 했고, 나 역시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재활사가 나와 친하다고 했다며, 그의 얼굴을 아냐고 물었다. 당연히 모른다고 했다. 그러자 외할머니는 그가 날 안다고 말했었다며, 계속 다그쳐 물었다. 그를 안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해야 할지 무엇이 올바른 대답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를 모른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외할머니는 재활사인 그가 편한 대로 말을 지어내며 이어갔다는 걸 알 수 있고, 반면에 내가 그를 안다고 거짓말을 하면 손주 역시 자신을 치매라 생각하고 흘러가는 대로 대답했다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가벼운 질문이 외할머니에겐 중요해보였고, 그래서 내겐 복잡하고, 무거웠다.


 동생과 함께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 동안, 인스타 페이지에서 치매에 걸린 척 몰래카메라를 한 노부부의 영상을 보았다. 남편은 요양원을 가겠다는 아내에게 아무 데도 가지 말라고 했다. 일을 접고 오직 당신을 보살피겠다고. 패널들과 함께 감명을 받은 나 역시 그렇게 말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이 든다. 남겨진 외할머니와 어머니에겐 해당사항이 없단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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