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2022) 성북구 한 책과 함께한 4000일 기고 글. 장석류
제가 하는 일은 ‘예술경영’과 ‘문화정책’ 분야에서 사람, 조직, 사업, 제도를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좋은 사례 혹은 좋지 않은 사례를 깊게 연구해보고, 이를 통해 관련 분야에 있는 사람과 조직의 성장에 기여해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성북구 <한 책 사업>은 이 사업에 참여하고 계신 분들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지만, 이 사업의 사례를 정리된 지식으로 만나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다른 주제 연구 과정에서 성북문화재단 김주영 도서관팀장님을 인터뷰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때, 성북구 <한 책 사업>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 이런 사례도 있구나’ 하면서 그 흥미로움으로 더 알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습니다. 덕분에 도서관 정책 분야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고, 한 책 사업의 역사, 사서 직군의 직업 정체성 등도 살펴보면서 저의 성장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https://www.sbculture.or.kr/culture/main/contents.do?menuNo=500029 : 사업요약
참조: 성북구 한 책 후보도서 작가와의 만남 - 밝은..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좋은 사업의 이면에는 좋은 조직문화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흥미를 느끼는 부분은 성북구 <한 책 사업>의 성과보다는 이러한 결과가 나온 이면에 어떤 욕구가 있었는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그 변화가 생긴 원인이나 이유 등이 궁금했습니다. 또한, 이런 결과를 축적할 수 있었던 우연한 계기, 성북구 도서관팀의 조직문화, 혹은 사서직에 계신 분들이 어떤 역할을 하셨는지, 그 역할을 하기 위해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글의 재료를 구하기 위한 장보기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한책추진단 운영위원회>에 참여하고 계신 분 중, 총 41명을 대상으로 객관식과 주관식이 섞인 15개 문항의 설문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이와 함께 한책추진단 운영위원회에 참여하고 계신, 김현경님, 이정화님, 이지윤님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음을 밝혀둡니다.
1. 지역주민분들은 ‘왜’ <한 책 추진단 운영위원회>에 참여했을까?
정부 행정이 기업경영보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부분이 ‘고객의 필요와 욕구’를 파악하는 역량이라 생각합니다. 행정인에게 ‘당신의 고객은 누구냐?’라고, 질문하면 대체로 ‘국민이요, 시민이요’라고 대답합니다. 성북의 행정인에게 ‘당신의 고객은 누구냐?’라고 물으면 주로 성북구민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구민이냐고 물으면 대답을 머뭇거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욕구가 있는 구민이냐?’라는 질문을 치열하게 해보아야, 행정이 만나야 하는 구체적인 구민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북구 <한책추진단 운영위원회>에 참여하신 분들은 어떤 구민들일까요? 혹은, 어떤 필요와 욕구 때문에 본인의 귀한 시간을 들여서, 이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사업에 참여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일까요?
설문결과 그 욕구의 이면에는 ‘지역주민들과 교류’와 ‘도서관에서 활동해보고 싶어’가 가장 크게 나왔습니다. 고립의 시대를 사는 요즘에는 같은 아파트에 거주해도 이웃에 누가 있는지, 어떤 분이 계신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먼저 옆집에 노크하기도 불편하고, 누가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는 것은 더 불편합니다. 하지만 좋은 이웃은 내 삶의 질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이웃은 시장에 가서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공공도서관에서 지역주민들과 교류하면서 활동해보고 싶은 이면에는 ‘안전하면서도 연결되고 싶은 인간의 욕구’가 있었습니다. 그 다음의 욕구는 ‘깊이 있는 책 읽기’와 ‘깊이 있는 토론’에 대한 욕구가 있었습니다. 중독적이기도 한 SNS를 통한 연결은 ‘관계의 풍요 속’에서 고독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동시대에 도서관에 가는 이유는 책을 빌리고자 하는 필요를 넘어, 이곳에서 ‘안전하게 지역주민들과 깊이 있는 토론과 책 읽기를 함께 하며 교류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안전하면서도 깊고 다정한 연결’에 대한 나의 갈증을 이곳에서 찾아보고 싶은 우리의 욕구였습니다.
