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평택시문화재단 포럼 발제문(12.9)
시작하는 기초문화재단은 '거버넌스형' 사업에 대한 필요와 압력을 동시에 느낀다. 올해도 문화예술 분야 공공영역에서 거버넌스를 주제로 하는 발제와 토론 등에 여러번 참여했다. 지난 12.9(금)에 평택시문화재단 요청으로, 출발하는 <기초문화재단에서 필요한 거버넌스에 대한 태도와 지향점>에 대해 언급한 발제문을 남겨본다. 당일 느낀 다양한 신호에서 다음의 여정에 대한 노파심도 들었지만, 지역에 애정을 가지고 계신 한분 한분의 이야기를 토론 과정에서 들을 때, 좋은 씨앗들이 많이 있으시구나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1. 거버넌스(governance)란 무엇인가?
많은 문화재단에서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평택시문화재단에서도 <2022 평택시문화재단 거버넌스 구축사업>이라는 이름으로 평택 시민 문화위원회를 모집하였다. 도대체 ‘거버넌스’가 무엇인데, 구축하고 싶은 것일까? 거버넌스라는 단어를 만나면 세련된 느낌도 들고, 함께 해보자는 분위기는 전해지는데, 정확하게 무엇인지 물어보면 선뜻 대답하기 어려워진다. 구축(構築)하겠다는 의미는 어떤 체제, 체계 따위의 기초를 세우거나, 시설물을 쌓아 올려서 만든다는 의미가 있다. 거버넌스는 시설물은 아니니, <거버넌스 구축사업>의 의미는 ‘거버넌스’ 체계의 기초를 세우고, 이를 쌓아간다는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거버넌스’ 체계를 만들고 싶은 것일까? 혹은 여기서 ‘거버넌스’란 무엇일까?
거버넌스의 학문적 안방은 행정학이다. 그렇다면 행정학에서 왜 거버넌스라는 개념이 나오게 되었을까? 1970년대 초반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한 미국의 행정학자 빈센트 오스트롬은 그의 유명한 저서인 <미국 행정학의 지적 위기>에서 전통적 행정학이 인류복지 증진에 기여하지 못하고 오히려 심각한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전통적 행정학의 처방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병든 사회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이 사회문제 자체’가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되기 시작한다(이명석, 2017). 어떤 문화재단의 경우 조직 내부에서 서로 물어뜯는 이기주의로 현장의 비판에 직면하며, 조직 자체가 문제가 되는 상황도 있다. 비대해지는 정부(government)와 공공조직이 모든 사회문제를 가장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만능열쇠는 아니다. 그래서 주류 행정학에서 대안적 처방으로 거버넌스라는 개념이 나오기 시작했다. 여기서 거버넌스는 공유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요구되는 여러 가지 ‘집합행동의 문제’를 잘 관리하고 조직화해서 공유재 문제를 해결해가는 것을 의미한다.
기초문화재단에서 언급하는 거버넌스는 해당 지역의 문화예술 영역의 공유재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한 공동의 행동을 잘 관리하고 조직화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 공동의 행동은 관·관, 민·관, 민·민 등 다양한 협력적 행동이 있을 것이다.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의 행동과 함께 언급되는 것이 협력과 신뢰이다. 신뢰가 없으면 협력하지 못하고, 협력하지 못하면 함께 행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함께 행동하지 못하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마치 국가대표 축구팀이 월드컵에서 선수 간에 신뢰를 갖지 못하고 협력하지 못하면, 골을 넣기 힘든 것과 비슷하다.
