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다원 No31] 예술人기획人행정人 부족 간 인터뷰 프로젝트
서른한번째 좌표는 광화문에 있는 세종문화회관 기획인이 서있는 곳으로 가보았습니다. 세종문회회관은 서울시 대표 공연장으로 우리나라 극장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세종문화회관은 1978년 개관하였습니다. 이전에 이 자리에 극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현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극장을 설립할 계획은 6.25 전쟁이 끝나고 이승만 탄생 80주년을 기념하는 공간으로 당시 '우남회관'을 계획하였고, 1956년 착공식을 하였습니다. 건설 과정에서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나고 이승만 대통령이 하와이로 망명하면서, 1960년 8월에 서울시의회는 건설 중인 '우남회관'의 명칭을 '시민회관'으로 변경합니다. 이 시민회관이 1972년 10대 가수 청백전 공연 중 조명장치가 터지면서 불로 전소되었습니다. 이 시민회관을 복원하면서 붙여진 이름이 지금의 세종문화회관입니다. 이러한 긴 역사 속에서 세종문화회관은 1999년 재단법인이 되었습니다. 당시 재단법인 공채 1기로 입사하여, 세종문화회관과 함께 20년 이상의 시간을 보낸 분을 만나보았습니다.
"복합 예술공간의 서비스 기획자"
1. 이름은? 사회에서 연차는 어떻게 되시나요?
오정화, 현재 24년 차입니다.
2. 어떤 일을 해 오셨나요. 일터(작업의 공간)에서 당신의 역할을 소개해주세요 & 역할 속에서 자신의 직업정체성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99년 세종문화회관 재단법인 출범과 함께 공채 1기로 공연기획팀에 입사하여 자체 기획공연, 전속예술단 공연, 홍보마케팅, 문화예술기관을 연계하는 문화스트리트(세종벨트) 구축 사업까지 복합예술 공간의 다양한 사업을 해왔습니다. 현재는 예술교육팀에서 잠재적 미래 예술 고객을 확장하는 예술교육 사업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제 직업은 문화예술 랜드마크로써, 세종문화회관의 관객개발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마케팅하여 기관의 브랜드를 높이는 ‘복합예술 공간의 서비스 기획자’라 생각해요. 왜냐하면 저희 세종문화회관 사업자등록증을 보면 공연장 운영을 주로 하는 서비스 업이라고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세종문화회관에서 하는 일은 모두 서비스인 셈이죠. 공연기획도, 홍보도 다 서비스인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복합예술 공간의 서비스 기획자”가 저의 직업 정체성이라 생각해요.
3. 한번 떠올려 주시겠어요. 당신이 하는(해 왔던) 일을 선택했던 내적인 욕구, 초심, 계기, 우연 등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공연예술분야를 전공했어요. 실연자가 아니면 나머지 분야는 예술을 지원하는 스태프의 길이 있었죠. 저에게 실연자로의 길은 스스로 한계가 있었고, 대학 3년 차부터 공연작품 분석이나, 희곡 읽기, 공연기획서 작성 같은 수업이 저에게 잘 맞았고 그 결과 학점도 잘 받아, 장학금 수혜도 받으며 자연스레 예술경영 분야가 제 적성임을 찾았던 거 같아요. 특히, 대학에서 극작술, 드라마 트루기 등을 통해 대학연극제나 세계 대학 연극축제에도 참가하여 공연작품을 각색하며 공연 만들기 과정에 보람을 느꼈죠.
