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One More Step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워홀러 류 씨 Aug 03. 2016

Monaco

2016년 7월 4일, 모나코에서.

04.07.2016 Monaco


평일엔 에체에서 모나코까지 바로 오는 버스가 운행 중이다. 예전에 프랑스의 콘서트장은 입장 대기 번호로 기다리는 것 없이 무조건 치고 들어가더라(?)는 후기를 본 적이 있다. 모나코로 가는 버스를 탈 때 그 후기가 생각났다.


모나코는 기대한 만큼 실망했다는 후기들을 꽤 보았고, 나 역시 '온 김에 찍고 가는' 데에 의미를 두었기 때문에 큰 기대는 없이 방문한 곳이다. 하지만 역시 기대한 만큼 실망하고 기대하지 않은 만큼 만족하게 되나 보다. 나는 모나코에서 보낸 짧은 시간이 너무나도 좋았다.


사실 볼 건 없었다. 작은 마을만 한 곳에 무엇이 있겠는가. 일단 왕자궁(?)은 필수 코스인 것 같고, 머물던 니스의 숙소에서 받은 팸플릿에 정박된 고가 요트들이 볼만하다는 문구를 본 정도다.


일단 모나코에 도착하는 버스는 몬테카를로에서 정차한다. 그리고 모나코를 출발하는 버스는 반대편인 왕자궁 쪽. 시간은 3시간 정도 있으니 걸어서 움직이기로 했다.


카지노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아마 이 작은 공국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이 아닐까 싶었다. 전 세계에서 온 여행객들이 깃발을 든 가이드를 따라다니며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앉아서 한 40분 이상은 하늘과 바다를 바라본 것 같다.

큰 이유는 없었다. 꽤 높은 높이에서 내려다보아도 물속이 다 보일 정도로 맑은 물에 기분이 좋았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도 기분이 좋았고, 주변에 제비와 갈매기가 많아 내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그들을 멍하게 바라보았을 뿐이다. 식비를 줄일 생각으로 간식으로 가져온 트롤리 젤리를 먹으면서.

그냥 좋았다. 이 시간이. 조용했고, 덥지도 않고 적당히 선선했고, 바람은 기분이 좋았고, 혼잡한 머릿 속도 조용해졌다.


나는 딱히 여행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큰돈과 긴 시간을 모두 투자해야 하는 게 여행 아닌가. 살면서 그럴 여유가 없었다. 늘 학비와 생활비에 쫓기는 하루살이 시급 인생이었다. 한 시간 한 시간을 일해 모은 거액의 돈을 여행이라는 단 며칠간의 시간에 모두 쓸 만큼- 나는 대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언제 유럽에 또 살아보겠냐며 없는 여유를 쪼개 여행을 다녀보기로 했다. 유럽에 살고 있는 지금이 아니면 유럽 여행은 힘들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그저 잠깐 머리 아픈 상황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새로운 것들을 보고 자극받는 것을 좋아한다면 더더욱.


이래서 다들 여행을 다니는구나. 서른 살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 조금 더 어릴 때 왔으면 좋았을 텐데. 20대 때 왔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모나코에서도 엄마 생각이 났다. 이번 여행은 어디를 가든 엄마에게 보여 주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니스와 앙티브도 물론이지만, 모나코도 엄마를 꼭 모셔오고 싶다. 물도 바다도 좋아해서 엄마의 마음에 꼭 들거라 생각하지만, 무엇보다도 엄마는 어릴 적부터 모나코의 왕비였던 그레이스 켈리의 팬이다.

바다가 보이는 길을 쭉 걷다 보면 항구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부터 모나코의 '슈퍼 요트'들을 볼 수 있게 된다.

살면서 이렇게 억 대의 돈 향기 나는 물건들이 한 곳에 모인 것은 본 적이 없다. 자동차는 잘 모르지만 굳이 자동차로 말하자면 '페라리 전시장'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돈 향기 나는 요트들도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놀랄 요소들이지만, 내가 정말 놀란 것은 항구의 수질이었다.

보통 항구라 하면 배가 정박되어 있고, 때문에 나뭇잎, 쓰레기 등이 쓸려와 부둣가에 가득 떠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모나코의 항구는 쓰레기는커녕, 물이 너무나도 맑고 투명해서 발 바로 밑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게 보일 정도였다. 여기 정말 항구 맞나요? 내가 알던 항구랑 너무 다른 걸요?

모나코에서 관리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깨끗한 수질이 지중해의 날 때부터 축복받은 수질인 건지. 니스와 앙티브의 해변가를 떠올리면 모나코에서 관리한다가 30% 타고난 축복받은 수질이 70%쯤 될 것 같다.

일단 배가 고파 밥을 먹기로 했다. 모나코는 물가가 비싸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상점가로 보이는 곳으로 이동해 그곳에서 파스타를 먹었다. 싼 곳을 찾아 들어간 거라 그런지 인근 프랑스에서 먹은 것들과 비슷한 가격대였다. 그리고 서둘러 왕자궁으로.

왕자궁은 산(?) 위에 위치해있다. 올라가는 길에 모나코의 전경을 볼 수 있다.


왕자궁은 시간이 늦기도 했고 버스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후딱 보고 말았다. 관내 여기저기에 그레이스 켈리의 사진이 장식되어 있었다.

내려오는 길은 저무는 햇빛이 반사되어 금색으로 빛나는 모나코를 볼 수 있었다.


여행 당시 남긴 메모를 보니 '신선놀음하기 딱 좋은 곳'이라고 적어두었다. 하하.

버스가 예정 시간보다 늦게 오기는 했지만 무사히 니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워낙 여행할 때마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나는 데다가, 이번 여행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던지라 이렇게 하루가 무사히 끝나간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물론 그럴 리가 없다. 내 여행이다.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눈물의 밀라노...

매거진의 이전글 Èze/Franc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