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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석류 Sep 22. 2020

상호작용의 조정자  문화입법 보좌관 류지영

[문화다원 No6] 예술人기획人행정人 부족 간 인터뷰 프로젝트

여섯번째 좌표는 국회에서 문화입법 분야에 계신분을 만나보았습니다. 자신이 서 있는 좌표에 따라 보이는 지평이 다릅니다. 고도에 따라서도 영향을 줍니다. 높은 곳에서 보면 넓게 보이고, 낮은 곳에서 보면 자세히 보입니다. 고도가 높은 곳 중에 하나가 국회일 것입니다. 넓게 보며 일을 하지만 자세히 보고 느낄 수 있는 연결이 필요한 곳입니다. 국회를 통해  문화예술 분야도 다양한 법의 적용을 받고, 그 법에 따라 문화예술 조직에 역할이 부여되고, 정책예산을 흐르게 합니다. 국회 문화입법 분야에서 지속적인 경험을 가진 분이 바라보는 지평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상호작용의 조정자, 문화입법 보좌관"


1. 이름은? 사회에서 연차는 어떻게 되시나요?    

제 이름은 ‘류지영’입니다. 처음 만나는 분들은 이름으로 연상된 모습과 많이 달라 조금 당황(?)해 하기도 합니다. ^^ 스물일곱에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니까, 연차가 25년 정도 되네요  


2. 어떤 일을 해 오셨나요. 일터(작업의 공간)에서 당신의 역할을 소개해주세요.     

지금 저의 일터는 국회입니다. 사회생활의 첫 시작은 대기업이었는데, 뭔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창의적인 스타일이라 2년 만에 사표를 내고, 컴퓨터 장사와 IT벤처기업을 거쳐 2002년부터 국회에서 의원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운이 좋게도 문화·관광·체육분야를 소관하는 일을 15년 좀 넘게 했고, 지금은 과학·방송·통신분야를 소관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기술과 콘텐츠가 경계를 넘나들고, 플랫폼과 콘텐츠의 상생과 경쟁이 가파르게 전개되며, 장르와 장르가 합쳐 새로운 장르가 개척되는 융합의 시대라고 보면 크게는 줄곧 문화분야에서 일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네요.


국회가 입법기관이다보니까 주로 해당 분야의 법(제도)을 만들고, 정부의 정책을 견제나 보완하기도 하고, 예산의 편성과 집행을 살피면서 법과 정책의 시행이 예산과의 결합을 통해 적시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솔직히 생각보다 만만치는 않습니다.    


3. 한번 떠올려 주시겠어요. 당신이 하는(해 왔던) 일을 선택했던 내적인 욕구, 초심, 계기, 우연 등은 무엇이었나요?    

17대 국회(2004년)에서 문화분야를 시작하면서 나름 욕심, 또는 포부가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예술인에 대한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인식은 물론 정부의 지원정책 또한 미비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문화산업은 장르별 분화가 이루어지며 독립적인 발전의 길을 가고 있는데 이에 조응하는 개별지원법도 부재했고, 한류는 대장금이 베트남을 중심으로 동남아쪽에서 미풍이 불던 시절이었습니다. 관광은 제대로 된 산업으로 잘 인정받지도 못했구요.


평소에도 주류에 편입되어 따라가기 보다는 중요도에 비해 저평가되어 있는 영역에 대한 도전을 좋아하는 편이라, 예술인들의 지위를 향상하고, 문화산업과 관광산업을 제 궤도에 올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마침 모시던 분(우상호 의원)도 문화예술은 우리 사회의 저수지이고, 문화와 관광산업은 미래를 대비하는 굴뚝 없는 산업이라는 소신이 확실했던 터라 여러 가지 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30대의 나이에 가장 열정을 갖고 현장을 중심으로 겁 없이 열심히 했던 시절이었고, 많은 것을 배우면서 일의 성취에 대한 보람도 느꼈던 것 같습니다.    


4. 문화예술 법안을 제정, 개정하는 과정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느끼기에 가장 보람있었거나 의미있었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많은 법을 제정 또는 개정하는 일을 했었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13년 연말엔가 통과된 ‘문화기본법’ 제정 때의 일입니다. 현행 ‘문화기본법’ 제5조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제5조(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① 국가는 국민의 문화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문화진흥에 관한 정책을 수립ㆍ시행하고...(이하 생략)”


여기에 ‘문화권’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데요, 당시에 정부(문화체육관광부)는 이 표현을 ‘문화적 권리’로 쓰자는 입장이 완강했습니다. 문화권으로 쓰면 기본권 개념으로 보이기 때문에 논란이 생길 수 있고 결과적으로 법통과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우려가 가장 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평소에 법은 새로운 개념이 들어올 때 가장 정확하게 들어와야만 입법 취지를 제대로 살릴 뿐 아니라 하위법(시행령·시행규칙)의 제정 및 법적용의 혼란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 강했고, 무엇보다 문화는 기본권이라는 나름의 철학이 확고했기 때문에 절대 양보할 수 없었습니다.