대학 4년 차에 교수님 추천으로 서울시극단에서 인턴십을 하면서 공연기획 실무를 현장에서 접하게 되었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기획팀에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연구과제 공모 기획서 작성 등의 행정업무를 당시 팀장님께서 저에게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셔서 행정업무를 터득하게 된 듯해요. 그러다 때마침 세종문화회관이 민간위탁운영으로 변화되는 시점에 대대적인 공개채용 공고가 있었어요. 신문 하단에 크게 났는데 그것을 보고 공연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바로 지원을 했습니다. 당시 높은 경쟁률로 초등학교 하나를 빌려 논술시험까지 보는 어마어마한 분위기였는데, 저에게 여러 자격 요건이 유리했던 거 같아요. 감사하게도 공연기획팀에서 실무 업무를 시작할 수 있었죠. 세종문화회관에 들어와 학교에서 극 장르에 국한했던 제 영역을, 다양한 공연예술 장르로 확장했고 3천 석 대규모 공연장 운영의 노하우와 기획 실무 능력을 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업무는 저에게 숙명 같은 거라 생각해요
4. 당신이 하는 일에서, 당신이 생각하는 고객은 누구인가요
모두가 고객이라 생각합니다. 예술은 하나의 문화이고 가치재이기 때문에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가 경험을 한다면 계속 보고 싶고 듣고 싶고 배우고 싶은 ‘심미적 가치재’라 생각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업계 관계자가 자기가 하는 일에 확장을 위해 관객이 되고, 협력 관계자가 업무 이해를 하다가도 관객이 되고, 공연예술 전공자, 공연예술에 호감과 취미를 가진 누구나가 관객이 될 수 있죠
저는 <예술경영> 전문서에 언급되는 공연의 경험재적인 특성에 상당히 공감을 해요. 처음 관람이 어렵지, 한번 정도 매력적인 공연예술을 접하게 되면 또 관객으로 진입할 수 있기 때문에 모두가 관객이 될 수 있다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추천 공연이나, 단체 관람을 할 때 제가 하는 공연을 단순히 매출을 위해서만 추천하진 않습니다. 장기적인 관객으로 진입하는데 첫인상 혹은 예술 관람은 정말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하기 때문이죠. 저는 공연장의 신뢰 있는 공급자 혹은 추천자가 되고 싶어요.
4-1. 당신이 생각하시는 고객에게, 당신은 어떤 역할 기대와 요구를 받는다고 생각하나요.
저희 방문 고객은 세종문화회관이니까. 믿고 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거 같아요. 세종문화회관은 공공기관이고, 서울 도심에 위치하여 광화문 광장을 중심으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보니 그로 인해 다른 신생 기관들에 비해 인지도가 견고합니다. 제가 홍보팀장 시절, <2016년 서울시 만족도 조사서>를 살펴본 적 있어요. 세종문화회관 인지도가 97.1% 이더군요. 정말 웬만하면 다들 아신다고 봐야 해요. 그래서 믿고 방문하는 것에 대한 프라이드 이상의 책임감과 질책도 많다 봅니다. 이 때문에 저희는 민원이 다른 기관들보다 세부적인 것이 많고, 세종문화회관이 잘못하면 다른 기관보다 뼈 때리는 지적과 불편한 화제도 많아요. 다른 기관의 홍보팀장들은 사업 홍보 기능 중심을 갖지만, 세종문화회관은 기관의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도 임무를 많이 부여받아요.
누가 제 인터뷰를 보면, ‘너희가 못하니까 그렇게 주목성이 되는 거야’ 하겠지만 ‘세종문화회관이 00를 했다’는 주목성이 있죠. 이런 인지도만큼 더 잘해야 하는 눈높이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고객이 가지는 신뢰감만큼이나, 책임감이 많기 때문에 조금만 잘못해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반드시 적절한 피드백을 해줘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아주 사소한 일들이 크게 오해를 일으킬 수도 있어요. 반대로 세종문화회관에서 하는 공연, 교육, 전시니까 어쩔 때는 솔직히 우리가 봐도 고객이 오지 않을 것(?) 같은 프로그램도 믿고 보는 프로테이지가 있다는 겁니다. 그게 세종문화회관이 가지고 있는 인지도와 비례하여, 흔히 말하듯 ‘절반은 먹고 간다’ 인 셈이죠. 그렇기 때문에 고객들의 신뢰를 배신하지 않는 충실한 운영을 해야 하고 그 인지도가 긍정적인 시너즈를 가지고 갈 수 있게 해야 해요.
5. 당신이 하는(해왔던) 일의 시퀀스( '기-승-전-결')는 보통 어떤 흐름으로 이루어지나요?
