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류의 예술로(路)] 2022.04.13.
좀비화되고 있는 지금 우리 조직을 다시 살릴 수 있을까. 예술경영과 정책 분야 연구자로서 연구대상으로 만나는 문화재단 종사자들이 비슷하게 호소하는 증상이 있다. 조직문화가 문화롭지 않아 힘들다는 것이다. 2021년 11월에 <전국지역문화재단 지식공유포럼>이 춘천에서 개최됐다. 당시 포럼의 테마는 <우리 모두의 서식지, 재단을 문화롭게>였다. 현실 조직들이 문화롭지 않았는지, 당시 포럼의 열기가 뜨거웠던 기억이 난다.
좀비화된 조직의 병명을 고상하게 얘기해보면, ‘경직된 조직문화’라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서로가 불편해하며, 눈을 피하고, 인사를 잘 하지 않는 증상을 보인다. 증상이 심해지면 한편의 느와르 영화처럼 평가라는 화살에 독이 든 기준을 발라, 일을 많이 한 사람, 꼭 필요한 사람의 등에 화살을 쏘기도 한다. S, A였던 사람의 자부심에 C나 D를 선명하게 찍는다. 구실을 만들어 징계를 주기도 한다. 좀비화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이유도 모르면서, 와신상담의 복수심이 조직에 차곡차곡 쌓인다. 사람이 되고 싶은 누군가는 사표라는 독을 마시고, 조직을 떠나기도 한다. 밖으로 나가면 얼어 죽을 수도 있어, 나가는 것도 능력이 있어야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공공 문화재단은 멀리서 보면, 문화라는 옷을 입은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이는 곳이다.
조직은 왜 좀비가 될까, 좀비에게 물리면 좀비가 된다. 우리는 문명인이기 때문에, 현실에서 직접 누군가의 목을 이빨로 물어뜯진 않는다. 현실 좀비는 ‘비난하는 말’을 상대의 가슴에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꽂아 넣는 방법을 사용한다. 대부분 뒷담화를 하지만, 지위와 힘이 있다면 종종 공개적인 자리에서도 한다. 스스로 프로 일잘러라 생각하는 직원들 둘 셋이 짝을 지어 앙칼지게 위를 물어뜯는 경우도 있다. 당신은 비난받았을 때 쉽게 바뀌는가. 비난을 받는다고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비난은 상대의 자부심과 자존감을 훼손한다. 비난을 계속 받게 되면, 방어적인 상태가 되는 초기 증상을 지나, 심해지면 적개심을 가진 또 다른 좀비가 된다. 그래서 연말 종무식을 마치고, A 문화재단이나 B 예술조직의 단체 사진을 보면, 이 사람이 저 사람을 물었고, 저 사람이 그 사람을 물었고, 그 사람이 다시 이 사람을 물어서 서로 좀비가 된 관계도를 그려볼 수 있다. 자신이 문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자신을 물었던 사람은 오래 기억한다. 그런 기억은 우울증으로 전이되기도 한다.
조직의 좀비화 정도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A 문화재단에 50명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1번 사람에게 질문해본다. 2번부터 50번째 직원에게 느끼는 신뢰 정도를 0에서 100까지 각각 답변해달라고 한다. 종종 마이너스는 없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다. 좀비일 확률이 높다. 그렇게 한명 한명씩 50명 모두에게 물어본다. 1번부터 50번까지 어떤 사람이 신뢰를 많이 받았을까? 신입사원이 많이 받을까, 대표이사가 많이 받을까. 성별, 연차, 직급이 신뢰를 받는 정도와 상관관계가 있을까. 종종 개인의 매력이나 역량이 높을 경우, 보내는 신뢰보다 받는 신뢰가 높은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대체로 내가 동료들에게 보낸 신뢰의 총량과 받는 총량은 비슷하다. 내가 평균적으로 30을 보내면, 30을 받는다고 보면 되고, 70을 보내면, 70을 받는다고 보면 된다. 뒷담화를 많이 하면, 뒷담화를 많이 받고, 인정과 격려를 많이 하면, 그만큼 지지를 받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보내는 신뢰감이 낮을수록 조직의 좀비화 경향성이 커진다. 어떤 조직의 대표이사 혹은 관리자급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이 본인 조직의 주요 직원을 헐뜯고, 비난하고 있다면, 그 조직은 좀비화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상관의 비난만큼 일에 대한 열정을 죽이는 것은 없다. 이런 유형의 리더는 인사권을 통해 끊임없이 관리자를 교체하면서, 서로를 물어뜯게 하는 아비규환의 상태로 조직문화를 만든다. 그 상처는 오랫동안 구성원의 기억에 남게 되고, 경직된 조직문화 DNA가 생성된다. 그 DNA는 형식적인 웃음 뒤에 냉소가 가득한 직무 태도로 드러나고, 서로를 소외시킨다. 어떤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인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독서실 같은 공기가 느껴진다면, 조심해야 한다. 물리기 전에 바로 도망 나오길 권한다.
좀비화되고 있는 <지금 우리 조직을>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조직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좀비 조직은 구성원의 자존심에 자양분을 공급해주어야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서로에게 보내는 뒷담화, 비난, 이간질, 그리고 냉소의 총량을 줄일 수 있으면 된다. 최근 사례연구로 흥미롭게 보고 있는 춘천문화재단을 살펴보면, 직원 상호 간의 응원과 지지의 연결 강도가 상당히 강해 보인다. 조직 내부의 협업 강도와 직무 몰입도가 높지 않으면, 해내기 어려운 <100인의 라운드 테이블>, <문화도시 시민협의체> 등의 사업을 뚝딱뚝딱 해내고 있다. 요즘 인기 있는 TV 프로그램 중 하나인 <강철부대>처럼 실행력 있는 특공대의 팀워크를 보여주고 있다. 연구 인터뷰에서 춘천문화재단 문화도시 센터장으로 있는 강승진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조직이 일하는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이 일을 못합니다. 제가 실제로 직원들 교육을 할 때, 늘 좀비 사진을 띄워요. 조직이 좀비 조직으로 바뀌는 첫 번째 이유는 이간질이 시작됐을 때거든요. 우리는 살아내야 하고, 자기 존재를 증명해야 되는 곳에 와 있는데, 그걸 하지 못하면, 남을 공격하면서, 시선을 분산시키거든요. 그래서 직원들이 나라는 사람이 도대체 뭘 하고 싶은지 드러낼 수 있게 하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과정이 중요했어요”
인간은 내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특히 직업으로서 문화재단을 택한 사람들은 예술과 문화를 통해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것에 기여하고자 하는 선한 동기가 대체로 있다. 그래서 직원들의 직업 동기와 가진 장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기회를 주면서 인정욕구를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이 리더의 성패를 가른다. 신뢰를 받고 싶으면, 신뢰를 보내면 된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하는 것도 신뢰를 보내는 것이다. 생각보다 입이 잘 안 떨어질 수 있다. 그래도 해보길 권한다. 그러면 진심으로 당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소리를, 조직의 공간에서 더 많이 들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