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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석류 Jan 30. 2023

제작극장은 예술가들의 창조성을  태어나게 하는 모태

[경기아트센터 예술과만남 매거진 Vol.160_장석류]

국내 제작극장의 현주소와 주요 과제     

경기아트센터 예술과만남 매거진 Vol.160, 장석류

‘제작’을 한다는 것의 요체는 새로운 작품을 출산한다는 것이다. 제작극장은 작품의 출산이 이루어지는 극장이라고 볼 수 있다. 보통은 프로듀싱 시어터(producing theatre)라고 한다. 좋은 프로듀싱 시어터는 공연을 제작하는 역량, 다시 말해 작품을 낳고, 그 작품을 기르면서 성장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연간 시즌을 극장이 낳고, 기른 작품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해당 작품과 관객이 깊게 관계를 맺으며 성장하는 극장의 역사를 써간다.


한국의 공공극장이 제작극장의 면모를 가지고 새로운 작품을 태어나게 하는 출산율은 매우 낮은 편이다. 대체로 전국의 문예회관들은 스스로 작품을 출산할 힘이 약하다. 그렇다면 관객들이 공공극장에는 만나는 작품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해당 작품들은 흔히 말하는 대관을 통해 다른 곳에서 태어난 작품들이 이곳에 와서 잠깐 관객을 만나고 가는 것이다. 흔히 프리젠팅 시어터(presenting theatre)는 공연을 출산하는 역량은 없고, 기획과 운영 인력을 중심으로 유통과 향유에 집중한다.      


제작극장은 왜 필요할까?   

출처 : 경기아트센터 홈페이지

 프리젠팅 시어터도 장점이 많다. 이미 잘 성장하여 관객의 사랑을 받는 작품을 우리 극장에 초청, 혹은 공동기획을 통해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극장의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프리젠팅 시어터가 되기도 쉽지 않다. 공연은 영상과 달리 복제가 되지 않아, 같은 공연을 동시에 두 개 이상 장소에서 상연할 수 없다. 좋은 작품은 같은 날짜에 하나의 극장만 선택할 수 있고, 그래서 좋은 극장에 좋은 작품이 몰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극장 입장에서 ‘내가 낳은 좋은 작품’을 가지고 있다면, 가장 필요한 시즌에 해당 작품을 배치할 수 있다. 또한, 좋은 작품을 다른 지역과 해외에 투어를 보낼 수도 있다. 자녀를 낳고 기르는 과정이 힘들 수 있지만, 자녀들의 성장과 함께 부모도 성장하며 남다른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자녀가 장성하였을 때 효도를 하기도 한다. 좋은 작품을 낳고 길렀을 때, 그 작품은 극장의 고유한 브랜딩과 지속 가능함을 위한 보물이 되기도 한다.     


개별 극장의 입장이 아닌, 국가 차원에서 제작극장은 왜 필요할까? 2023년 문화부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보면, 비전으로 <국민이 함께하는 문화매력국가>를 내세우고 있다. 핵심추진과제 중 하나로 <한국문화의 차세대 주자, 예술>로 설정하고 기초예술 지원의 창의적 성과를 한국예술(K-Arts)로 육성한다고 하였다. 극장은 기초예술 분야에서 ‘창작의 집’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 모든 극장이 100% 제작극장이 될 필요는 없다. 프리젠팅 시어터를 유지하면서, 지역과 극장의 특성에 맞게 작품의 출산과 성장을 경험해갈 수 있다. 창작의 경험이 쌓일수록 지역과 개인의 창의력도 함께 올라가면서,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올 수 있다. 좋은 작품이 쌓여갈수록 문화매력국가의 다양성과 깊이도 커질 수 있을 것이다.