리서치, 의견수렴, 트렌드 읽기를 통한 추진 목적과 방향성이 설정되면, 각종 사업의 실무 전략기획서가 수립됩니다. 추진계획에 의해 세부사업 준비가 들어가고 구성, 예산, 섭외, 홍보 실행이 구체화됩니다. 그리고 무대에서 공연이, 홍보가 기사나 소셜에 노출이 되며, 아카데미 강좌가 개강을 하여 모두 고객과 접점을 이루는 순간이 전개가 됩니다. 다음에 그 결과를 정리하고, 잘된 점, 잘못된 점, 고객의 반응과 더불어 계량적인 결과를 토대로 사업의 존속 여부와 향후 계획을 결론 내어 마무리합니다. 그 후, 다시 준비에 돌아가는 ‘기- 승-전-결’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구조로 일의 흐름이 반복되죠.
6. 일의 과정에서 '당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혹은 '요구받는 가치'는 무엇이 있나요?
모든 각각의 프로젝트가 브랜드가 되는 것이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이고, 스스로 목표의식이기도 합니다. 잘 만들어 허세가 아닌, 확실히 다들 엄지 척할 수 있는 그런 목표로 하면 중간 이상은 할 수 있다 생각해요. 말씀드렸듯 저는 세종문화회관은 오래 역사와 인지도가 있기 때문에 좋은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도록 거기에 발맞춰 프로덕션(제작)이든 프리젠팅(기획)이든, 대관 유치든 잘해야 한다 생각해요. 고객은 세종문화회관 사업의 주최가 누구인지 보다 그냥 세종문화회관 사업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내 거 남의 꺼 따지지 말고 모두 잘 믿고 방문하는 복합예술 공간 서비스를 펼쳐야 하는 거죠.
7. (최근 3년 동안) 당신이 특히 해결해보고 싶었던 문제(과제)는 무엇이었나요, (문제) 과제를 만났을 때, 진입장벽 혹은 페인 포인트(그동안 해소하지 못한 불편함, 어려움 등)는 무엇이었고, 어떻게 풀어보려고 접근하셨나
저는 일단 일을 할 때 안 된다고 마음먹는 순간 안 되는 방향으로 수립이 된다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어떤 난제를 만나도 무조건 되게 한다는 다소 무식한 마음으로 일을 해요. 그래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브레인스토밍을 제안하여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고 거기에서 장점과 단점을 저 나름대로 추출하죠. 그런 과정을 거쳐 실현할 수 있도록 정리해 갑니다. 그렇게 모두의 지혜를 모으기 때문에 특별히 안 되는 일은 없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진입장벽이나 페인 포인트가 생겼을 때는 관련하여 상위법, 관련 규정, 근거 등과 예외조항들을 살펴보고, 그에 따른 대안과 방법론을 만들어 풀어 가는 편이에요. 규정이나 관련 근거들에는 언제든 예외조항이 존재하거든요. 공공기관의 특성상 여러 제약과 규정으로 업무 추진에 다소 소극적인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사업 중심의 마인드가 강해서 제가 처해 있는 환경에서 답답함과 문제의식을 가지기도 하지만, 결국 공공이든 민간이든 결국 예술이 중심이기에 ‘Show Must Go On’을 생각하고 그것이 언제나 옳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의지를 갖는 거 같아요.
음... 해결하고 싶은 일이라기보다 앞으로 지향해야 할 과제는 아날로그 시스템으로 되어있는 업무 환경을 좀 더 시스템화 될 수 있도록 바꾸고 싶어요. 제가 공연기획팀장으로 있을 때 대관시스템을 많이 전산화시켰어요.
심사 자료도 상당히 두껍고 무거운 심사 조서를 가지고 제본하여 그것을 가지고 심사를 진행하고, 심사표와 집계도 수기로 해왔어요. 그래서 심사 조서를 노트북 또는 패드로 보도록 하고 심사표에 수식을 입혀 그것을 쉽게 집계하는 OA로 바꾸었고 다소 불합리하게 느꼈던 대관자들의 초과 사용시간을 세분화하고 환불기준을 정비하여 합리적인 대관료를 청구할 수 있도록 개선했습니다. 대관 안내 가이드도 노션 툴을 활용해 대관사들이 쉽게 필요한 부분을 모바일로 찾아볼 수 있도록 바꾸었죠.
