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2022) 성북구 한 책과 함께한 4000일 기고 글. 장석류
인터뷰 참여자 : 조하은, 배민주, 육지혜 사서님
좋은 사업의 이면에는 해당 사업을 할 수 있었던, 좋은 조직문화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화정책 연구자의 시선에서 <함께, 한 책>은 눈에 띄게 좋은 사업이지만, 다른 공공도서관에서 잘 만나기 힘든 유형의 사업입니다. 대학 도서관이나 서울도서관 등에 계신 도서관 업계 사서직에 계신 분들도 성북의 <함께, 한 책>의 사례를 접했을 때, 온전히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왜, 성북구 공공도서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를 <함께, 한 책> 사업에 참여하신 성북의 주민들에게 찾아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 이면에 있는 이곳에 계신 사서분들에게 주목해보고 싶었습니다.
여기서 궁금한 게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사서직은 본인의 직업 정체(Occupational identity)을 무엇이라 생각할까요? 저는 ‘예술행정 부족 간 직업정체성 비교연구 : 행정인, 기획인, 예술인 집단을 중심으로, 예술경영연구(장석류, 2022)’라는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서직 부족의 직업 정체성에 대한 궁금함이 이어졌습니다. 성북의 사서분들은 다른 도서관에 계신 사서들과 차이가 있는 ‘직업 정체성’의 확장 혹은 변화를 경험하지 않았을까? 라는 가정을 해봤습니다.
참조 : 예술행정 부족 간 직업정체성 비교연구 - 행정인, 기획인, 예술인 집단을 중심으로 - (kci.go.kr)
직업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북구 공공도서관 사서직에 있는 분들이 스스로 전문직업인으로서 내리는 신념과 역할을 무엇으로 느끼는지 궁금했습니다. 이 질문이 의미가 있는 것은 다른 공공도서관에 계신 사서들은 성북에서 벌어지는 <함께, 한 책> 유형의 ‘강한 밀도와 확장성을 가진 지역 커뮤니티’ 사업은 사서가 해야 하는 일의 범주를 넘어서는 일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Q1) 사서님께는 지금 하시는 역할 속에서 직업 정체성을 어떻게 느끼고 계신가요?
“ 책을 좋아하고, 정보를 찾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냥 어디에 박혀서 조용히 사서로 일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전공을 하긴 했어요. 그런데, 한 책 사업을 하다보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 교류가 될 수 있는 교량 역할을 해야 하는 직업이었던 거예요. 이 직을 처음 선택했을 때의 이유와는 좀 달라졌어요.”
인터뷰에 참여했던 세 분의 사서께서는 공통으로 <함께, 한 책> 사업에서 하는 사서의 역할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서 역할과 조금은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고정마인드셋(Fixed mindset)을 가지고, 사서직의 역할을 고집했으면 퇴사를 했거나 혹은 한책 사업을 맡아 진행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을 가지고,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사서의 역할을 받아들였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사서라는 직업 정체성의 확장을 경험한 것으로 해석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성북구 공공도서관에서 사서직 직업 정체성의 확장 혹은 변화가 생길 수 있었던 토양이 되는 조직문화는 어떤 특징이 있었을까요? 궁금했습니다.
Q2) 성북구 도서관 조직의 문화는 어떤 분위기가 있나요?
“다른 도서관에 있을 때는 이걸 왜 해야 해?, 왜 안 하던 걸 만들어? 굳이 이걸 해서 우리가 얻는 게 있어? 이런 분위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성북에 왔더니 여기는 뭐든 게 다 열려 있는 거예요. 경계가 없고, 사업의 턱이 없어서 무한정 넓어지는 거예요. 사업의 지평이 넓어져도 그 중심에 책이 있고, 지역 주민들이 주는 교감이 있으면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조직문화가 가능하게 하려면, 도서관 운영의 리더십이 일관성이 있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꾸준히 될 수 있다는 ‘우리 조직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도서관 사업 리더 그룹에 있는 사람이 사서직 직업 정체성에 대한 고정 관념보다 시대의 변화와 주민들의 수요에 맞게 역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연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전에 성북구 도서관 사업 부분 리더분들과 인터뷰를 통해 만난 적이 있습니다. 오늘 실무 사서분들의 이야기와 당시 인터뷰 텍스트가 연결되면서 이곳의 팀워크가 가진 저력에 다시 한번 고개가 끄떡여졌습니다.
