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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석류 Oct 13. 2022

지역문화를 만드는
'축적의 시간'은 무엇일까?

장석류. 지역문화진흥원 웹진 기고글(2022.10.04)


당신의 시간은 무엇을 축적하고 계신가요?


나에게 ‘인생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누군가 물으면, 어떤 위치나 자리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특별한 날이 인생의 목표도 아니다. 목표라고 하기에는 그 시간도 결국 지나가는 시간이다. 그 질문을 “당신의 시간은 무엇을 축적하고 싶은가요?”라고 바꿔보면 좀 더 편안해진다. 쌓여가는 삶에서 오늘을 살아가면 되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동시대 예술경영·행정 분야에서 좋은 사례가 되는 사람과 조직, 제도에 관한 얘기를 깊게 들으려 하고 누군가의 생각을 잘 읽어보려 한다. 그것이 축적되면 내 생각을 말해보고, 내 생각을 쓰는 시간을 축적하고 있는 것 같다. 결국, 내가 세상에서 관심 있는 분야를 듣고, 읽고, 쓰고, 말하는 시간을 하루하루 축적해 가고 있다. 별생각 없이 지내는 시간도 많고, 읽기 싫은 날, 쓰기 싫은 날도 많다. 슬럼프가 있는 날도 있지만 쉬어 가더라도 그 시간을 꾸준히 쌓아가보려 하는 것 같다.


나의 축적된 시간이 누군가에게 가 닿을 때가 있다. 강의나 연구지도를 통해 학생들을 만날 때도 있고, 전국의 문화재단 관계자들과 내가 축적한 생각과 글을 가지고 함께 일할 때도 있다. 나는 내가 축적한 시간을 통해 누군가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을 때,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누군가의 생각을 잘 듣고, 읽고, 그것을 사유한 시간이 축적되지 않으면, 나의 말과 글은 상대에게 잘 가 닿지 않는다. 하지만 축적의 시간을 보낸 말과 글들은 다시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국립창극단 <귀토> (출처 : 국립극장 홈페이지)


무대에 서야 하는 예술가가 준비된 축적의 시간이 빈곤하면, 그 무대는 관객에게 잘 가 닿지 않는다. 하지만 꾸준하게 축적된 시간을 보낸 예술가를 만나면, 객석에서도 어떤 특별함을 느낄 수 있다. 올해 만난 공연 중에 국립창극단의 <귀토>를 볼 때, 시간의 축적으로 작품이 익을 대로 익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리꾼 이자람의 책 <오늘도 자람>에서 ‘보이지 않는 축적’을 얘기한 부분이 있었다. “사실 인생을 바꾸는 건 삶의 이면에 쌓인, 보이지 않는 시간의 축적이다. 옳게 쌓인 시간의 축적은 그렇게 휘어지는 사회 속에서도 버티며 살아가다가 필요한 순간 빛을 발하는 단단함이 된다.” 축적의 시간은 발효되어 깊어지고, 그 깊어진 시간이 삶에서 빛날 때가 있다. “당신의 시간은 무엇을 축적하고 계신가요?”


점, 선, 면으로 가는 축적의 입체성


축적은 쌓아가는 것이다. 쌓아가는 것은 시간성이 동반된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의 축적, 혹은 축적의 시간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하루아침에 잘 익은 창극 <귀토>가 만들어지지 않았고, 하루아침에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의 연주력이 빚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어떤 점을 찍어야 한다. 피아노 학원을 등록하는 점을 찍을 수도 있고, 지역문화의 거점이 되는 어떤 공간을 만들어보는 시도가 점이 될 수도 있다. 지역의 문화기획자를 양성해보고자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거나 참여해보는 것이 점이 될 수도 있다.