평택시 행정이 문화예술을 만났을 때, 평택시가 모든 문화예술 분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혹은 2020년에 출범한 평택시문화재단이 평택의 여러 사회문제를 문화예술로 대응한다고 했을 때, ‘재단이 그 많은 문제를 혼자서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만날 수 있다. <2022 평택시문화재단 거버넌스 구축사업>의 이면에는 재단 혹은 재단의 담당자만으로는 문제해결에 한계가 있으니 함께 골을 넣어볼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보자고 시민들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내민 손의 태도가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짝다리를 짚고 내밀 수도 있다. 어떤 손은 문제해결의 골을 넣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짝을 찾는 손일 수도 있다. 내미는 손의 태도와 마음에 따라 그 손을 잡을 수도 있고, 잡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서로 하나의 팀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흔히 민·관 거버넌스라고 한다. 이 민·관 거버넌스 팀에서 누구는 공격수를 할 수도 있고, 누구는 수비수를 할 수도, 누구는 코칭 스태프 쪽에 있을 수도 있다. 직접 뛰기는 힘들어서 관중석에서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중요한 것은 민·관이 서로 승부를 겨루는 적대적인 팀이 아닌, 한 팀이라는 것이다. 이 체계가 잘 구축되면 평택의 문화예술 민·관 거버넌스는 잘 작동하는 것이고, 이 체계가 움직이지 않거나 무너진다면 평택의 문화예술 거버넌스는 없거나, 실패했다고 얘기할 수 있다.
2. 기초문화재단은 왜 거버넌스를 얘기할까?
국립중앙극장, 예술의전당 등 흔히 얘기하는 국공립 공연장 사업 분야에서는 거버넌스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평택의 남부, 북부, 서부 문예회관 담당자들은 공연사업을 하면서 거버넌스를 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잘 느끼지 못할 것이다. 공연사업은 수요-공급이 어느 정도 분리되어 있고, 관객 수요를 잘 파악하여 예술가들과 협력하여 좋은 작품을 올리는 구조이다. 그런데, 지역문화진흥법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문화, 생활문화, 문화도시 사업 등은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사업이 많다. 재단이 일방적으로 사업을 주도하고 공급하는 구조가 아니다. 또한, 평택의 사회적 문제를 문화예술로 대응한다고 했을 때, 어떤 문제를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한지 재단의 담당자는 막막할 수 있다. 혼자 문제를 찾을 수도 없고, 해결할 수도 없어, 거버넌스를 떠올린다. ‘지역 시민들의 협력이 필요하구나.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구나.’
예술경영과 문화정책 분야 연구자로서 시민과 문화재단이 이인삼각 하는 거버넌스 네트워크를 통해 ‘삶의 질의 변화’를 느꼈다는 참여자 사례를 다수 확인할 수 있었다. 긍정적 관점에서 이제 시작하는 ‘평택 시민문화위원회’를 바라보면, 이곳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과 고민을 하는 이웃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좋은 이웃과 동료를 만나는 것은 돈을 주고 살 수 없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는 고립의 시대에 문화재단을 매개로 이곳에서 만난 사람을 통해 자아존중감이 커지고, 삶이 행복해졌다는 연구결과를 때때로 만난다. 이런 분이 많아질수록 재단 담당자는 자신의 업무에서 작은 성취를 계속해서 쌓아가고, 일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더 좋은 매개자로 성장하는 사례도 많다. 하지만 기대보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사례도 많다. 민·관 거버넌스가 주는 피로도로 인해, 지역문화재단을 생각하면 치를 떠는 현장 예술인이 많은 곳도 있고, 재단 직원 중에서 공황장애를 겪는 사례도 있다.
그렇다면 <평택 지역문화 거버넌스>에 함께 하는 재단 행정인과 시민들은 어떤 태도로 협력할 때, 좋은 거버넌스가 축적되거나, 혹은 실패하는 거버넌스로 가게 될까?
3. 기초문화재단 거버넌스에서 필요한 역할과 태도
1) 처음 민·관이 ‘거버넌스 체계 구축’을 위해 만났을 때, 상호 기대감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낮은 상호 신뢰도를 높이는 것보다, 초반에 생긴 기대 신뢰가 떨어지지 않게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초반에는 재단 행정이 좀 더 중심에서 전략적인 역할을 해주어야 하고, 시간이 갈수록 시민들이 중심에서 활동할 수 있게 조력자 역할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100% 시민들이 주도하는 거버넌스 체계는 존재하기 힘들다. 한국 문화정책에서 작동하는 민·관 거버넌스 체계는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고정 임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의사결정 권한을 1:1로 갖는 구조도 아니다. 하지만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분들은 상당한 시간 비용을 투입한다. 해당 시간을 투입하면 ‘내 삶에 도움이 되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행정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거버넌스는 거버먼트 행정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그 중심에 튼튼한 행정이 뒷받침되어야 작동할 수 있다.