그밖에 무인 물품보관소와 무인 오페라글라스 대여도 도입해서 불필요한 안내 인력도 최소화하고 시스템화하려고 노력했죠. 현재는 예술교육팀에서 수강생 출석 확인을 수기로 하던 것을 모바일 결재와 함께 바코드를 통해 출석 인증을 하는 형태로 개선 중에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두 명이 할 일을 한 명이 할 수 있게 되죠. 이는 인력을 줄이는 것보다 함께 일하는 팀원들이 기계적인 일보다 좀 더 창의적이고 기획적인 일과 고객과 합리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그 얘기를 하려다 보니 너무 길어졌는데 그게 제가 지향하는 과제인데 이게 답이 되려는지 모르겠네요.
8. (최근 3년 동안) 당신이 기억나는 '보람의 순간'이 있었다면
저는 보람의 순간이 많았던 거 같습니다. 결과 없이 과정만이 있지 않도록 노력한 대가이고 따라준 팀워크에 감사한 일이겠죠. 3년이 좀 지난 거긴 하지만 홍보팀에서 ‘디자인 경영’으로 산업통상부 장관상을 세종문화회관이 수상한 것이 기억에 남아요. 그 이후로 젊어지고 재기 발랄해진 이미지로 한층 다가설 수 있는 세종문화회관이 될 수 있었고, 홍보팀의 디자인 역량이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죠. 공연기획팀에서 가장 보람된 순간은 들어 보셨을 텐데, <리그 오브 레젼드: 디 오케스트라> 게임콘서트를 기획한 일입니다. 기존의 여성 관객 중심으로 관객층이 형성된 공연시장에서 남성 관객을 60% 이상으로 확장시켰고, 게임 시장의 소비자를 공연 관객으로 유입시켰죠. 객석은 만석이었고 로비는 자발적 코스프레들이 참여하면서 공연 관람과 동시에 축제가 연출되었습니다.
특히 리그 오브 레젼드의 라이엇 게임사는 처음에 제가 게임콘서트를 제안했을 때 반신반의했습니다. 여러 차례 설득과 공연에 이해를 돕기 위한 여러 과정을 반복했고, 어느 날 라이엇 게임즈 관계자님께서 관련 LP판을 주시며 잘해보자고 하시더 라구요. 그래서 든든한 스폰서십을 기반으로 성공적인 공연을 개최할 수 있게 되었죠. 거의 1년 이상의 과정이 필요했고 결과는 참으로 보람 있었죠. 저도 그렇게 많은 남성 관객으로 대극장과 그 주변까지 전방위적으로 가득 채울 수 있을지 몰랐어요.
그리고 코로나19로 여러모로 힘들었던 상황에서 공연을 준비하던 기획사, 제작사, 출연진을 지원할 수 있는 제안들을 계속 고민했었죠. 그중에 하나가 “힘내라 콘서트”라는 기획을 했어요. 힘콘은 서울시 긴급 지원 추경예산 사업으로 선정이 되었고, 제작자들에게 공연장을 제공하여 준비했던 공연을 올릴 수 있게 공연장과 제작비를 지원하고, 공연장은 유휴 기관에 온라인 공연으로 관객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사업이었습니다. 또한 공연장 대관은 정기, 수시 대관으로 일정한 시간을 두어 공고를 하고 심사과정을 거쳐요. 빨라도 30일 이상은 소요되죠. 그런데 코로나로 공연장이 수시로 취소되었고 공연장을 비우고 갈 수밖에 없어 손실이 컸어요. 거기에 공연 재개와 취소가 반복되는 코로나 상황에서 대관사(제작사) 입장에도 지원금을 받게 되거나 온라인 공연을 하게 되면 바로 공연장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긴급 공실 수시대관> 제도를 만들어 심사과정을 단순화하여 실시간 대관의 수요과 공급의 순환을 이룰 수 있도록 했죠. 저희도 공실율을 줄이고 필요한 대관사에 바로 공급이 가능하게 되었죠. 제가 만든 이 제도는 현재 세종문화회관 공연장 대관사업 운영에 지속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작년에 예술교육팀에 와서 강좌를 리뉴얼을 했습니다. 회전문 수강생으로만 계속 갈 수 없고, 고령층 중심이 된 수강생을 MZ세대까지 확장하는 강좌로 프로그램을 새 단장했습니다. 코로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세대 유입이 정말 이루어졌고, 세종문화회관 전체 사업장에서 저희 교육팀이 회원 만족도 조사 1위를 차지했어요. 보람이라는 것이 꼭 좋은 결과만을 가지고 말할 수 만 없겠지만 그래도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에 대한 결과가 고무적이었기에 보람있었던 거 같아요.