그 때는 도종환 의원실에서 일을 하던 때인데, 국회통과는 우리가 책임지고 하겠다고 하고 법사위 등 정말 열심히 주변을 설득해서 문화권으로 통과가 되었습니다. 다음 날 언론에서 문화권 개념 도입으로 기사 제목을 뽑는 걸 보면서 혼자 빙그레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밖에도 故최고은 작가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급물살을 탄 ‘예술인복지법’을 통합해서 제정한 것도 기억이 나고, 지역문화시대를 뒷받침 하기 위해 ‘지역문화진흥법’을 제정한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보람이라면 법 자체의 통과도 있지만 법의 집행을 통해 예술현장과 문화·관광산업의 현장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것을 접할 때인 것 같습니다. 나의 노력이 한 줌의 도움이라도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이 다른 분야에 비해 문화·관광·체육분야의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5. 당신은 다른 부족사람들에게 어떤 기대와 요구를 받는다고 생각하나요. (좋은 것이든 좋지 않은 것이든)

몇 년전 일로 기억합니다. 문화분야의 연구용역 프로젝트가 있어서 교수님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요.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가 말하고 연구하는게 이렇게 정책이 된다는 것을 처음 겪어 봅니다. 참 신기하네요.” 아직도 이 말씀이 기억나는 것은 여전히 국회(또는 정치)가 많은 사람들과 거리가 있는 현실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문화분야는 정책의 생명이 현장에 있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현장중심으로 일하려 했고, 그런 과정이 쌓이다 보니 저에게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정책의 틀에 맞게 잘 정리해서 반영되었으면 하는 요구가 많은 것 같고, 국회의 입법 처리에 대한 경험이 쌓이다보니 입법과 정책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기대도 높아진 것 같습니다. 물론 저에게는 그만큼 부담도 늘어나지만 부담보다는 즐거움과 보람이 더 늘어나서 할 만 합니다. ^^

   

6. 당신의 생각과 행동에 영감/영향력을 주었던, 책, 음악, 공연, 영화, 전시 혹은 저자, 작가 등을 소개시켜주신다면?

제 책상 뒤에 늘 꽂혀 있는 책이 몇 권 있는데요. 그 중 하나인 故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두 번을 읽었고, 어느 대목이 생각나게 되면 꺼내어 다시 읽어 보곤 합니다. 세상을 사유하고 사람을 이해하는데 이 보다 도움이 되는 책은 아직 없었습니다. 조각 조각에 대한 사유와 이해를 돕는 책은 많지만 근본 또는 본질에 대한 성찰을 주는 책은 많지 않아 더 그런 듯합니다.

특히 갈수록 기술과 경제중심의 담론이 사회에 대한 지배력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사람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담론이 더욱 중요해 지는 것 같습니다. 나아가 입법·정책·예산 등 저의 모든 일 또한 결국 사람에서 출발에서 사람으로 돌아가는 일이기에 이 책은 저에게 업무의 교본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7. (서로 다른 부족의 '일의 방법'과 '생각의 관점'을 이해해보고 싶습니다) 

  당신이 하는(해왔던) 일의 '기-승-전-결'은 보통 어떤 흐름으로 이루어지나요?

국회에서 세월과 경험이 쌓이면서 나름 제가 일하는 저만의 방식을 정리해 본 적이 있습니다. 아래 그림인데요, 이 흐름으로 저의 기-승-전-결이 설명이 될 것 같습니다.

여러 경로로 이슈를 찾고, 정부자료나 연구자료 등으로 이슈를 보완해서 사람들을 만나 이슈를 심화한 다음, 과연 이것이 타당한지 판단한 후에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이후부터는 쭉 실행단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뒷부분에 점검과 개선의 프로세스가 있는데 법이나 정책이 실행되면 이제는 정부나 집행기관의 몫이라고 손 놓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경우 취지가 내용이 왜곡되거나 변형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보았기에 가급적 점검도 하고 당연히 집행과정에서 발생하는 보완점을 개선하려고 노력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과정이 꼭 순차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 단계가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작동한다는 것이 그간의 경험에서 얻어진 결론이기도 합니다.    


“각각의 프로세스는 단절적이거나 단계적인 직선형이 아니고, 상호작용하는 나선형이다.”     


7-1) 일의 과정에서 당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혹은 요구받는 가치는 무엇이 있나요?     

