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류의 예술로(路)] 2021.11.18
공연장, 미술관, 박물관 등에서 일을 하고 싶어 ‘예술경영’을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예술인 부족의 직업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가 각자의 이유로 기획인 부족으로 가고 싶을 때, ‘예술경영’이라는 다리를 건너보려 한다. 이런 경우 ‘예술경영’이라는 문법을 어느 정도 익히고, 민간 기업인 OO엔터테인먼트나 뮤지컬 기획사, 플랫폼 기반회사 등에서 일을 하면 어느 정도 적응을 한다. 그런데 공공의 영역에 있는 국공립 예술기관, 지역문화재단 등에 있으면, 행정 언어의 문법을 잘 몰라 다시 헤매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행정학의 영역에서 문화예술을 잘 다뤄주는 것도 아니다. 경영과 행정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그 질감은 상당히 다르게 느껴진다. 하지만 의외로 예술경영과 예술행정이라는 용어는 문화 분야에서 별다른 구분 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경영이 예술을 만났을 때와 행정이 예술을 만났을 때, 다시 말해 예술경영과 예술행정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예술기관도 ‘경영’평가를 받는다. 일을 하다 보면 경영을 하는 것과 행정을 하는 것에 혼란도 종종 겪게 된다. 우리는 이 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경계를 처음 넘어갈 때, 새로운 곳은 낯설게 보인다. 개인적으로 첫 사회생활은 민간 문화분야 기업이었다. 몇 년 뒤 국립 공연장으로 이직을 하였다. 그러다보니 ‘경영’이라는 문법에는 상대적으로 익숙했지만, ‘행정’ 언어의 문법과 조직의 관성은 낯설었다. 기업에 있으면 자신이 속한 조직이 판매하는 제품의 매출과 영업이익, 주가에 집중하게 된다. 그런데 문화체육관광부, 서울문화재단 등에서 일을 하면, 조직의 주가라는 개념이 없다. 문화부의 가치가 작년에 주당 20만원이었는데, 국민의 사랑을 많이 받아 30만원이 되어서 시가 총액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사업계획서 최상단에 올해의 목표매출 혹은 시장점유율을 세우고, 그것을 위해 실행계획을 구체화한다. 그런데 공공조직의 최상단에는 올해 사용할 수 있는 총예산이 전제되고,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계획한다. 돈을 버는 게 어렵지 쓰는 게 뭐가 어렵냐고, ‘경영’ 문법에 익숙한 사람은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많은 정치적인 싸움을 이겨내고 예산을 확보해서, 그것을 잘 쓰는 것이 만만치는 않다. 그리고 어떻게 써도 욕을 먹는 경우가 많다.
‘시장과 정부’는 국가와 사회를 지탱하게 하는 두 개의 축이다. 우리 몸의 순환계를 보면, 심장을 중심으로 정맥과 동맥으로 나뉘어 혈액이 흐른다. ‘돈’을 ‘혈액’이라고 생각해보자. ‘돈’은 가치를 교환하게 한다. 이 돈이 시장이라는 정맥을 지날 때, 우리는 개인의 욕구와 욕망이 투영된 다양한 재화를 생산하고 소비하면서 가치를 교환하며 산다. 이 과정에서 세금(세입)이라는 돈이 심장에 모이게 되고, 다시 심장의 펌프질을 통해 예산이라 불리는 돈이 동맥을 통해 온몸에 흐르게 된다. 다소 거친 비유이긴 하지만, 시장과 정부라는 한 쌍의 순환에서 ‘돈’이 시장에서 흐를 때는 개인의 욕구(수요)를 찾아 기업 중심의 ‘경영’이라는 문법이 중요하다. 이에 비해 정부에서 흐를 때는 공공재라는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정’이라는 문법이 중요하다. 시장과 정부를 분리된 개념으로 볼 수 없는 것처럼, ‘경영’과 ‘행정’도 순환고리의 한 쌍으로 연결해서 보는 것이 필요하다.
행정의 의사결정 기준은 경영의 의사결정과 차이가 있다. 경영은 시장의 욕구와 욕망을 포착해서 좀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생산하는데 의사결정의 역량을 집중한다. 그런데 돈이 시장이라는 ‘욕망의 정맥’을 지날 때, 그 과정에서 사각지대와 사회적 약자들이 생긴다. 행정은 그 사각지대를 포착해서 예산이 다시 ‘공공의 동맥’을 흐를 때, 우리 사회가 좀 더 좋아질 수 있는 공공재를 공급하고, 사회적 약자들이 시장에서 지탱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드는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그래서 행정은 효율을 고려하면서도 형평을 함께 살필 수 있는 복합적인 의사결정 기준을 가진다. 이것이 경영과 행정을 가르는 핵심이다. 그래서 행정의 의사결정이 경영적 의사결정보다 어떤 측면에서는 더 어려울 수 있다. 예술기관의 경영평가에 경영학과 교수들이 와서 시장의 논리로 조직의 공공 서비스가 경쟁력이 없다는 얘기를 속 편하게 하는 경우들이 있다. 경영과는 다른 행정의 존재 이유에 대한 체감이 약한 경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행정을 하기 위해서는 시장을 읽을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경영이 행정에 비해 강한 분야가 마케팅이다. 그만큼 경영은 시장과 고객의 욕구를 잘 읽어낸다. 행정인에게 당신의 고객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대체로 시민과 국민이라고 언급한다. 구체적으로 고객을 잘 포착하지 못한다. 행정이 시장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가 문화를 입은 시장의 기업과 경쟁해보거나, 따라가려는데 목적이 있지 않다. 마켓을 알아야 깨진 마켓의 조각들을 찾을 수 있다. 예술행정이 지향해야 하는 마케팅의 본질은 예술의 창작과 수요, 유통의 과정에서 예술가와 향유자의 욕구를 읽어내면서, 어떤 다리가 끊어져 있고, 어떤 물줄기가 막혀있고, 어떤 지점에서 출발하지 못하는지 깨진 시장의 조각들을 찾아 이어 붙일 수 있는 것이다. 예술계 순환의 고리에서 예술 ‘행정’이 뒷받침되어야 예술 ‘경영’도 활성화될 수 있다. 결국 예술 ‘경영’과 예술 ‘행정’은 주인공인 ‘예술’이 우리 사회에서 온전히 순환되어 좀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수 있게 하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있는 한쌍의 조력자이다.
[장석류의 예술로(路)] 예술경영과 예술행정의 차이는 무엇일까 - 서울문화투데이 (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