2) 시작하는 거버넌스에서 만나는 첫 번째 위기는 ‘민·관 거버넌스가 동상이몽(同牀異夢)’을 맞이하는 경우이다(성연주, 2022). 재단에서 원했던 거버넌스와 참여하는 시민들이 기대했던 거버넌스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고 싶은 사업에 대한 차이, 일을 진행하는 체계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초반에 너무 벌어지지 않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하는 눈높이를 조정해갈 필요가 있다. 지역문화 거버넌스는 친목 모임이 아닌 지역의 문제를 발견하고, 지역의 자원과 욕구를 연결하면서,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다. 정부행정이 기업경영에 비해 취약한 것이 고객의 욕구와 필요를 읽어내는 역량이다. 거버넌스 체계가 운영될 때, 시민들이 풀고 싶은 문제해결의 욕구, 함께 연결되고 싶은 갈증을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단, 재단이 가진 역량을 시민들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세계평화의 문제는 평택시문화재단에서 해결할 수 없다. 참여하는 시민들이 가진 욕구와 역량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행정은 판을 깔아주고, 거버넌스가 공회전할 때, 다음 단계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전략적으로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거버넌스 업무 최상위 책임자는 시민들이 ‘거버넌스 체계 구축과 운영’을 위해 성장할 수 있는 자원을 제공해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연결될 수 있는 계기, 일을 모색할 수 있는 장을 열어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거버넌스 체계가 축적될 수 있는 기다려주는 태도와 성장을 위한 교육자적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3) 민·관이 만났을 때, 서로를 존중하는 것만큼, 상호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재단 행정인의 경우 말 돌리기, 책임회피 등의 태도를 조심해야 한다. 이런 행동의 이면에는 조직의 대표를 비롯한 책임자급에서 ‘뭘 하는지 잘 모르겠다.’ 언급하며 거버넌스 사업에 힘을 실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책임자급에서 뭘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는 해당 사업을 자세히 살피지 않았거나, 시민을 집합명사로 인식하고 개별에 대한 존중감이 약할 때 주로 발생한다. 거버넌스 구축사업 담당자가 조율된 기준에 따라 재량권을 가지고, 참여하는 시민들과 티키타카를 할 수 있어야 신뢰가 생길 수 있다. 담당자가 계속해서 위에 물어봐야 한다는 태도와 함께 말을 뒤집는 사례가 많아지면 상호신뢰를 쌓기 힘들다. 시민분들의 경우 재단 담당자에게 지나친 비난과 감정적 대응 등 관계의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해당 담당자는 평택 시민문화위원회를 가장 위하는 사람이지만 조직의 위계에서 가장 약한 사람일 수 있다. 참여하는 분들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 수준의 갈등 상황을 자체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거버넌스 조직문화’가 쌓여야 한다.
4) 끝으로 평택 시민문화위원회와 평택시문화재단 연합 거버넌스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해봐야 한다. 문화도시 정책 기반 위에 전국에 좋은 거버넌스 형 사업들이 많다. ‘어떤 재밌는 일을 도모해볼까?’, 그리고 ‘그 일을 어떤 체계를 가지고 즐겁게 해볼까?’ 두 가지 질문이 핵심이다. 그 일의 중심은 시민문화위원회가 되어야 하고, 그 일이 앞으로 갈 수 있게 길을 내주고, 패스를 넣어주고, 좋은 흐름을 만들어 주는 역할은 평택시문화재단이 해야 한다. 고립의 시대에 서로가 연결되어, 상대를 존중하며, 내가 존중받는 경험을 하고, 서로의 삶에 기여하며, 내 삶이 풍요로워지는 공동의 경험 축적이 기초문화재단에서 필요한 거버넌스의 지향점이 아닐까 싶다. 모쪼록 평택시문화재단과 평택시민문화위원회가 함께 해보자는 이인삼각이 서로의 성장과 내 삶과 우리의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질 수 있는 협력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