“연결에 대한 욕구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 인터뷰이 김현경님
한 책 추진위원회에서 오랫동안 허브(hub)와 매개 역할을 해오신 김현경 님을 인터뷰했다. 김현경 님은 한 책 사업 초창기부터 주민분과, 청소년 분과, 아동 분과 등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주요한 역할을 했었다. “사람들은 재미나 감동, 즐거움이 없으면 안 와요. 3F를 만족시켜주는 것이 필요해요. 우선 재미(Fun)가 있어야 해요. 그다음에 음식(Food), 먹을거리가 좀 있어야 해요. 뭐 안주면서 오라는 거 되게 싫어해요. 그리고 세 번째는 믿음(faith)이 있어야 해요. 한 책 사업은 이 세 개가 된 거죠”
여기서 재미(Fun)의 핵심은 무엇일까? “의외로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느꼈어요. 왜냐면 외로워서 그래요. 남편도 아이들도 주변의 친구들도 내 얘기만 하면 잘 안 들어줘.” 누군가의 엄마로, 아내로만 살다 보면 내 이름 ‘이숙자’, ‘박현주’, ‘김지영’의 이야기는 흐려진다. 경력 단절까지 하면서 아기랑 우쭈쭈 얘기하고, 다른 엄마들과 육아용품부터 시작해 학원 얘기만 하다 보면 뭔가 도태되는 것 같은 현실을 자각하는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을 것이다. 내 이름 이숙자, 박현주, 김지영으로 얘기하고 싶은 ‘말 고픔’을 느끼게 된다. 이 말 고픔의 허기로 이곳에 오면, 새로운 세상도 알게 해주는 정보도 얻고, 무엇보다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만난다. 아이들 사진만 찍어주는 것이 아닌, 나의 사진을 예쁘게 찍어주는 사람도 만난다. 그런 과정에서 “사람에 대한 믿음, 신뢰가 생기죠. 그리고 믿음이 생기면서 정말 사랑하는 마음도 생기더라고요.” 김현경님과 인터뷰를 하면서, 한책 사업의 슈퍼커넥터(Super Connector)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분께서 서로를 연결하는 매개자 역할을 해주지 않았으면, 지금이 있기 어려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 <함께, 한 책> 독서 토론회 참여로 어떤 변화를 경험했을까?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 가면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보고 싶었던 것은 ‘책은 사람을 만든다.’였습니다. 그렇다면, 혼자 읽은 책이 아닌 <함께, 한 책>은 사람들에게 어떤 변화를 경험하게 했을까요? 먼저 독서습관의 변화가 궁금했습니다. 사람마다 식습관이 있습니다. 어떤 음식을 먹는지가 건강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혼자 먹는 음식과 여럿이 먹는 음식은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도서관이라는 식탁에서 <함께, 한 책>을 먹으면서 다양한 세상이 내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다양해졌다는 의미는 이전에는 잘 접하지 않았던 분야나 장르의 책을 만났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해외여행을 가면, 다른 문화를 접하게 됩니다. 여행이라는 시간이 주는 새로운 문화의 바람을 맞으며, 사람들은 성장합니다. 비슷하게 새로운 책을 접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함께, 한 책>에서 다양성을 접할 수 있었던 주요한 맥락은 이웃들과 사서분들이 추천하는 책을 읽어보는 것입니다. 다양한 와인에 대한 경험이 약할 때, 소믈리에의 추천을 받는 것처럼, 성북도서관에서 추천해주는 책을 함께 먹어봤다는 답변이 많았습니다. ‘혼자 읽기에서 같이 읽기로 변화’했다는 답변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책을 치우치지 않게 편독(偏讀)하지 않고, 마치 하나의 식탁에서 이웃들과 모여 앉아 <함께, 한 책>을 먹으면서 대화했던 시간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건강한 식습관이 건강한 몸에 영향을 주는 것처럼, 다양한 책 읽기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이 건강한 정신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가정해볼 수 있습니다. 참여해주신 분들은 이렇게 답변하였습니다. “같은 책을 읽고 다름을 알게 되었으며, 세대 간의 자아가 어떤지도 보게 되었습니다.”, “깊이 있는 책 읽기와 다양한 의견 청취를 통해 나와 가족, 이웃과 사회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마음에 여유도 생겨 느긋해진 면이 있어요.”, “토론회 참여가 소심한 저에게는 참 어려운 시작이었습니다. 막상 참여해보니 나누는 즐거움, 나누면서 얻는 생각의 다양성, 상대를 더욱 배려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다양한 생각들을 읽고, 들으며 꼭꼭 씹어먹으니 내 생각과 마음이 더 커지고 건강해졌다는 것입니다. <함께, 한 책>은 ‘공동의 식탁’에서 ‘마음의 양식을 함께 먹고 나누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뉴스를 통해 접하는 정치면을 보면 같은 하늘 아래 도저히 함께 살 수 없는 두 개의 종족을 보는 것 같습니다. 물고 뜯고 싸우는 모습을 보면, 한쪽으로 지나치게 편향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또한, 정신이 건강해 보이지도 않습니다. <함께, 한 책>의 시간 동안 ‘나와 타인에 대한 수용과 인정’의 마음이 커지는 것을 설문 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은 나의 모서리를 다듬어 갈 수 있는 시간이었고, 한 가지 문제에 대해 다양한 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한 책>의 다양성은 어떻게 구현되고 있을까? - 인터뷰이 이정화님