여기서 하나를 더 짚어보고 싶었습니다. <함께, 한 책> 사업은 상당히 좋은 결과를 만들고 있지만, 사서직 입장에서는 강도가 있는 감정노동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좋은 관계여도 항상 웃으면서 만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한 책 사업에 참여하는 주민분들 간의 관계는 사적인 관계로 볼 수도 있지만, 사서직에 있는 분들은 그것이 본인의 일이기도 합니다. 공적 관계와 사적 관계의 경계가 묘하게 섞여 있을 수도 있는데, 사업의 뒷면에서 힘든 부분이 있을 것이라 짐작해보았습니다.
Q3) 한 책 사업의 담당자는 어떤 태도가 필요한가요?
“어느 정도 제 곁을 내줄 수 있어야 해요.”
인터뷰 과정에서 이 대답을 만났을 때, 이 사업에 참여한 분들의 자아존중감이 긍정적으로 변화한 그 밑바탕에는 이 힘이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곁을 내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회에서 직업인으로 일을 할 때, 가까운 동료도 아닌 고객에게 나의 곁을 내주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를 어느 정도 내려놓고, 이 사업이 목표로 하는 가치를 더 위해 놓을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일이지만 너무 업무적으로 대하는 사람은 하지 못할 거예요.”
사서분들은 참여하시는 주민분들에게 곁을 내주면서도 달의 뒷면에서 달이 빛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움직이고, 치열하게 판을 깔았을 것입니다. 사업의 트랙도 깔고, 주민분들이 탈 수 있는 기차도 만들고, 연료를 넣고 시동을 걸어서, “함께 타 주세요”라고 소리쳤을 겁니다. 그리고, <함께, 한 책>에 탑승한 주민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Q4) 한 책 사업을 하면서 보람의 순간이 있었다면, 어떤 순간이 생각나시나요?
“제가 3년 정도 하면서 보람이라는 것을 거의 잊어버렸거든요. 그런데 최근 극장에 다 오셔서 한책 선포를 하는 날인데, 세대별로 주민들이 모여서 인사하고, 책을 낭독했었어요. 짧은 시간이지만 제가 리허설을 하고, 선생님 이렇게 하세요, 선생님 너무 훌륭해요. 이렇게 만들어 놓고, 막상 무대에 올라가서 우리 어린이들이 환영 인사하고, 어린 청소년부터 저희 어르신까지 책을 읽어내는 걸 보는데, 그때 완전 꽝 치고 가는 게 있었어요.”
사람은 누군가의 성장과 행복에 기여했을 때,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에 보람을 많이 느낍니다. 극장 무대 위에서 빛나던 우리 어린이들부터 우리 어르신들을 보면서, 사업의 뒷면에서 보냈던 시간이 가치가 있었던 일의 보람으로 돌아왔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 편지를 보면, 저를 너무 사랑해주시는 거예요. 이분은 진짜 나를 친구이자 동반자로 생각하시는구나. 일이 많고, 힘들 때가 있어도 선생님들이 좋아하시니까 됐네, 같은 기분이 자주 들어요. 뭔가 좋은 거, 뭐 먹을 게 있어도 들러서 굳이 주고 가시고, 다들 건강 챙기라고 하면서 그렇게 주고 가세요.”
어떤 공공기관에서 일해도, 고객을 이렇게 직접 느끼는 직업군이 많지 않습니다. 고단함 속에서도 이렇게 직접적인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직업도 많지 않습니다. 한 책 사업에 참여하고 계신 사서분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사서라는 직업의 정체성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업 정체성은 사서분들의 변화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도서관을 찾는 주민분들도 사서라는 직업을 바라보는 인식에 변화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사서 선생님을 만나면, ‘지역의 주민들과 나를 연결해 주는 사람이구나’, ‘내 삶의 변화를 만들어주는 사람이구나’라는 인식 말입니다. 사서라는 직업인을 바라보는 존중감과 감사한 마음을 보내면 사서분들도 더 힘을 내어 일하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 동네 공공도서관에서 내가 인사하며 지낼 수 있는 사서를 한 명만 알아도, 내 삶에 좋은 변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내 삶의 긍정적인 변화와 나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준 성북구 공공도서관 사서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해보세요. 그리고 이분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주민분들께서 함께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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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한 책> 사업에 참여하셨던 분들과의 연구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