제가 생각하는 가치와 요구받는 가치가 거의 대동소이 할 것 같습니다. 사실 100프로를 만족하는 법과 정책은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에 매 순간 어떤 가치로 판단할 것인지 요구받게 됩니다. 그럴 때 마다 제일 기준으로 여기는 가치는 너무 뻔한 것 같지만(^^), 이 일이 ‘국민을 위한 것인가?’의 물음에서 멈추어 섭니다. 조금 더 좁히면 ‘서민이나 약자를 위한 것인가?’가 되고, 이를 시간축으로 연결하면 ‘미래를 위한 것인가’의 기준도 함께 고려해서 판단려고 노력합니다.


8. 누구나 모든 것을 잘 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어떤 도움과 협력이 필요한가요?     

저는 기획이나 조정에 좀 더 익숙한 편입니다, 기획과 조정을 위해서 상위적 명분을 만들고 여기에 하위적 필요성을 잘 배치하는 것에 비해 어쩌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추진력은 조금 약한 편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축구로 치면 저는 미드필더의 포지션에 적합하다고 할까요.

반면 추진력이 뛰어난 주위 분들을 보면 ‘야, 일이 이렇게도 되는구나!’라고 감탄하는 적도 꽤 있습니다. 역시 축구로 치자면 골을 넣는 포워드 같이 결정력을 가진 분들의 도움과 협력을 늘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9. 당신이 가진 내적인 힘들 가운데, 어떤 힘이 강하신 것 같나요(장점, 나다운 것 등)?    

‘나 다운 것’ 제일 어려운 질문입니다. 굳이 꼽자면 ‘방향과 원칙이 맞으면 방법은 무조건 있다’는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일하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시중에 출간되는 한국어 교재의 한국어 오·남용 실태를 조사해서 심각성을 환기하고 싶다는 방향을 세우면 어떻게든 모든 인적 네트워크와 수단을 통해서 중국 서점에서 교재를 구하는 방법으로 일합니다.


방법에 제한을 두면 스스로 상상력에도 제한을 둔다는 나름의 소신이 있어서 저도 그렇고 함께 일하는 후배들에게도 일단 방향과 원칙을 먼저 세워라. 그러면 방법은 무조건 있다고 격려하면서 일합니다. 물론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회군을 해야 하는 상황도 적지 않지만, 늘 이렇게 일하려고 하는 자세가 개인과 조직의 성장의 길이라는 경험적 확신을 갖고 일하고 있습니다.        


10. 앞으로 어떤 일(작업, 역할)을 하고 싶나요? 그것을 위해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하고 있(싶)나요?    

구체적인 직업 보다는 다소 추상적입니다만 ‘미래를 현재로 만드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상황을 맞으면서 많이들 ‘일찍 도래한 미래’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도 그렇게 느낍니다. 교육만 보아도 디지털(온라인)교육 도입 의제가 나온지 꽤 오래 되었고 부분적으로 도입이 되고 있지만 코로나19로 전면적으로 도입이 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의제가 국내뿐 아니라 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기후변화’ 의제가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모두 미래 의제인 것 같지만 현재의 의제들입니다. 현재 행동하지 않으면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성장과 공존의 담론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느냐, 또는 어디에 중점을 두는 사회적 합의, 나아가 지구적 합의를 어떻게 끌어내느냐는 미래세대를 위한 현재세대의 비켜갈 수 없는 책임입니다. 그 책임을 미루지 않고 작은 힘이나마 사람을 중심으로 사회질서가 재편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특별히 누구를 만나거나 뭘 하고 있는 것은 아직 아니고,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과 만나면서 조금씩 어떤 방법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11. 다른 부족에 속해있는 다른 역할을 하는 행정人기획人예술人 중 어떤 좌표에 있는 사람들과 당신은 이야기 나눠보고 싶으신가요? (세대, 역할, 조직 등)     

저는 586세대이다 보니 아무래도 젊은 세대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요즘 많이 생각하는 것이 제가 너무 ‘1인칭 현재시점’으로 세상을 보는 것 아닌가 하는 점인데요. 나를 중심으로 과거도 현재로 끌고 와서 정당화시키고, 그것을 매우 유용한 경험과 자산인 것처럼 무리하게 적용하고 있는 것 같아서 진지하게 성찰해 보고 있습니다.

물론 저의 경험과 자산이 유용한 점도 있겠지만 사회의 주축은 젊은 세대라는 것을 겸허히 인정하고 그들의 화법과 사고와 상상력을 접하면서 그들이 펼치는 세상을 응원하고 지원하는 것이 휠씬 더 지혜롭고 합리적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변화를 주도하는 분들과 허물없이 만나는 것, 그것이 미래를 현재로 만드는 출발점이기도 하니까요.    


12. 당신을 좀 더 알 수 있는 소셜미디어/사이트/뉴스를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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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연결실험, Fusion of horiz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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