현재 한 책 추진위원회에서 위원장으로 계신 이정화님을 인터뷰했다. 정화님에게 <함께, 한 책>이 진행되는 연간의 과정을 상세하게 물었다. “한 책을 뽑아가는 과정이 너무 매력있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의 의견 하나하나를 다 채집하듯이 모아 가거든요. 처음에는 사람들이 왜 이런 책에 관심을 두고, 왜 이 책을 뽑았을까 의구심이 있던 적도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사람들의 생각과 내가 차이가 있구나 하면서 제가 사람들의 그 다양성에 대해 받아들이게 되더라구요.” 어떤 도시를 방문하면 타인에게 개방적이고 친절하지만, 어떤 지역은 배타적인 태도와 이기심을 보이는 곳도 있다. 사람들이 어떤 곳에 살 것인가를 결정할 때, 그 지역이 가진 다양성에 대한 포용력은 지역의 경쟁력과 행복한 삶에 주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특히 10대부터 80대까지 이 다양한 연령대가 주는 매력이 저는 굉장히 컸어요. 젊은 사람들에 대한 이해, 혹은 젊은 사람들이 우리를 받아들여주고 있구나라는 부분도 너무 감사하기도 했고, 좋았어요. 그래서 주변에 연세 드신 분들한테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죠. 80대도 책을 읽고 토론을 함께 하고 있다고 하면, 받아들이지 않는 주변인이 많았어요. 제 주변에 친구들에게 너희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직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실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반복적으로 얘기하니, 그분들도 이제 도서관을 이용하시게 되더라고요.” 노인의 외로움 문제는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의 세대갈등 문제는 지역 갈등보다 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함께, 한 책> 사업은 노인의 외로움 문제와 세대갈등 해소에 좋은 시사점이 되고 있다. 이정화님과 인터뷰를 하면서, <함께, 한 책>에 대해 느끼는 자부심과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다양성과 개방성을 가지고 있는 커뮤니티는 도시의 주요한 경쟁력입니다. 인구가 감소하는 지역의 경우 개방성이 약하고, 배타성을 가진 지역문화를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다양한 창업 기업이 가능했던 이유 중에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문화를 꼽는 경우가 많습니다. 창업을 통한 혁신 기업이 많아서, 도시의 다양성이 커진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도시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혁신 기업이 많아질 수 있었습니다. <함께, 한 책>은 지역의 다양성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문화는 성북을 찾고 싶게 하는 관계 인구를 늘리고, 성북에서 살고 싶은 정주 인구를 늘리는 주요한 토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 고립의 시대 <함께, 한 책>을 통해 어떻게 나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었을까요?
이번 조사를 통해 제가 궁금했던 주요 질문 중 하나는 <함께, 한 책>을 통한 참여자들의 ‘자아존중감’ 변화였습니다. 자존감(self-esteem)은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자존감은 삶이 힘들 때, 회복하는 힘에도 영향을 미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건강하게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부분에서도 영향을 줍니다. 사회학 분야에서 널리 사용하는 로젠버그라는 학자가 만든 ‘로젠버그 자존감 척도’를 설문에 적용해보았습니다. <함께, 한 책>에 참여하여,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낀 마음이 증가했다. 나 자신을 좀 더 존중할 수 있는 마음이 증가했다.” 혹은, “내가 실패자 같다고 느끼는 감정이 감소했다.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감소했다.” 등 <함께, 한 책>에 참여하신 분들의 자아존중감에 긍정적 변화를 경험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참여자들의 자아존중감에 변화를 만들 수 있었을까요?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함께, 한 책>의 과정에서 참여자들의 자아존중감이 커진 원리는 ‘나의 존재를 타인에게 존중받고, 이해받았기’ 때문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가지고 있는 힘의 크기에 따라 존중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서로가 가진 직책에 가려져서 그 사람 자체가 잘 안 보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정에서는 서로가 너무 익숙한 관계이고, 서로의 역할 때문에 내 이름으로, 내 존재 자체로 존중받고, 이해받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책을 읽고 느낀 점을 표현할 때, 공감해주고 경청해 주니 자신감과 자존감이 많이 상승했습니다.”, “함께하는 이들이 어디에 살며, 무슨 일을 하는지 상관없이 한 사람을 존중해주는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도서관기획팀에서 보내주시는 환대와 정성에 많은 고마움을 느끼고, 세심하게 준비해주시는 토론회와 행사를 통해 개개인이 존중받는 느낌입니다.” <함께, 한 책>의 환대문화 속에서 자아존중감이 커진 나는 또 다른 존중을 받게 됩니다.