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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석류 Sep 04. 2021

자신의 고유성으로 전통음악의 정석을 깨어가는 여정

(장석류) 수림아트랩 시즌북「SO;OP」기고 원고 (2021.09.04)

  

  심사에 참여하려면 심사에 대한 기준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취향과 선호만 가지고 들어가는 심사는 위험하다. 심사의 기준을 세우려면 해당 사업이‘어떤 사업적 전통’을 가지고 명맥을 이어가는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전통분야와 관련된 창작지원 사업은 수림문화재단 외에도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수림아트랩> 전통예술 기반 창작 사업이 다른 지원사업과 차별적인 특징이 무엇인지 이해해 본다면, 이번에 만나게 되는 8개 팀에 속해 있는 예술가들과 작품에서 우리는 어떤 기대를 해볼 수 있을지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무대와 객석의 만남은 고독의 시간 속에서 예술가로 익어 가며 준비한 것들과 관객들이 기대하는 것이 만나 특별한 시간의 경험을 함께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림아트랩> 전통예술 창작 사업이 추구하는 특별한 시간은 무엇일까?  


수림아트랩(2021) 올해의 선정팀_전통음악 기반 창작예술 분야 (바로가기)


  수림문화재단의 전통예술 기반 사업은 꾸준히 ‘자신의 고유성을 탐색’하며 작업해왔던 예술가를 찾아내어, 이들과 함께 새로운 작품을 도전해보는 시도를 해왔다고 생각한다. 마치 자신의 연구 주제를 갖고 있는 좋은 역량을 가진 박사 후 연구자들과 사회과학, 자연과학 분야에서 연구와 육성을 하는 시도를 전통예술창작 분야에서 한다고 느꼈다. 보통 좋은 연구자는 좋은 연구 질문을 갖고 있다. 시키는 것을 잘하는 예술인이 아닌자신의 고유성을 찾으려는 예술가들도 좋은 질문을 하나씩 갖고 있다. 좋은 예술가로 성장해 갈수록 자신의 고유성을 찾고 싶어하고, 가지고 싶어 한다. 그 고유성은 머리와 가슴만으로 탐색할 수 없다. 직접 자신의 고유성을 피워내기 위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창작의 모험을 떠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이 떠나보고 싶은 모험은 무엇인가요, 그 모험을 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질문을 공통으로 했었고, 각각의 팀들은 이곳에 온 이유를 말뿐만 아닌 그간의 작품 세계를 통해 그 대답을 드러내고 있었다.      



  <수림 아트랩>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작품의 기획자와 함께 참가하는 것이다. 기획자가 시작점이 된 팀도 있고, 창작자가 시작점이 된 팀도 있었다. 기획자는 창작자의 작품 세계를 깊게 이해하는 첫 번째 관객이 되기도 하고, 창작자가 온전히 자신을 바로 볼 수 있는 거울이 되어주기도 한다. 심사의 과정에서 만난 기획자 중에 자신과 함께 하는 창작자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을 가진 답변을 듣다 보면, 이 기획자의 안목을 믿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분도 있었다. 창작자에게도 기획자에게도 이 모험을 함께 떠나려는 동료들은 어떤 역량을 갖고 있다 생각하시나요, 서로는 어떤 협력과 도움이 될까요 등의 질문을 했었다. 각자의 고유성이 모여 이번 도전 과제를 상호 어떻게 이해하고 있고, 예상되는 어려움을 어떻게 예측하고 협력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최종 8팀의 모험을 응원하게 되었다. 이러한 제도적 전통 속에서 <수림아트랩>을 지나왔던 팀들과 인터뷰를 해보면, 선정된 아티스트들과의 교류를 통해 사업 이후에 또 다른 프로젝트를 만들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고 언급한다.      

   

