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번째 좌표는 예술인, 기획인, 행정인과 연관이 있는 제3섹터에 있는 분을 만났습니다. 월간 매거진 <더 뮤지컬> 에서 오랜 기간 중심에 계셨던 분입니다. 인터뷰어로 많은 분들을 만났지만 인터뷰이로 참여하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1인칭 주인공 시점이 궁금했습니다. 그가 서 있는 곳에서 바라보는 지평은 어떤 모습일까요?
"공연의 희열을 느끼는, 작품과 관객의 연결자"
1. 이름은? 사회에서 연차는 어떻게 되시나요?
박병성 20년차
2. 어떤 일을 해 오셨나요. 일터(작업의 공간)에서 당신의 역할을 소개해주세요.
청소년 잡지 1년 만들고, 그 인연으로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로 옮겨와 그동안 쭉 매체의 기자에서 수석기자, 편집장, 국장으로 있어 왔습니다. 직위는 달랐지만 해왔던 일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듯합니다. 작품과 관객을 연결하고, 관객을 대신해 배우와 창작진에게 궁금한 것을 묻고, 업계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어 왔습니다. 근래 몇 년 동안은 종이 매체의 한계로 온라인 공간에서 새로운 매체로서의 실험을 했었습니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공연 시장이 매우 작다는 것, 그리고 자본이 작은 시장에 친절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한계를 해결할 방도가 없지는 않았을 텐데 그만큼 새로운 매체에 대한 시도나 개발에 절실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인 성향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문물에 익숙하지 않아서 따라가지 못한 면도 있고요.
3. 한번 떠올려 주시겠어요. 당신이 하는(해 왔던) 일을 선택했던 내적인 욕구, 초심, 계기, 우연 등은 무엇이었나요?
누구나 그렇듯 가끔씩은 자신이 하는 일에 회의가 들 때가 있고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이 자리를 떠나지 못한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공연이 주는 즐거움입니다.가끔씩 만나는 가슴을 휘젖어 놓는 공연의 희열. 이 맛에 공연을 선택했고 여기를 못 떠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다른 분야의 일을 해보지 못해서 비교하기는 좀 그렇지만 유쾌하고 재치 있으며 보고 듣고 배울 것이 많은 분들이 유독 많은 곳이 공연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분들과의 유쾌한 만남이 이곳에 머무는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4. 최근 3년 동안 스스로 느끼기에 가장 보람있었거나 의미있었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한예종에서 5년간 뮤지컬 분석 수업을 해왔고, 그것을 토대로 <뮤지컬 탐독>이라는 첫 책을 3년에 걸쳐 완성했습니다. 제작 기간은 3년이지만 몰입한 시간은 그렇게 충실하지는 못했습니다. 20여 편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데 작품마다 접근하는 법도 다르고 완성도도 달라서 어떤 글은 무척 부끄럽기도 한 책입니다. 그래도 이것대로 지금의 저라는 생각이 들고, 오랜 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마쳤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두 번째 책을 낸다면 조금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오히려 더 두려워서 더딜 수도 있지만 한 걸음을 내딛은 것 같아 의미있게 생각합니다. 단지 드려야 할 분들에게 충분하게 드리지 못한 것은 아쉽습니다. 증정본을 꽤 받았고 저 역시 적지 않게 구입했는데도 마음 가는 분에게 모두 드리지 못했습니다. 마치 청첩장을 돌릴 때처럼 이 분을 드리면 다른 분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어느 순간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좀 더 과소비를 해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5. 당신은 다른 부족사람들에게 어떤 기대와 요구를 받는다고 생각하나요. (좋은 것이든 좋지 않은 것이든)
업계에 있는 전문지 기자로 오래 있다 보니까 술자리나 혹은 사담을 할 때도 가끔씩 이것을 공론화해달라는 눈빛을 종종 느낍니다. 종종 눈빛에 그치지 않고 직접적인 요구를 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작가에게 좋은 소재를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소스가 좋은 기삿거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사적인 영역이라 기사가 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종이 매체는 늘 분량이 한정되어 있다보니까 선택을 해야 하는데 후자의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이라면 조금 더 부지런하게 온라인을 적극 활용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늘 바빴지만 충분히 집중해서 시간을 활용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 그 점은 반성이 됩니다. 좀 더 집중했더라면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여유가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6. 당신의 생각과 행동에 영감/영향력을 주었던, 책, 음악, 공연, 영화, 전시 혹은 저자, 작가 등을 소개시켜주신다면?
