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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석류 Jan 12. 2023

배움의 삶으로 귀로 볼 수 있게
만드는 성우 이명희

[문화다원 No35] 예술人기획人행정人 부족 간 인터뷰 프로젝트

서른다섯 번째 좌표는 성우 이명희를 만나보았습니다. 성우라는 직업은 예술적 역량이 필요하면서도 시장의 욕구에 기민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전에는 외국영화 더빙분야에서 성우라는 직업을 많이 떠올렸는데, 이제는 문화산업 분야인 게임, 애니메이션 영역에서 많이 활약하고 있습니다. 이명희 성우는 게임 <리그오브레전드>의 룰루,  <콜오브듀티>의 헬렌파크,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TV만화 <캐치티니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프로페셔널한 탑 성우 중에 한 명입니다. 가슴에 와닿는 답변이 많았는데,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예술경영 분야에 종사하시거나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면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배움의 삶으로 귀로 볼 수 있게 만드는 성우"


1. 이름은? 사회에서 연차는 어떻게 되시나요?

이명희 /프리랜서 16년     


2. 어떤 일을 해 오셨나요. 일터(작업의 공간)에서 당신의 역할을 소개해주세요 & 역할 속에서 자신의 직업정체성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성우협회소속 프리랜서 성우입니다.  얼마 전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님과 차를 마시며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교수님은 저에게 "직업을 동사로 표현해 보세요"라고 말씀하셨어요. 가까운 미래에 직업인으로 살아남으려면 나만의 특별함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이셨죠. 제 대답은 "귀로 볼 수 있게 만드는 성우"였습니다.      


3. 한번 떠올려 주시겠어요. 당신이 하는(해 왔던) 일을 선택했던 내적인 욕구, 초심, 계기, 우연 등은 무엇이었나요     

성우를 택했던 내적인 욕구는 연기자로 오랫동안 생존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려면 열정만큼 환경이 중요하더라고요. 돈이 없으면 연기연습 해야 할 시간 혹은 공연하고 자야 할 시간에 돈을 벌어야 하거든요. 성우를 택하게 된 계기는 “네가 하고 싶은 거 말고, 네가 잘하는 게 뭔지 생각해 봐”라는 교수님의 조언과 ‘내가 배우로서 잘하는 것, 나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내가 좋아하는 연기를 오랫동안 할 수 있을까?’ 하는 화두에 대한 숙고와 기도 그리고 춥고 배고픈 현실 때문이었습니다. (졸업 후 대학로 연극배우 생활은 참 배가 고팠어요. 최선을 다해도 페이를 지급받지 못하는 일들이 빈번해 큰 허탈감을 느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십여 년 전 새내기 배우인 제가 격은 대학로는 그랬습니다. 그래서 연기를 하면 그에 상응하는 페이를 지급하는 영화, 방송 쪽 문을 두드렸죠. 하지만 그 길 또한 녹록지 않았어요. 연기를 할 기회를 잡기가 어려웠죠. 그때 방송사 공채 성우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저의 목소리와 연기를 믿고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4. 당신이 하는 일에서, 당신이 생각하는 고객은 누구인가요

첫 번째 고객은 눈앞에 있는 클라이언트죠. 내 눈앞에 있는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두 번째 고객은 시청자 혹은 청자이고요. 그들이 어떤 매체를 통해 이 콘텐츠를 향유할지 상상하며 그것에 맞게 표현해야 하죠.     


4-1. 당신이 생각하시는 고객에게, 당신은 어떤 역할기대와 요구를 받는다고 생각하나요.

클라이언트의 만족. 만족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요. 일이 시간 내에 깔끔하게 잘 마무리될 때, 클라이언트의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올 때, 편하게 말하자면 그림에 연기가 쫙쫙 붙을 때 등 여러 상황이 만족에 속합니다. 어쩌면 고객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말 한마디 부드럽게 건네받을 수 있길 제가 저 자신에게 요구하는 지도 모르겠네요 :)     


5. 당신이 하는(해왔던) 일의 시퀀스( '기-승-전-결')는 보통 어떤 흐름으로 이루어지나요?   

캐릭터 리그오브레전드 룰루_이명희 성우

질문이 너무 고급스럽네요. ㅋ 게임녹음을 예로 들어볼게요. 보통은 녹음실에 가면 처음 보는 피디님 혹은 관계자 분을 만나게 돼요. 그럼 가벼운 인사와 안부를 건넵니다. 녹음할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듣고 대본을 받으며 일이 시작됩니다. 보통 페이는 1시간 단위로 금액이 책정되기 때문에 신속하고 간결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집니다. 성우가 캐릭터의 톤과 성격을 잡고 시연을 하면 피디의 피드백을 통해 캐릭터의 톤 앤드 매너를 조율하게 됩니다. 캐릭터의 톤 앤드 매너가 픽스되면 성우는 무당이 칼춤 추듯 빙의되어 연기합니다. 중간중간 피디의 의도와 어긋난 부분이 있다면 의도에 맞게 재녹음을 하고 클라이언트가 만족하면 녹음은 기분 좋게 마무리됩니다. 이건 흐름이 매끄러운 시퀀스를 설명드린 거고요. 껄끄러울 땐 어휴.... 여기까지입니다:)     


6. 일의 과정에서  '당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혹은 '요구받는 가치'는 무엇이 있나요?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하얀 도화지가 되어 보자'입니다. 풀이해 보면 이 순간 나를 비우고 고객님의 의도 맞게 표현해 보자로 풀이해 볼 수 있겠네요.     