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들로 인해 가족과 지인들의 인정도 더 커진 것 같아요. 이곳에서의 소식을 유튜브, 네이버 밴드, 지역신문 등에 다양한 방법으로 안내하고 있는데, 이런 소식을 통해 가족들이 저의 활동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면서 지지하는 마음이 더 커졌거든요.” 자존감 상승이 연쇄적으로 승수효과를 발휘합니다. 물이 고이면 썩는 것처럼, 내 생각도 고이면 썩을 수 있습니다. 내 생각이 다른 이들에게 흐르면서, 이해받고 존중받는 과정에서 나의 자존감이 맑아지고 깊어지는 순환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청소년은 다양한 어른들을 만나고, 어른들은 우리의 미래 세대를 만나는 경험- 인터뷰이 이지윤님
한 책 추진위원회에 계신 이지윤님을 인터뷰했다. 이지윤님은 중3 때부터 고3 때까지 <함께, 한 책>을 경험했고, 지금은 문헌정보를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었다. 지윤님에게 앞으로 하고 싶은 꿈을 물었다. “학생부종합전형을 준비할 때부터 사람과 사람, 그리고 책과 사람을 이어주는 정보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어요.” 대답을 듣자마자,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동시대 ‘사서’에게 필요한 직업정체성의 지향이 녹여져 있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윤님이라는 존재가 <함께, 한 책>이 만들어낸 최고의 유산이 아닐까 싶었다.
요즘 시대는 대가족이 모여, 얘기를 나눌 기회가 별로 없다. 청소년 시기에 부모와 학교 선생님을 제외하고 다양한 어른들을 만날 기회가 없다. 친척들을 만나더라도 “잘 지내니, 공부는 잘하고 있니.” 정도에서 머문다. 이곳에서 어른들과 토론했던 시간에 관해 물었다. “뭔가 어른들하고 얘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잘 없잖아요. 보통은 피상적인 얘기밖에 안 하게 되요. 그런데 여기 오면 주제가 책이고, 책을 읽으라는 잔소리가 아닌, 책 안에 있는 이야기 속에서 서로 몰입하니까 소통이 원활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우리 시대의 큰 문제 중의 하나인 ‘세대 간의 갈등’도 서로를 피상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어른들이 하는 말들이 뭔가 충고, 뭔가 잔소리, 이런 것보다 그냥 따뜻한 말 한마디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뭔가 거부감보다는 들으면서 되게 좋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있어요.” 잔소리는 청소년들을 걱정하고 위해서 한다고 하지만, 자존감을 키워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상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책을 매개로 이야기 하다보니, 그 안에서 성장 이야기가 많잖아요. 성장에 대해 서로 얘기할 때, 자기가 원하는 바에 대해 좀 더 명확하고 좀 뚜렷해지는 마음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나를 좀 더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 같고, 내가 수용할 수 있는 건 수용하고, 아닌 것은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하면서 좀 반박도 해보고, 그러면서 진짜 포용력이나 자아존중감에 좋은 영향을 끼쳤던 것 같아요.” <함께, 한 책>은 청소년 시기에 나를 탐험해볼 수 있는 기회와 응원을 받는 시간은 아닐까 싶었다. 청소년들과 토론을 통해 만났던 어른들의 인터뷰에서도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는 감사함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청소년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다른 세대의 마음을 알 수 있어서 좋았고, 우리의 미래가 밝은 것 같다는 언급이었다. <함께, 한 책>의 정신은 이지윤님과 같은 미래 세대에게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면, 그 사람이 나에게 꽃이 되어 다가옵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따뜻하게 불러주는 순간을 만나는 일이 점점 줄어드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책’은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징검다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책 속의 이야기’는 서로에게 건너 가보는 통로가 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경험’ 속에서 나와 달라서 새롭고, 나와 비슷해서 손을 잡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도서관은 ‘안전하면서도 다정한 연결’에 대한 갈증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지역의 광장이었고, 우리가 함께 살아있음을 느끼는 지역의 심장 같은 곳임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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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한 책> 사업에 참여했던, 사서님들과의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