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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석류 Jul 04. 2022

세상의 관성에 틈을 내어보는 우리형! 문화기획자 박도빈

[문화다원 No33] 예술人기획人행정人 부족 간 인터뷰 프로젝트

서른세번째 좌표는 ‘문화예술커뮤니티 동네형들’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10년 간 운영했던 문화기획자를 만나보았습니다. 이 분야에 관심을 두게 되면, 지역문화재단에 입사하는 길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지원조직의 성격을 가진 ‘문화재단’에 들어가면, 결국 나의 손때를 묻히면서, 구체적인 사업의 시작과 끝을 주도적으로 경험하기 쉽지 않습니다. 기준을 가지고 힘껏 조력은 하지만 실행하는 맛은 못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의사결정을 외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하고, 조직의 리더가 언급하는 방향에 맞춰야 합니다. 그러면서 말과 글은 점점 둥글둥글하게 다듬어져 갑니다. 그래서 오히려 민간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기획자’들이 ‘자기다움’을 잃지 않으면서, 구체적인 직업 전문성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문화‘기획자’라는 직업정체성의 뿌리도 공공에 있는 사람들보다, 민간 영역에 있는 분들이 더 강하게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에 만난 기획의 경우 말투, 글의 문체, 일을 하는 방식과 방향성에서 다정하지만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이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대 전국 단위 다양한 문화재단에서 함께 일하고 싶은 파트너로 많은 협업을 하는 분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관성에 틈을 내어보는 우리형!

문화기획자 박도빈


1. 이름은? 사회에서 연차는 어떻게 되시나요?

박도빈입니다. 첫 직장에서 일을 시작한지는 13년 정도 되었네요.    

 

2. 어떤 일을 해 오셨나요. 일터(작업의 공간)에서 당신의 역할을 소개해주세요 &역할 속에서 자신의 직업정체성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20대에 미국, 프랑스, 인도에서 자원활동을 하면서 비영리단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국제교류단체에서 활동가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외국인 자원활동가들이 국내의 대안학교, 지역아동센터, 마을공동체에서 활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했고 이후 환경, 문화예술, 도서관 등 여러 분야의 단체에서 일했습니다. 2012년 마음 맞는 동료들과 서울 강북구로 이사와 ’문화예술커뮤니티 동네형들’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10년 정도 운영했고 지난 3월 문을 닫았습니다. 동네형들의 공동대표로서 저의 역할은 단체의 정체성과 경쟁력을 만드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구성원들의 욕망과 재능을 담은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그 가치와 성과를 사업으로 연결하여 단체를 지속가능한 일터로 만드는 일을 해왔습니다. 뭔가 설명이 거창하지만 쓰고 보니 그냥 기획자네요.      


3.  한번 떠올려 주시겠어요. 당신이 하는(해 왔던) 일을 선택했던 내적인 욕구, 초심, 계기, 우연 등은 무엇이었나요

2020 동네형들

활동가로 일을 시작하면서 시민 없는 시민운동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의미있는 활동을 하는 시민단체들과 선배 활동가들이 많지만,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민운동의 한계를 느꼈고 새로운 세대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안산에 있는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라는 대안예술공간에서 뭔가 이상하지만 강렬한 작업을 진지하게 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만났는데, 나도 이런 재미있는 기획을 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좋은 기획자, 예술가들과 꽤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며 기획자로서 필요한 관점과 태도, 감각을 스스로 익힐 수 있었구요.     


4. 당신이 하는 일에서, 당신이 생각하는 고객은 누구인가요

동네형들이 해왔던 기획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지만 주목받지 않았던 존재들을 호명하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청년, 1인가구, 세입자, 니트, 장애인, 세월호, 길고양이까지. 프로젝트를 통해 만났던 모든 존재들이 고객이라고 생각합니다.  

    

4-1. 당신이 생각하시는 고객에게, 당신은 어떤 역할기대와 요구를 받는다고 생각하나요.

공공 영역에서 활동하는 기획자의 역할은 고객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고객이 될 수 있는 공공의 장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커뮤니티, 워크숍, 교육 프로그램, 공론장, 축제 등 제가 기획하는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다양성의 공존과 안전한 관계망입니다.      


5. 당신이 하는(해왔던) 일의 시퀀스( '기-승-전-결')는 보통 어떤 흐름으로 이루어지나요?

<청년+약국>

기 : 해보고 싶은 것이 생기면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저를 가장 잘 아는 동료들을 설득하지 못하는 기획은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도 설득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응이 좋지 않은 아이디어들은 좀 더 시간을 두고 고민합니다.   

승 : 동료들의 반응이 좋은 아이디어는 바로 실행을 합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가장 큰 장점은 새로운 기획이 당장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계속 시도하며 발전시키고 확장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드라마의 파일럿 에피소드처럼 참여자들의 피드백과 주변의 의견을 바탕으로 기획을 평가합니다. 막상 해보니 기대 이하인 기획들은 [너무 앞서가 아직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폴더로 들어갑니다.      


전 : 파일럿 단계에서 검증된 기획은 프로젝트로 발전시킵니다. 구조와 기간, 예산 등을 고려하여 자체적으로 운영이 가능할지, 외부 자원이 필요할지를 판단합니다. 외부 자원이 필요한 경우 주로 공모사업을 활용합니다. 최소 3년 정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나갑니다.      