한때 비평가의 삶은 외로워야 한다고 늘 말씀하시던 김윤철 선생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친분과 사심에 얽매인 비평은 업계에 도움이 되지 않고 존재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작품을 소개하거나 안내하는 글과 비평을 철저히 구분해오고 그런 태도를 견지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부터 그런 생각이 조금씩 변했는데요. 외로운 비평은 존립할 수 없구나를 느낍니다. 결국 관객, 창작자, 제작자 이들 모두와 함께하는 비평이 아니면 존재하기 힘든 환경이 된 것 같습니다. 결국 이 모든이들과 공존할 수 있는 비평의 자리에 대해 고민이 들고, 결국은 해석적 비평, 설명적 비평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공존을 위한 모색을 타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충분한 지면과 능력이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저는 스스로 보수적인 구조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보수주의자와는 굉장히 다른 생각과 선택을 늘 해왔지만, 전체적인 삶과 사고는 구조주의자였던 것 같습니다. 우연히 후기구조주의 철학자들의 입문서를 보고 그것을 제 나름대로 받아들이면서(그러니까 그분들의 사고를 제대로 이해한 거 같진 않고 이해하고 싶은 대로 이해했던 것 같습니다.) 구조주의의 벽이 좀 깨졌습니다. 예전에는 정답이 있고 주어진 자리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정답은 움직이는 것이고 주어진 자리의 역할도 변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죠. 움직이는 자신만의 정답을 찾으려는 게 큰 변화일 것 같은데, 그 영향은 아마도 후기구조주의자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7. (서로 다른 부족의 '일의 방법'과 '생각의 관점'을 이해해보고 싶습니다) 당신이 하는(해왔던) 일의 '기-승-전-결'은 보통 어떤 흐름으로 이루어지나요?
<카메론 매킨토시와 인터뷰>
현재는 좀 다르지만 그동안 월간지 제작 책임이 주요한 역할이었으니까, 이를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월초는 시장과 작품, 배우들의 리서치가 이루어지고 기획이 끝나면 취재, 기사 작성, 잡지 제작의 패턴이 월 단위로 지속됩니다. 사이사이 다른 미션들이 양념처럼 곁들이지만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한 달 동안 한 권의 잡지가 무사히 기간 내에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이 분야는 무언가 스스로 관점을 만들기보다는 지켜보고 관찰해서 그것을 놓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트렌드를 읽어내는 능력, 업계의 사람들과의 소통, 글을 쓰기 전에 충분한 리서치가 가장 중요합니다.
7-1) 일의 과정에서 당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혹은 요구받는 가치는 무엇이 있나요?
소통.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요구받는 가치는 소통입니다. 제가 가장 못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글을 쓰는 일과 조직을 운영하는 일은 진행되는 방식이 조금 다릅니다. 밤늦게 또는 새벽에 글을 쓸 때의 자유로움과, 그것이 세상과 만날 때가 다른 것처럼요. 결국은 타인의 배려와 소통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
8. 누구나 모든 것을 잘 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어떤 도움과 협력이 필요한가요?
도움이 너무 많이 필요한 손이 많이 가는 타입이라 한두 가지가 아니네요. 뉴미디어에 약하고, 행정이나 서류 작업들, 회계 정산, 누구에게 부탁하는 일을 정말 잘 못합니다. 결국 콘텐츠를 만드는 것 이외에 일들은 정말 잘하지 못하는데 좋은 조직의 도움으로 분업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해왔던 것 같습니다.
9. 당신이 가진 내적인 힘들 가운데, 어떤 힘이 강하신 것 같나요(장점, 나다운 것 등)?
예전에는 장점이라고 생각하던 것이 돌이켜보면 그렇지 않고 예전에는 그런 줄 알았는데 지나보니 그렇지 않은 것이 참 많습니다. 이상을 추구하는 힘이나 행복 지향적인 자세, 업무에서의 분석력이 나은 편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10. 앞으로 어떤 일(작업, 역할)을 하고 싶나요? 그것을 위해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하고 있(싶)나요?
매일 산책을 하고 일기를 쓰는 삶을 동경합니다. 게으르고 생각처럼 몸이 안 따라줘서 못했는데 매일 산책을 하고 일기를 쓰면 왠지 몸도 마음도 더 단단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다가올지 기대가 됩니다. 지난 20년 동안 정말 많은 공연을 보고, 작가, 연출가, 작곡가, 프로듀서, 행정가, 배우 등 다양한 분들을 만나고 그분들의 작업을 지켜보았습니다. 예그린 시대의 선생님부터 이제 막 입문한 창작자까지 그동안 많은 인연을 맺어 왔는데요. 이런 인연이 자양분이 된 일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배우고 나누는 일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래왔던 것 같고 앞으로도 어떤 방식을 규정하지 않고 배우고 나누는 일을 지속할 것 같습니다. 그것을 위해 특별하게 누구를 만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도움이 됩니다. 그저 그런 삶을 지향해왔던 것이 구체적인 계획보다 삶을 그 방향으로 이끌었던 것 같습니다.
11. 다른 부족에 속해있는 다른 역할을 하는 행정人기획人예술人 중 어떤 좌표에 있는 사람들과 당신은 이야기 나눠보고 싶으신가요? (세대, 역할, 조직 등)
지금까지 저는 끼여있는 사람으로서 행정가, 기획자, 예술가를 두루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안에 따라서 다르지만 주로 예술인과 기획인과의 대화가 더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행정인은 제가 잘 몰라서 그동안 덜 만났던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