점을 찍는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는 것이고, 무언가를 시작해보는 것이다. 점을 찍는 것은 씨앗을 뿌려보는 것이고, 꿈꾸어보는 것을 시도해보는 것이다. 둘이 서로 사랑하려면 누군가는 고백이라는 점을 찍어야 한다. 순정을 담은 촌스러운 고백은 하지 못해도 적어도 마음을 보여주는 점은 찍어야 한다. 하지만 고백을 했다고 언제나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상대의 눈빛에서 ‘아니다’라는 신호가 오면, 술 한잔으로 점을 지워야 할 때도 있다. 피아노 학원을 등록했다고 모두가 임윤찬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축적의 시간을 시작하려면 ‘시작이라는 시도’를 할 수 있는 점을 찍어야 한다. 어떤 시작을 해볼까, 어떤 점을 찍어볼까. 내가 그냥 하고 싶은 것, 혹은 우리 지역의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점을 찍어봐야 한다. 점을 찍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다. 그 점이 3일 뒤에 ‘게으름이라는 바람’에 날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게으름과 귀찮음’의 비바람을 이겨내면 그 점이 힘을 가지고 뿌리를 내릴 수도 있다. 물을 먹고 빛을 받으며 가꾸어가면 생명력이 생기기 시작한다. 실력이 생기기 시작한다. 빛이 나기 시작한다.



힘이 생긴 점은 성장하며 고유한 매력이 생긴다. 그 점은 넘치는 힘을 가지고 줄기를 뻗기도 하고, 그 매력으로 다른 곳에서 너와 연결되고 싶다는 고백을 받을 수도 있다. 성장한 점은 사람일 수도 있고, 어떤 문화공간일 수도 있고, 조직일 수도 있다. 성장하는 점이 또 다른 점과 만나 선으로 연결되면 더 큰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문화기획자 간의 연결, 지역 시민 간의 연결, 지역 공간 간의 연결, 지역 데이터와 데이터의 연결은 점과 점의 연결이다. 점과 점이 연결되면 선이 되고, 선과 선이 연결되면 면이 생기기 시작한다. 면이 생기기 시작하면 ‘모양’이 생기기 시작한다. 모양이 잡히고 뚜렷해지면 멀리서도 보이기 시작한다. 멀리서도 보이면, 그 지역문화의 고유성을 구체적으로 보고, 느낄 수 있게 된다. 모양이 보이는 매력적인 지역문화를 가지고 있는 곳은 브랜드가 생기면서 더 많은 사람이 방문하게 되고, 더 많은 지역과 연결된다.



축적은 하나의 점이 더 큰 점으로 성장하는 과정에도 있지만, 점과 점, 선과 선의 ‘관계의 축적’도 있다. ‘관계의 축적’이 커진다는 것은 서로 간에 더 큰 신뢰와 정보, 유대감이 흐른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지역문화 영역에서는 점이 성장하는 ‘기반 축적’만큼 선의 축적 다시 말해 ‘관계의 축적’이 중요하다. 이런 ‘관계의 축적’을 바탕으로 지역문화의 다양한 면들은 건강하고 입체적으로 쌓여갈 수 있다. 그래서 지역문화의 축적은 점, 선, 면으로 가는 ‘축적의 입체성’을 가진다.


‘지극한 정성’이 지역문화의 축적을 만든다


축적은 지성(至誠), ‘지극한 정성’의 시간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지역문화의 축적을 어렵게 하는 많은 요인이 있다. 이전의 애씀이 매몰되면서 꾸준함과 지속 가능함이 힘든 상황도 많다. 지역 정치·행정의 변동성도 있고, ‘기반 축적’이 약한 곳도 있고, ‘관계 축적’이 힘든 곳도 있다. 그럴수록 축적의 힘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동양의 고전 <중용(中庸)>에서 특히 23장은 ‘지극한 정성’으로 쌓아가는 축적의 힘을 이야기한다. 지역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극한 정성’으로 쌓아가는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지역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점, 선, 면이 성실하면 드러나고, 드러나면 뚜렷해지고, 뚜렷해지면 빛나게 되고, 빛나게 되면 사람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면 우리 지역은 점차 변하게 되고, 변화해 오래되면 살아남아 문화가 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중용> 23장 재해석) 지극한 정성의 축적이 지역의 문화를 만든다.


(출처.지역문화진흥원 웹진 지:문)

http://www.rcda.or.kr/webzine/202210/detail_put.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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