  <수림아트랩> 전통예술 창작 사업은 시도하고자 하는 예술성에 대한 질문이 있는 예술가들과 함께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는 창작의 과정에 힘을 보태며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위해 사람에 더 집중하는 <수림뉴웨이브> 사업과 작품에 더 집중하는 수림아트랩이라는 두 개의 축을 가진 사업설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다른 예술기관 등에서 하는 전통예술 사업 중에서 원숙한 단계에 계신 명인 선생님 혹은 대학 등을 졸업하고 전통예술 분야를 업으로 삼아 창작 혹은 실연자로 진입하는 단계에 있는 예술가를 지원하는 사업과 차별점을 지닌다. 또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광역문화재단 등에서 진행하는 창작지원 사업은 지원 기준에 따른 공정한 심사를 통해 지원금 분배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해당 조직의 담당자들은 지원금 분배 이후, 작품 제작과정과 관객과 만나는 시간까지 함께 참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후는 극장 대관부터 창작자들이 알아서 해야 한다. 하지만 민간 문화재단인 수림에서 진행하는 창작지원사업은 창작의 모험을 떠나는 팀들에게 적지 않은 노잣돈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별도 대관료 없이 극장 공간을 제공하고, 담당자들이 온전히 이 8팀에 집중하여 제작과정부터 홍보마케팅, 그리고 영상화를 통한 결과물 축적까지 함께 협업한다. 앞으로는 더 좋은 결과물을 내는 팀의 경우 2년 연속지원 혹은 최대 3년까지 소신껏 지원을 밀어붙이는 제도적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적 뚝심은 기계적 형평에 발목 잡히지 않는 민간 문화재단의 강점으로 보이기도 한다. 올해 8팀은 악기별 구성이 다양하고, 100% 신작을 준비하는 것이어서 그 결과물이 한 명의 관객으로 더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피카소는 창의력의 가장 큰 적은 상식이라고 했다. 전통예술은 바둑에서 얘기하는 정석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 특히 정규 교육과정인 중·고등학교 과정을 통해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대학과정에서도 창작보다는 전통예술의 기본이라고 언급되는 다양한 류(流)를 습득하는 정석을 가르치고 배우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고유성을 찾아가는 여정은 녹록하지 않다. 우리는 바둑을 두는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의 승부를 기억한다. 당시 첫 번째 시합이 끝나고, 심판을 맡았던 유럽 바둑챔피언 판후이는 이런 말을 했었다. “인간이 둘 만한 수가 아닙니다. 인간이 그런 수를 두는 건 한 번도 못봤어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아름답고, 아름답고, 아름다웠어요.”여기서 인간이 둘 만한 수가 아니라는 것은 어떤 초인적인 수라는 의미보다는 인간이 두어 온 정석이 아니라는 의미가 강하다. 그는 왜 알파고의 수가 아름답다고 했을까. 이세돌과의 승부 이후 알파고를 만든 데미스 허사비스는 이런 의견을 주었다.“바둑은 오래도록 수학자들이 국소최대점이라 부르는 곳에 머물러 있었다.”국소최대점은 좁은 영역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를 의미한다. 현대 바둑의 문제점은 국소최대점에 도달하는 것을 보장해주는 정석이 구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저 멀리 더 높은 봉우리가 있지만, 안개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알파고가 둔 수도 바둑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연히 옳다고 생각되는 선입견의 관성인 정석을 깨고, 새로운 수를 찾아 국소최대점보다 더 높은 봉우리를 찾은 것이다.    

   

   <수림아트랩>을 통해 시도되는 전통예술 창작이 전통예술의 국소최대점에 도달하기 위한 정석을 넘어 새로운 봉우리를 찾아가는 모험의 여정이 되었으면 한다. 창의적 고유성의 시발점은 자신의 내면서 올라오는 새롭고, 놀라우며, 가치 있는 무언가를 내놓고자 하는 충동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충동을 현실에서 행동으로 옮기려면 실패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안개에 가려 제대로 앞이 보이지 않지만, 실패를 각오하지 않으면 기존의 틀에서 무언가를 새롭게 창조할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쓸 수 없다. 전통예술 분야에서 그 위험을 무릅쓸 수 있는 기회가 <수림 아트랩>이 될 수 있다. 알파고의 바둑이 바둑의 본질을 벗어난 것이 아닌 것처럼, 수림아트랩의 도전도 전통예술의 본질을 벗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국소최대점을 넘어 더 높은 봉우리를 찾기 위해 전통예술의 관성과 정석을 깨보고 싶어 이곳에 왔다. 올해 참가하신 8팀에게 사뮈엘 베케트가 남긴 말을 전하고 싶다. “괜찮으니 다시 시도하고, 또 실패하고, 더 낫게 실패하라(No matter.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전통예술의 정석을 자신의 고유성으로 깨어가는 그 과정에서, 어느 순간 새로운 봉우리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만나게 되실거라 생각한다. 그 여정을 응원 드린다. 오늘의 무대가 그 여정의 중요한 변곡점이 되시길 바라며, 수림아트랩은 전통예술 창작의 위험을 무릅쓸 수 있는 기반을 지금처럼 뚝심있게 밀고 나가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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