9. 당신이 가진 내적인 힘들 가운데, 어떤 힘이 강하신 것 같나요(장점, 나다운 것 등)?
저는 외유내강 형이에요. 부모님 덕분에 다소 나이보다 어려 보여 주니어 같은 느낌이 있지만요. 그게 외유라면 저는 일에 있어 사업을 확장해 내는 상당히 적극적이고 전략적이며 추진력이 강한 편이에요. 부드럽지만 강한 내성을 지녔다고 할까요? 그리고 상당히 솔직한 편이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것을 좋아하고 유연하죠. 그래서 이런 면들이 일과 만나면 집중력을 발휘하고,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하여 다소 냉철한 워크 홀릭입니다.
10. 당신의 생각과 행동에 영감/영향력을 주었던 책, 음악, 공연, 영화, 전시 혹은 저자, 작가 등을 소개해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오랜 직장생활과 제법 연령이 있다 보니 영감과 영향력을 주었던 것은 너무나 많은 듯합니다. 한 사람의 인격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여러 가지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이죠. 몇 가지 말씀드리면, 저는 문유석 판사님이 쓰신 <개인주의자 선언>이라는 책에 개인주의를 추종합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개인주의자는 개인을 중심으로 하되 자기의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오만과 편견에서 나아가고 집단주의, 이기주의 등에서 벗어난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는 “합리적인 개인주의자”죠. 한 명의 시민으로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합리적으로 수행하는 조용한 개인주의자 그것을 닮아가려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술작품으로 팝 아트의 선두주자였던 로이 리히텐슈타인 <행복한 눈물> 그림 스타일을 좋아해요. 가벼운 듯 보이지만 감각적인 세련됨을 가지고 있어 이를 추구합니다. 또한 행복 속에서 눈물이라는 변증법적인 스토리 역시 저의 페르소나로 느끼고요. ^^ 또,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여주인공 스칼렛의 인생 역정을 다룬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성 주인공에게 많은 시간 영감을 받았죠. 스칼렛 오하라는 당시 시대에는 드문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죠. 일과 사랑을 상당히 열정적으로 하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캐릭터예요. 1939년에 만들어진 영화인데도 여전히 동시대적 공감을 느낍니다. 특히 영화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내일은 내일의 태양의 뜬다)” 의 대사가 있는데, 어떠한 시련과 곤궁에도 다시 도약을 꿈꾸는 열정과 긍정의 의지를 담고 있어서 저는 응원이 필요한 순간에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를 주문처럼 새기곤 합니다. 마지막으로 장기하의 <부럽지가 않아> 곡이 영감까지는 아니지만 자조적 독백 같아, 쿨 하게 수용하고 심각하지 않게 삶을 유쾌로 해소하기를 원하는 분들께 권하고 싶네요. 모든 게 부럽지가 않음이 부러워서요.
11. 앞으로 어떤 일(작업, 역할)을 하고 싶나요? 그것을 위해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준비하고 있(싶)나요?
현재는 예술교육팀에 있으니 예술가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강좌나, 좀 더 독창적인 교육강좌로 구성하고 싶습니다. 온라인 교육이 점점 확장되는 추세에서 브랜디드 러닝을 통해 세종문화회관만이 할 수 있는 교육 강좌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거든요. 그리고 공연 중심으로만 관심을 가지며 화제성과 의미가 있다 싶으면 공연 관람을 했는데, 앞으로는 미술시장, 미술에 대해서도 좀 더 폭넓게 살펴보고 싶어요. 복합 예술공간에는 공연예술 외에도 미술관에 대한 확장도 중요하다 생각하거든요. 또 장애 예술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습니다. 그냥 공급자들에 의한 장애 예술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하는 베리어 프리를 지향하는 아티스틱한 장애예술을 기획해 보고 싶어요. 이런 것을 위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책과 현장을 통해 벤치마킹하는 것이 저의 준비라 하겠습니다.
12. 당신을 좀 더 알 수 있는 소셜미디어/사이트/뉴스를 알려주세요.
포털 사이트에서 "세종문화회관 오정화" 검색을 하시면 저와 관련한 이모저모를 볼 수 있고요. 그리고 페이스북을 통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oh.junghwa.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