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번째 좌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항구도시 부산으로 가보았습니다. 부산에는 1973년 개관한 부산시민회관과 1993년 개관한 부산문화회관이 있습니다. 이 극장을 최근 2017년부터 재단법인 부산문화회관이라는 울타리에서 통합 운영하고 있습니다. 재단법인이 되었다는 것은 행정중심에서 좀 더 전문성을 갖춘 인력들이 자율성을 갖고 운영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곳에서 공연기획팀 좌표에 계신 분을 만나보았습니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교류 분야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고, 고향 부산으로 갔습니다. 커다란 항구를 가진 도시는 넓은 품 만큼 개방성과 포용성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녀가 서 있는 좌표에서 보는 문화예술의 지평은 어떤 모습일까요?
"예술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국제교류와 부산을 잇는 기획자"
1. 이름은? 사회에서 연차는 어떻게 되시나요?
안주은 입니다. 2003년부터 일을 시작했으니, 올해로 18년차입니다.
2. 어떤 일을 해 오셨나요. 일터(작업의 공간)에서 당신의 역할을 소개해주세요.
첫 일터는 국제현대무용제(MODAFE)에서 해외공연을 담당했고요, 두 번째는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해외시장개발업무를, 지금은 부산문화회관에서 국내외 공연기획과 국제교류를 담당 하고 있습니다. 세 곳에서 일하면서, 이어져 온 메인업무는 “국제교류”입니다.
3. 한번 떠올려 주시겠어요. 당신이 하는(해 왔던) 일을 선택했던 내적인 욕구, 초심, 계기, 우연 등은 무엇이었나요
저의 첫 시작은 가네샤프로덕션이 국제현대무용제(MODAFE)룰 주관할 때였습니다. 빔반데키부스, 얀파브르, 제롬벨 등 유럽예술계 화두를 던졌던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해외초청작으로 기획되었는데, 해외공연 행정업무를 담당하면서, 예술감독님의 해외단체 섭외와 프로그램 기획을 어깨너머로 배웠어요. 그렇게 공동제작에 관심을 갖게 되고, 관련 논문을 쓰면서, 그 계기로 예술경영지원센터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 건립사업의 일환으로 시행한 <아시아공동제작파일럿프로젝트>를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주관했거든요. 지금은 많이 다양해졌지만, 당시만 해도 예술경영지원센터는 현장과 정책기관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매개기관으로, 예술가가 자생할 수 있는 간접지원사업을 주로 했어요. 그 중 하나가 해외의 프리젠터를 한국으로 초청해 한국문화를 전반적으로 소개하는 <져니 투 코리안뮤직 Journey to Korean Music>이었습니다.
서울아트마켓이 전 장르를 커버하면서 판을 크게 벌인다면, 이 사업은 아주 소규모이지만 핵심 바이어들만 초청해서 한국음악의 진가를 보여주고, 자국으로 돌아가서는 소문나게 하는 빅마우스들과 진행하는 행사였습니다. 이 사업을 바톤 터치받아 운영하면서 저도 모르게 한국음악에 반하게 되었고, 지금 공연장에서도 국악공연은 꼭 시즌프로그램으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4. 최근 3년 동안 스스로 느끼기에 가장 보람있었거나 의미있었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제가 공연장에 온지 딱 3년이 되었어요. 여기선, 초청한 아티스트가 행복해 보이는 순간이 제일 보람돼요. 우리 무대에서는 꼭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사실 너무 어려워요. 예술가가 행복한 순간은 관객과 소통하는 순간인데, 아직 부산에서 클래식 공연을 제외한 순수장르의 모객이 정말 어렵답니다. 하지만, 우리 예술가를 실망시킬 순 없기에! 제가 2019년에 엄청난 모험을 한 것 같아요. 캐나다공연예술마켓(시나르)에서 감명 깊게 본 호주아트서커스 <백본>을 초청했는데, 아트서커스라는 다소 생소한 장르를, 무려 1600석의 극장에, 심지어 2회로 공연을 하기로 했지요. 아, 정말 모객을 위해서 할 수 있는 홍보방법은 다 쓴 거 같아요. 부산에 사람 많이 모이는 대표적인 장소인 롯데자이언트 야구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만큼 애절했답니다. 출연진들과 함께 몇 만명의 관중 앞에서 아주 짧은 쇼케이스도 하고 시구도 했습니다. 호주에서 온 출연진들은 야구장에서 신이 나서 달렸습니다. 야구장에서 공연은 그들도 처음이라고 했어요. 다칠까봐 아슬아슬했고, 공연전이라 단원들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대극장 객석점유율 70%에 육박하는 관객과 함께 너무 행복해하는 그들을 보면서 그 마음도 잠시, 아, 이래서 기획을 하는 구나......하는 생각을 했답니다.
5. 당신은 다른 부족사람들에게 어떤 기대와 요구를 받는다고 생각하나요. (좋은 것이든 좋지 않은 것이든)
아무래도 지역에 있다보니, 지역예술을 소개하는 창구의 역할을 좀 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지역예술은 중앙기관에서 많이 소외되어 있는 게 사실이거든요. 작년에 부산신진예술페스티벌을 진행했었는데, 부산에 숨어있는 보석 같은 예술가들이 많더라고요. 축제를 운영하면서, 단체들의 공연 퀼리티에 또 한 번 놀랐어요.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아서, 많이 안타까웠어요.
