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워홀러 류 씨 Mar 15. 2017

Collingwood, Melbourne

호주 멜버른 콜링우드에서.

Collingwood, Melbourne


05.06.2015




이 날로부터 3일 후였던 6월 8일은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생일로, 영연방이었던 호주에서는 공휴일이었다. 2015년 여왕님 생신일에 나는 내 왼쪽 팔을 부러뜨려 먹었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상처 없는 나의 왼팔로 찍은 마지막 사진. 콜링우드의 사진을 찍은 후 그다음 사진을 찍기까지, 깁스를 풀고 주치의의 확인을 받기까지 두 달이 넘게 걸려 현상하기까지 오래 걸린 필름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팔이 부러졌던 일을 이야기하고, 신경도 쓰지 않고 살고 있지만, 아주 가끔 상처가 없던 내 팔이 그리워져 슬퍼질 때가 있다. 

워킹홀리데이 12개월 중 8주를 집에서 누워만 있었다. 감정의 기복은 있었지만 우울증 없이 보낸 것이 신기한 두 달이었다. 독일에서 어학원을 다니기 위해 모아 두었던 돈은 모두 써버렸고, 덕분에 독일에서의 생활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의 위력은 생각보다 컸다. 그동안 생각했던 것과 점점 멀어지기만 해 괴리감만 잔뜩 느낀 나는 독일 워킹홀리데이 생활은 12개월을 다 채우지 않고, 여동생의 결혼식에 맞춰 8개월로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왼팔 안에 박혀있는 두 개의 철심을 제거할 것인지는 고민 중이다. 당시 수술을 집도했던 주치의는 내게 2년 후에 원하면 빼도 되고 안 원하면 안 빼도 된다고 말했다. 생활에 불편함은 없지만 어딘가에 부딪히면 눈 앞이 노래질 정도로 아프고, 살면서 MRI 촬영을 하게 될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볼트가 두 개의 뼈에 각각 6개씩, 총 12개가 박혀있기 때문에 볼트를 제거하면 뼈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상태가 될 것이고, 뼈가 다 채워질 때까지 몇 달은 걸릴 것이다. 행여 깁스라도 하게 된다면 또 팔꿈치와 팔목 근육이 움직임을 회복하는 데에 수 주가 걸리겠지. 상처는 두 개에서 네 개로 늘어나거나, 기존의 두 개가 더 진해 지거나. 이 나라 저 나라 떠돌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입장에서 긴 시간과 큰돈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서 제거를 할 것인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다쳐서 수술을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농담이랍시고 가장 많이 한 말은 '시집은 다 갔네'였다. '길 가다 깡패들 만나면 보여줘라. 솔직히 니 상처 무섭다.'도 있었고. 나도 '내가 결혼을 하든 말든 네가 뭔 상관이냐. 몸에 상처 있다고 안 데려가는 놈이라면 나도 그런 놈이랑은 안 살아.'라고 받아쳤다. 여자 몸에 상처가 나는 것에 유독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동양만 그런 것일까. 가치가 떨어진다고 보는 걸까. 내가 물건이야? 상처 있으면 가치가 떨어지게. 상처를 가리지 않는다. 가릴 필요성도 못 느끼고. 가끔 서빙 일을 할 때나 팔이 짧은 옷을 입고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손잡이를 잡고 있을 때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기는 하지만, 그게 내 생활에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아, 이 사진들을 보니 괜히 우울해져서 쓸 데 없는 이야기를 썼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고와 수술을 계기로 나는 호주로 돌아와 이민을 준비하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Canon AE-1

필름 정보 없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