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석류 Dec 29. 2022

개인의 시대, 나만의 ‘업(業)’의 모양을 찾아가는 길

[장석류의 예술로(路)] 2022.12.27

직(職)과 업(業)의 차이는 무엇일까?


한 해가 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직장인이었던 삶을 전반적으로 구조조정하는 시기를 지나 나만의 ‘업(業)’의 모양을 빚어갔던 시간이었다. 이전에는 하나의 직장을 가졌다면, 이제는 내 사회적 시간을 나눠 여러 직업을 가지면서 일을 하고 있다. 올해도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 기관, 기업들과 함께 일을 했는데, 꼭 물어보는 것이 있다. “소속이 어디세요?” 이때,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소속이 없다기보다 두 개 이상의 조직에 소속되어 있고, 복수의 직업 정체성을 갖고 있어 어디로 얘기해야 할지 상황에 맞게 고르는 시간이 필요했다. N잡이 가능해진 개인의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직(職)과 업(業)의 차이는 무엇일까?


직업에서의 ‘직(職)’은 보통 소속 조직과 조직에서의 위치를 의미한다. 직위, 직책, 직무 등의 단어와 연결된다. 보통 ‘직’을 맡게 되면, 해당 ‘직’이 해야 하는 직무가 따라온다. 그 직무가 나와 맞을 수도 있고, 잘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직위가 높던, 낮던 내가 맡은 직에 어느 정도 맞출 수 있어야 한다. ‘업(業)’은 구체적으로 내가 수행하는 일의 속성이나 과업에 가깝다. “무슨 일을 하세요?”라고 물었을 때, ‘직’을 중심으로 얘기하는 사람이 있고, ‘업’을 중심으로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 ‘직’은 ‘업’을 담는 그릇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직’과 ‘업’에 균형이 잘 맞는 사람도 있고, 안정되어 보이는 ‘직’에 비해 담겨야 하는 ‘업’에 대한 인식이 모호한 사람도 있다. 또한, 내가 추구하고 싶은 ‘업’은 있지만, 이에 맞는 ‘직’을 잘 찾지 못한 사람도 있다. 직을 바꿔야 할까, 업을 바꿔야 할까, 개인의 시대에 디지털 노마드가 가능한 직업환경은 복수의 직과 업을 추구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예술인에게 필요한 ‘업(業)’의 모양 빚어가기


예술인은 자신의 직업(職業)을 설명할 때, 직장인처럼 명함을 통해 소속, 직책 등 ‘직’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서 예술인들은 ‘자신의 업’을 중심으로 직업 설명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굳이 ‘직’이 없어도 내가 추구하고 있는 ‘업(業)의 모양’을 단단하게 잡아볼 수 있다면, 나의 직업적 퍼스널 브랜드를 쌓아갈 수 있다.


올해 참여했던 사업 중에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주관하는 예술인을 대상으로 하는 <포트폴리오 작성을 위한 역량 강화> 사업이 있었다. 여기서 멘토로 해볼 수 있었던 역할은 예술가들의 생각과 마음속에 엉켜있는 본인의 ‘과거-현재-가까운 미래’를 잇는 본인의 커다란 서사를 발견하게 조력하는 것이었다. 그 서사는 하나의 ‘모양(figure)’이 되어 예술가의 퍼스널 브랜딩을 만드는 일. 바로 내가 추구하는 고유한 ‘업의 개념’을 정리해보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12개의 질문을 준비했고, 그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게 하고, 그 이야기의 구슬을 이어보는 과정이었다. 페루에 가면 ‘나스카 지상화(Nasca lines)’가 있다. 지상에서는 그냥 큰 돌덩이들이 어지럽게 놓여있어 보이지만, 경비행기를 타고 상공에 오르면 거대한 하나의 그림으로 보인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술가로서 각자의 나스카 지상화를 찾아 언어로 포착해보는 것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업의 모양’이 잘 잡혀 있는 사람은 ‘직’이라는 외피를 두껍게 두르지 않아도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보인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직’에 집착했던 사람보다, ‘업’을 쌓아갔던 사람들이 오래 기억에 남을 수 있다.


‘직’을 놓았을 때, 내가 추구하는 ‘업의 모양’을 보여줄 수 있을까?


올해 대학원에서 진행했던 지역문화 마케팅 수업 중에 ‘자신의 업의 모양’을 잡아보면서, 퍼스널 브랜딩을 시도해보는 과정을 설계했었다, 이 대학원은 특성상 공무원이나 문화재단 등 공공기관에 종사하는 학생이 많다. 이들의 경우 본인의 명함이 없다고 가정한 상태에서 ‘자신의 직업정체성’을 설명하기 어려워했다. “하고 계신 일의 업의 개념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 업에서 자신의 직업 전문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라고 질문하면, 대체로 처음에는 당황하는 경우가 많았다. 보통 부서에 따라 달라졌거나 직급에 따라 달라졌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러다 좀 더 사유가 쌓이면, 자신이 추구하고 싶었던 ‘업의 본질’을 찾거나 특히 좋아하고 잘하는 업에서의 역할을 재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업’을 놓치면, ‘직’이 부유하는 경우가 많다. ‘직’이 부유하면, 최소한의 일만 한다는 ‘조용한 사직’으로 갈 수 있다. 자신이 추구하는 업이라는 몸에 잘 맞는 직을 입은 사람을 보면, 자신과 주변을 성장시키며 높은 수준의 성취를 보이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남의 옷을 얻어 입은 것 같은 직의 옷을 입은 사람도 종종 만날 수 있었는데, 보는 사람이 오히려 부끄럽기도 하다. ‘직’을 놓았을 때도 흔들리지 않고, 내가 추구하는 ‘업의 모양’을 빚어내는 사람이 있고, ‘직’이 사라지면 사회적 자존감이 위축되면서 ‘업’도 함께 사라지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직’의 옷을 입었을 때, 내가 추구하는 업의 근육을 잘 키워 두어야 한다. 그러면 직을 벗어도, 나의 업에 맞는 다양한 직을 입어볼 수 있다. 끝으로 올해 각자의 직과 업에서 애쓰신 분들에게 수고하셨다는 말을 전하며, 내년에는 자신이 추구하는 업과 직이 잘 맞을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장석류의 예술로(路)] 개인의 시대, 나만의 ‘업(業)’의 모양을 찾아가는 길 - 서울문화투데이 (sctoday.co.k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