결 : 3년 정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하나의 사업으로서 브랜드가 구축됩니다. 이 시점부터는 자체적으로 운영해나가거나 다른 지역, 기관에서 제안을 받아 영역을 확장합니다. 동네형들의 추리닝 브런치, 프로젝트 세입자들, 청년약국, 인권살롱 등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최소 5년에서 9년까지 운영되어 온 사업들입니다.      


6. 일의 과정에서  '당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혹은 '요구받는 가치'는 무엇이 있나요?  

기획은 ‘기획자의 고민이나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기획자로서 저의 당사자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제 관심사나 경험과 연결되는 주제를 저의 언어로 전달할 때 좋은 기획들이 나왔던 것 같아요. 봉준호 감독이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의 수상 소감 중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말을 인용하여 화제가 되었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The most personal is the most creative'로 통역됨)”라는 문장을 좋아합니다. 단체를 정리해야겠다고 결정한 이유도 저와 다른 공동대표가 더이상 청년의 당사자성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희의 당사자성으로 기획을 하다보니 동네형들은 자연스럽게 청년단체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저희가 아닌, 청년들을 위한 기획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누군가를 위한 기획은 굳이 저희가 할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단체를 정리한 지금은 40대들과 어떻게 놀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일을 어떤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하는지도 중요합니다. 협업을 하는 이유는 서로의 다름으로 시너지를 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을 할 때 의사결정의 과정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편입니다. 단체를 운영할 때는 동료들이 새로운 경험과 고민을 가질 수 있도록 1년 중 1개월은 문을 닫고 각자의 시간을 보냈고, 개인으로 일하고 있는 현재도 저와 다른 성향의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즐깁니다.

     

7. (최근 3년 동안) 당신이 특히 해결해보고 싶었던 문제(과제)는 무엇이었나요,  (문제)과제를 만났을 때, 진입장벽 혹은 페인포인트(그 동안 해소하지 못한 불편함, 어려움 등)는 무엇이었고, 어떻게 풀어보려고 접근하셨나요

새로운 세대가 진입하여 활동을 지속하고, 온전히 자립해 나갈 수 있는 지역의 문화예술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것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간 여러 지역에서 인력양성사업을 통해 예비기획자들을 만나고 있는데 교육과정 이후에 어떻게 기획자로 성장하고 일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해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10년 전 저도 같은 고민을 했었구요. 10년 후에도 새로운 세대가 같은 고민을 하게 하지 않으려면 지역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기 위해 애쓰기 보다는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문화예술 분야에는 훨씬 많은 구조적인 문제들이 있고,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관행을 넘어 당연해진 것들에 대해 약간의 균열을 만들어 보고 싶어 기획했었던 몇 가지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는 링크로 첨부합니다.


(글. 박도빈/ '세상 당연한 것들에 조금씩 균열내기_예술경영웹진 바로가기) : 한번 읽어보세요-


8. (최근 3년 동안) 당신이 기억나는 '보람의 순간'이 있었다면

지난 3월, 단체가 운영하던 공간을 정리하며 문득 ‘스스로 선택한 마무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어떤 일이든 다음을 기약하지 않고 마음껏 해왔으니 후회가 없었고, 마지막까지 몸은 바빴지만 삶의 우아함을 잃지 않았고, 타의가 아닌 자의로 폐업신고를 할 수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구요. 아이러니 할 수 있지만 단체의 마지막 순간이 가장 보람의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9. 당신이 가진 내적인 힘들 가운데, 어떤 힘이 강하신 것 같나요(장점, 나다운 것 등)?

기획자로서의 성장은 제가 가진 결핍들을 채우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단체의 대표로서, 축제의 감독으로서, 문화기획학교의 멘토로서 늘 제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은 디테일과 정성을 담으려고 노력해왔구요. 자신의 결핍을 잘 아는 것이 장점일 수 있겠네요.      


10. 당신의 생각과 행동에 영감/영향력을 주었던 책, 음악, 공연, 영화, 전시 혹은 저자, 작가 등을 소개시켜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일하다 보면 약간의 슬럼프가 올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애런 소킨의 <West Wing>을 즐겨봅니다. 백악관의 서쪽 별관인 웨스트윙에서 일어나는 대통령과 참모들의 이야기이고,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토론하고 서로를 설득하며 협업해나가는 과정을 보다보면 왠지 모르게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곤 합니다. 입법 과정이 이렇게 흥미진진할 수 있는지 처음 알게 되었고, 대선 토론 에피소드의 경우 배우들이 직접 준비하여 스크립트 없이 토론하는 장면을 생방송으로 내보낼 정도로 완성도 높은 드라마이니 꼭 한 번 보시길 추천합니다.      


11. 앞으로 어떤 일(작업, 역할)을 하고 싶나요? 그것을 위해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준비하고 있(싶)나요?

앞으로의 10년은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할지 아직 고민하는 중입니다. 경험과 경력이 쌓인 만큼 막연한 가치를 지향하기보다는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동료 기획자들과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있어요.      


12. 당신을 좀 더 알 수 있는 소셜미디어/사이트/뉴스를 알려주세요.


(바로가기) https://www.facebook.com/dobin.park.5


장석류의 예술경영 인물열전,

"Fusion of horizon".



세상의 관성에 틈을 내어보는 우리형!

문화기획자 박도빈 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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