6. 당신의 생각과 행동에 영감/영향력을 주었던 책, 음악, 공연, 영화, 전시 혹은 저자, 작가 등을 소개시켜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제 인생에 영향력을 주었던 작품이 하나 있어요. 빔반데키부스가 이끄는 울티마베즈의 <PUUR(순수)>라는 공연입니다. 2005년에 발표한 작품인데, 벨기에 키브스를 비롯한 아비뇽 페스티벌, 싱가포르 아트페스티벌등이 공동제작한 작품입니다. 작품의 내용보다는 이 작품의 제작방식이 저를 여기까지 오게 했고, 또 앞으로도 저는 국내외 공동제작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생각입니다. 비록 올해 코로나로 연기하긴 했지만, 내년에 안은미 컴퍼니 신작을 지금 소속되어 있는 부산문화회관에서 공동제작으로 참여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7. (서로 다른 부족의 '일의 방법'과 '생각의 관점'을 이해해보고 싶습니다) 당신이 하는(해왔던) 일의 '기-승-전-결'은 보통 어떤 흐름으로 이루어지나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일의 흐름보다는 지향점이 더 가까울 것 같긴 한데요, '기승전-예술가'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는 예술행정인를 거쳐, 현재는 기획인의 길을 가고 있는데, 일을 하면서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한 가지 핵심가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 바로 ‘예술가’! 예술가 없이는 기획도 행정도 있을 수 없으니깐 요. 늘 그들에게 감사해 하고 있답니다.
7-1) 일의 과정에서 당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혹은 요구받는 가치는 무엇이 있나요?
일을 하면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재량과 자율성입니다. 목적과 방향이 제시된 이후에는 각자가 재량과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일도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생각해요. 아니 어쩜 생각지도 못한 신박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고요. 예술행정에서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팔길이 원칙이라고도 하죠.
8. 누구나 모든 것을 잘 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어떤 도움과 협력이 필요한가요?
저는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12년을 근무했어요. 예술현장을 조사하고, 정책기관을 설득하고 사업에 반영하면서 자칫 현장에는 기획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을 수도 있으니, 현장의 소리를 최대한 많이 들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전 제가 부산에서 공연기획을 해도 큰 어려움이 없을 줄 알았어요. 웬걸요, 저에게는 모든 게 새로운 환경이었어요. 공연장에서 공연 기획하는 일도 처음이었고, 지역의 네트워크는 그 동안 제가 쌓아온 현장과는 완전 별개의 환경인데다, 부산문화회관이 재단법인으로 출범하는 시기여서 운영진 전체가 신규로 입사를 했기 때문에,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야했어요. 부산지역에서 네트워크를 차곡차곡 쌓고 있지만, 아직도 모르는 부분들이 많아요. 지역 예술인, 행정인, 기획인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9. 당신이 가진 내적인 힘들 가운데, 어떤 힘이 강하신 것 같나요(장점, 나다운 것 등)?
힘든 일은 빨리 잊어버려요. 그게 제가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무기인 것 같아요. (^^) 그리고 든든한 후배들과 동료들과의 유대관계. 위 질문처럼 누구나 모든 것을 잘 할 수 없듯이, 저는 함께 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운 좋게도 그 전 직장에서도 지금 직장에서도 팀웤이 좋았구요, 앞으로도 후배들이 능력 발휘할 수 있도록 지지자가 되어 줄 생각입니다.
10. 앞으로 어떤 일(작업, 역할)을 하고 싶나요? 그것을 위해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하고 있(싶)나요?
“국제교류”, “로컬”, “부산”, “축제”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연결고리를 만들고 싶어요. 장기간 국제네트워크를 쌓아왔고, 해외축제나 기관의 운영방식도 익혀왔고, 또 국내에도 개인적으로 다양한 그룹의 네트워크를 축적해왔어요. 물론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 동안 쌓아온 네트워크로 부산을 연결하는 매개자 역할을 하고 싶어요. 아직까지는 예술계의 불모지라는 인식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부산은 앞으로 국제아트센터와 부산오페라하우스 같은 대형 공연장 건립이 예정되어 있고, 국제관광도시로 선정되면서 향후 예술계 지형도 변화에도 상당한 기대를 하고 있어요.
11. 다른 부족에 속해있는 다른 역할을 하는 행정人기획人예술人 중 어떤 좌표에 있는 사람들과 당신은 이야기 나눠보고 싶으신가요? (세대, 역할, 조직 등)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동안 해외에서 프로모션 한 우리 예술가들을 내가 과연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었나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예술가들과 소통은 못한 것 같아요. 10년 이상을 해외마켓에서 한국관 부스로 찾아오는 전 세계 프리젠터들에게 한국의 공연예술단체를, 한국 공연예술을 소개해 왔는데, 정작 우리 예술 현장에 있는 예술가와의 교류가 많지 않았어요. 갑자기 급 반성모드가 되네요. 예술가들과 더 가까운, 친밀한 기획자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