7. (최근 3년 동안) 당신이 특히 해결해보고 싶었던 문제(과제)는 무엇이었나요,  (문제) 과제를 만났을 때, 진입장벽 혹은 페인포인트(그동안 해소하지 못한 불편함, 어려움 등)는 무엇이었고, 어떻게 풀어보려고 접근하셨나요     

어떤 상황에서 어떤 대본을 받아도 초독에 쭉 파악하고 읽어내는 독음, 독해력을 기르고 싶었어요. 성우라는 직업의 특성상 꼭 필요한 능력인데 부족했거든요. 문제를 만났을 때, 진입장벽 혹은 어려움은 무엇이었나요? 가장 큰 어려움은 두려움이었어요. 틀리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이요. 


7.1. 어떻게 풀어보려고 접근하셨나요? 

일단은 두려움과 친해지려 했어요. 애니메이션 인사이드아웃의 감정 캐릭터처럼 두려움을 캐릭터로 떠올려 봤죠. (캐릭터를 연기하는 성우의 장점이죠!) 친해지지 않으면 자꾸 그 감정을 회피하게 돼요. 두려움은 술래고 저는 계속 도망가는 거예요. 자 그럼 두려움과 어떻게 친해지죠?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 두려움이랑 일단 얘기를 해봐야죠. 사람끼리도 그렇잖아요. 얘길 해 봐야 친해지든 말든 하죠. "두려움 안녕, 나 자꾸 글자 읽다 틀릴까 봐, 끊어 읽기 잘못할까 봐 겁나. 이게 죽을 일도 아니고 틀리게 읽는다고 내 성우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이렇게 두려움과 저와의 인사이드아웃 한편이 만들어지면 두려움을 이해하게 되고 괜히 겁먹지 않게 돼요. 그런 다음 연습을 하는 거죠. 그냥 연습해야지~ 하면 잘 안 할걸 아니까 책 읽는 유튜브를 만들었어요. 나라는 인간은 환경을 설정하지 않으면 금세 의지가 꺾인다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해 배웠죠.    

  

8. (최근 3년 동안) 당신이 기억나는 '보람의 순간'이 있었다면?     

보람은 피드백에서 옵니다. 진정성 있는 노력이 시간을 통과해 상대에게 전해지면 상대는 언어나 몸짓으로 마음을 표현해요. 그 표현이 다시 나에게 돌아올 때, 제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가슴 언저리에 뿌듯함이 퍼지죠. 어려운 말 쉽게 하자면 “성우님! 연기로 찢었어요” 이 말 들었을 때 보람되었습니다. 하. 하. 하.


9. 당신이 가진 내적인 힘들 가운데, 어떤 힘이 강하신 것 같나요(장점, 나다운 것 등)?

가장 맘에 드는 저의 내적 자원은 '배움'으로 해석하는 거예요. 제 삶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 우여곡절을 통해 '이번에는 이걸 배웠구나' 하고 해석하는 것, 심리학에서는 리프레이밍(reframing)이라고 하더라고요. 배움이라는 렌즈로 보면 같은 상황도 다르게 보이죠.     


10. 당신의 생각과 행동에 영감/영향력을 주었던 책, 음악, 공연, 영화, 전시 혹은 저자, 작가 등을 소개해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너무 많아요. 그중 하나는 쏜톤 와일더(Thornton Wider)의 <우리 읍내>라는 희곡이에요. 인생 2회 차는 되어야 깨달을 수 있는 이야기라 제가 대학생 시절 에밀리를 연기할 때는 크게 와닿지 않았죠. (지금 떠올려 보면 그때 제 연기가 부끄럽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지는 죽을 때가 되거나 어쩌면 죽어봐야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다행히 저는 죽음에 대해 깊이 숙고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이 참 소중하지'라는 가치를 귀하게 여기게 되었어요. 


비슷한 맥락에서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의 <연금술사> 책의 한 문장도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 데 있다네” 저의 초라하고 아름다운 지난날을 떠올려 보는 와중에 진한 아인슈페너 한 모금을 음미하는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겠습니다. 저에게 멋진 순간을 선물해 주셔서 감사해요_()_    

 

11. 앞으로 어떤 일(작업, 역할)을 하고 싶나요? 그것을 위해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준비하고 있나요?  

25년간 연기를 하며 사람을 탐구했고, 16년 간 성우를 하며 화술과 스토리텔링을 연습했고, 5년 간 명상과 심리학을 공부하며 마음의 작동 원리를 배웠습니다. 이제 저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저도 궁금하네요.     


12. 당신을 좀 더 알 수 있는 소셜미디어/사이트/뉴스를 알려주세요.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leemyunghi 

유튜브 https://www.youtube.com/@voicelee     


장석류의 예술경영 인물열전,

"Fusion of horizon".


배움의 삶으로 귀로 볼 수 있게 만드는 성우 이명희 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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