(바로가기) 2023 문화부 주요업무 추진계획


좋은 제작극장이 되기 위한 요건은 무엇일까   

 작품을 출산하는 극장을 제작극장이라고 했을 때,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극장에 극단, 무용단, 오케스트라 등 전속단체를 두는 경우와 전속단체 없이 제작 프로덕션을 건건이 꾸려서 운영하는 방법이다. 전자의 경우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을 보유한 국립극장이 대표적이다. 후자의 경우 국립극단과 국립정동극장이 있다. 이 두 조직은 시즌 단원제와 정동예술단을 보유하고 있지만, 전속단체 비중을 작게 가져가는 대표적인 제작극장이다. 광역단위 세종문화회관, 경기아트센터 등은 경우 전속단체를 통한 일부 제작극장 모델과 프리젠팅 시어터를 혼합한 유형으로 운영하고 있다. 민간의 경우 두산아트센터와 우란문화재단 등이 전속단체 없이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제작극장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대구시립무용단 정기공연 <I-Tube>, 출처 : 대구시립무용단 페이스북  

 여기서 몇 가지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전속단체가 있다고, 제작극장이 되는 것일까? 다시 말해 전속단체가 있다고, 작품의 출산을 제대로 하는 극장일까? 지난해 말 대구광역시의 경우 대구시립예술단이 방만하게 운영된다고 하면서, 대구시의회 시정 질의에서 총사업비의 90%가 인건비이며, 높은 인건비에도 불구하고 예술단 활동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질타가 있었다. 예술단의 단원 인건비 비중이 높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제작비 비중이 작다는 의미다. 해군이나 공군을 뽑아놓고, 군함이나 전투기에 투자가 없다면 강한 국방력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작품을 출산하려면 전속단체가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제반 환경과 예산을 균형 있게 갖출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공극장과 함께 전속단체를 뽑아놓고, 예술단이 좋은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투자는 상대적으로 약한 경우가 많다. 총사업비에서 90%가 단원 인건비라면, 제작에 참여하는 스태프의 인건비와 무대, 음악, 의상, 홍보마케팅 등에 쏟을 수 있는 예산은 턱없이 낮은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1년에 몇 작품 하지 않으면서, 예술단이 놀고 있다는 비난이 악순환된다. 일반적인 공연제작 예산 비율을 보았을 때, 전속단원 인건비와 작품제작비의 비중이 5:5에서 최소 7:3까지는 맞출 필요가 있다. 그래야 연간 전속단체가 왕성하게 새로운 작품을 출산하고, 좋은 레퍼토리를 성장시키고, 관객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마케팅이 병행될 수 있다.      


좋은 제작극장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사람

출처 : 경기아트센터 홈페이지

전속단체가 있든 없든, 제작극장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있다. 아이를 출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산부인과 의사의 도움을 받는다. 작품을 잘 낳기 위해서는 산파의 역할을 하는 좋은 프로듀서 혹은 기획자가 제작극장에는 필요하다. 해당 극장에 있는 프로듀서 혹은 기획자의 역량은 제작극장의 수준을 판단할 수 있는 가늠자가 되기도 한다. 개별 예술인들은 자신이 맡은 예술적 역할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관객을 기반으로 시장을 읽고, 우리 극장과 함께하면 좋을 다양한 예술가를 찾아 협업을 끌어내는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공공극장의 경우 극장을 시설관리로 인식하는 제너럴리스트 성향이 강한 행정인의 힘이 상대적으로 강하고, 좋은 기획자의 중요성을 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예술가는 좋은 제작극장으로 가는 시작과 끝이지만, 그 과정을 풀어내는 산파의 역할은 예술가를 깊게 이해하는 기획자의 몫이다. 행정은 좋은 예술가와 기획자가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력할 수 있으면 된다.     


국립정동극장에서 제법 긴 시간을 보냈다. 오랜 시간 연습실이라는 자궁에서 예술가들과 함께 작품을 품었다가 관객들을 모셔놓고, 첫 공연이라는 출산의 현장에서 가슴 조마조마하며 지켜봤던 기억들이 난다. 작품이 관객과 만나 살아 숨 쉴 때, 창조된 하나의 생명이 주는 힘을 느낄 수 있다. 제작극장은 예술가들의 창조성을 태어나게 하는 자궁이다. 우리나라에서 좋은 작품이 더 많이 태어날 수 있도록 제작극장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해 보인다.   


경기아트센터 매거진 사람과만남 2023년 2+3월호

바로가기 art160.pdf (gga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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