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류의 예술로(路)] 2022.06.15
초연결의 풍요 속에 느끼는 고립감
고립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마찰 없는 비접촉의 시대는 SNS 초연결의 풍요 속에서도 연결의 빈곤을 느끼게 한다. ‘좋아요’와 하트를 누르는 연결은 많지만, 결국 각자 혼자 있는 상태에서의 연결이다.
외로움이라는 주관적 감정을 측정하는 정량적 도구 중에 ‘UCLA 외로움 척도’라는 것이 있다. 20개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런 질문들이 있다. 4점 척도로 묻는데, 마음속으로 한번 대답해봐도 좋을 것이다. 당신은 ‘얼마나 자주 내 주변 사람과 마음이 잘 맞는다고 느끼시나요?’, ‘얼마나 자주 혼자라고 느끼십니까?’, ‘얼마나 자주 내 관심사와 생각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이런 질문을 ‘우리 조직에서’, ‘우리 학교에서’ ‘우리 지역에서’ 등으로 한정해서 물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해당 질문을 통해 외로움이 빗물처럼 고여있는 중증 상태로 보이는 집단, 조직, 도시의 모습이 포착된 연구결과는 많다.
서울시의 경우 2021년 ‘1인 가구 특별대책 추진단’이라는 조직을 신설했고, ‘외로움대책팀’이라는 부서도 현재 있다. 인간이 외로움을 ‘느끼는 능력’은 외롭지 않고 싶은 진화의 산물이다. 인간이 욕망하는 자연스러운 상태는 남들과 연결되어 있을 때이다. 노리나 허츠는 저서 <고립의 시대>에서 배가 고프면 허기가 지는 것처럼, 타인과 사회와의 자연스러운 연결이 깨질 때, 외로움이라는 증상이 발생하고, 이는 다양한 질병과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진다고 하였다. 외로움으로 인한 연결의 배고픔은 하루에도 몇 시간씩 스마트폰을 잡고 인스턴트 연결을 습관처럼 폭식하게 한다. 외로움은 사람과의 연결이 부재했을 때도 느끼지만, 정책과 제도로부터 소외되어 있다고 느낄 때도 영향을 받는다.
지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투표율의 하락은 정치와 자신의 삶이 연결되어 있지 못한 외로움을 느낀 유권자의 마음이기도 하다. 외로움의 시대에 서로를 연결하는 ‘연결망’ 공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선거철이 되면 지역의 교통망 추가 확충과 GTX(Great Train Express) 급행철도 공약 등이 가장 앞에 나온다. 하지만 고립과 외로움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사회 연결망에 대한 공약은 크게 부각되지 못한다.
지하철 환승역과 같은 ‘매개자 네트워커’
<고립의 시대>가 동시대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주요한 추세선일 수는 있지만, 추세와는 차이가 있는 좋은 사회 연결망을 보여주는 사례도 많다. 각자도생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좋은 사회 연결망을 만들어내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연구자로서 문화·예술 분야 행정인, 기획인, 예술인 종사자 중에 의미 있는 현상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직업정체성 인터뷰를 진행해보면, 스스로 중요하게 인식하는 역할로 ‘매개자(mediator)’를 언급할 때가 많다. 성연주 박사(2021)의 <무엇이 지역문화 거버넌스를 활성화하는가>라는 연구에서도 매개자 ‘네트워커’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서울 성북구의 경우 문화적 방법을 통한 지역 네트워크가 서울의 타 자치구에 비해 잘 갖춰져 있다는 다양한 연구결과가 있다. 특히 지역도서관의 역할이 눈에 띄는데, 이곳 성북문화재단의 도서관팀장으로 있는 김주영(2022)의 경우 자신의 직업정체성을 “사람과 정보, 사람과 사람, 사람과 단체, 사람과 지역을 적극적으로 잇는 일”을 한다고 언급한다. 도서관 사서 직군이라는 선입견을 투영했을 때, 예상되는 답변은 아닐 수 있다. 그런데 실제 성북구 공공도서관은 지역의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양한 사업들이 많다.
특히 도서관을 허브로 하는 <한책추진단>이라는 책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 연결망이 있다. 진입장벽도 낮고, 2021년 참여자 노드가 1,300명이 넘었다. 이들은 각자의 동굴에서 도서관을 찾는 것이 아닌, 도서관이라는 지역의 광장에서 서로가 연결되어 다양한 세대와 사람을 만나며 삶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가능했던 이유는 지역의 도서관이 매개자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매개는 이쪽과 저쪽 사이에서 둘의 관계를 잇고, 맺어주는 역할이다. 누군가를 돕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고, 성장하게 하고 싶은 사람들은 대체로 매개자 정체성을 가진 경우가 많다. 매개자는 지하철의 환승역 같은 위치를 점유한다. 연구를 통해 확인되는 매개 역할을 잘하는 사람의 공통적 특징은 ‘유연한 포용력’과 다정함의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다양성이 혼재된 연결망을 만들고 싶을수록 ‘유연한 포용력’을 갖춘 매개자 환승역이 많이 필요하다.
네트워크가 달라지면 삶의 질이 달라진다.
좋은 연결망은 필요한 정보와 사회적 유대가 흐르는 장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어왕>에서 신하 에드거는 “슬픔을 나눌 동료가 있고 함께 견딜 친구가 있다면 마음은 많은 고통을 쉽게 극복해낼 것”이라고 말한다. 문화정책의 측면에서 ‘우리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연결망이 무엇일지’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유유상종으로 연결된 특정 연결망은 진입장벽이 높고, 별도의 비용이나 자격을 갖추어야 연결될 수 있다. 고립의 시대에 지역의 도서관과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하는 공공의 다양한 공간은 단지 우리가 함께하기만 하는 장소가 아니라, 우리가 연결되어 함께 할 방법을 배우는 장소이기도 하다.
보통 네트워크의 초기는 무질서의 상태이지만 무질서가 질서에 자리를 내어주는 임계점을 지나면 안정된 하나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 이 네트워크는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우리의 공유재가 된다. 쏘아 올려진 새로운 네트워크가 대기권을 돌파해 안정된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원리는 무엇일까. 열을 가해야 한다. 유연한 포용력이라는 용광로에 신뢰감과 친밀감, 다정함이라는 열을 임계점을 지날 때까지 꾸준히 보내야 한다. 내가 영향력이 있거나 뛰어난 미모를 갖고 있어 친밀감을 많이 받는다고 네트워크가 만들어지진 않는다. 보내야 만들어진다. 인사도 하고, 안부도 묻고, 서로의 관심사와 생각을 물어보면 더 좋다.
임계점을 넘어 잘 구워진 도자기처럼 자리잡힌 네트워크는 슬픔을 나누고,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평생의 자산이 된다. 네트워크가 달라지면 삶의 질이 달라진다.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되는 연결망을 문화정책에서 고민해야 할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