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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석류 Feb 27. 2023

시대별 한국 문화정책의 역사(1)

[과거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_논어 위정편23]

예술경영 혹은 문화정책 공부를 기반으로 관련 '조직'에 입사를 해보고 싶다거나, 혹은 '업무'를 해보겠다는 생각을 하신다면, 면접시에 이런 질문을 받게 됩니다. "우리 조직에 왜 지원을 하셨나요?" 이 질문에서 "이 조직은 왜 생겼고, 어떤 역할을 하는 곳인지" 이해를 하는게 중요합니다. 


Q1) 일을 해보고 싶은 관심있는 조직이 있으신가요?

Q2) 해당 조직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어떤 이유로 설립되었을까요?

Q3) 해당 조직은 어떤 시대적 흐름을 타고 생겼을까요?


예술행정에서 진행되는 어떤 사업, 정책, 조직, 제도 등은 '시대의 요구와 국가의 역할' 사이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노력과 협력으로 태어납니다. 각각의 조직이 생기려면 해당 조직의 기반이 되는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 선행되고, 법적 토대위에 예산을 흐르게 하고, 조직이라는 집을 짓고, 사업이라는 나무를 심게 됩니다.  

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구 문화체육관광부

그래서 이 분야에 관심을 갖는다면, 우리나라 '문화정책 역사의 흐름'에서 내가 서 있거나 관심있는 좌표가 존재하는 맥락을 이해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에 

1) 현재 문화정책은 어떤 과정을 통해 발전해 왔을까? 

2) 공공 공연장, 도서관, 미술관.박물관 등은 언제부터 제도적 기반을 갖추게 되었을까? 

3) 문화예술진흥, 문화예술교육, 지역문화진흥, 예술인복지 등의 정책분야는 어떤 정부에서 어떤 이유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시작되었을까? 등 


내가 관심을 가진 영역의 '정책의 역사적 줄기'에 흥미를 가져보시길 권해봅니다. 그러면 현재 내가 서 있거나 가고 싶은 곳에 대한 좀더 깊은 이해를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S#1. 정부단위로 '문화부'는 언제 생겼을까?


Q1) 우리나라 정부에서 문화부는 언제 생겼을까요?

Q2) 초대 문화부 장관은 누구였을까요?


노태우정부의 문화정책은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를 연다'는 통치 철학에 따라 88서울올림픽의 성공을 바탕으로 문화공보부로부터 문화부를 분리 출범시킵니다(박광무, 2010). 당시 서울올림픽을 통해 세계 속에 한국의 문화와 역사, 전통을 보여주고 싶어했습니다. 서초동 예술의전당이 이 시기에 제2 국립극장 역할을 위해 건립되기도 합니다.


참조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J8N2whDWASg  : 노태우 대통령 취임식


참고문헌 링크)

(박광무, 2010) 한국문화정책론, 김영사. 

http://www.yes24.com/Product/Goods/4414588

https://www.pa.go.kr/research/contents/peoples/index0122.jsp#


노태우 정부시절 1990년 1월 문화공보부가 해체되고 공보처와 문화부가 분리되었습니다. 독립된 문화정책의 정부 주무부처인 문화부가 생긴해입니다. 첫 문화부장관은 이어령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당시 한 문화계 인사는 어떤 글에서 "문화부가 창설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첫 장관에 달리 오염되지 않은 문예계 인사가 임명되었다는 것은 90년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 문화예술계를 위해 그 상징으로서나 실제에 있어서나 매우 반가운 일이라"라고 환영의 뜻을 표했다(아래 첨부 파일 참조). 


참고문헌 링크) 노태우 정부 - 나무위키 (namu.wiki)

Q1) 1988년 2월25일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하였습니다. 제6공화국의 시작입니다. 왜 노태우 정부시절에 독립된 문화정책 정부 주무부처인 문화부가 생길 수 있었을까요?

Q2) 이 시기 (1990-1995) 우리나라 '대중문화예술'은 어떤 흐름이 있었나요? 당시의 분위기와 문화부 출범을 연결해서 얘기를 나눠볼까요?

     - 서태지와 아이들 출현, < 쥬라기 공원>이 촉발시킨 문화전쟁, SBS의 출범, MBC 주말연속극 <사랑이 뭐길래>, 트랜디 드라마 <질투>가 한류의 기원이다, 10대의 대중문화 장악과 오빠 신드롬, WTO 출범과 세계화 영어 열풍, 케이블 TV 시대의 개막 (한류의 역사, 강준만) 


참고문헌 링크) '문화의 세기' -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에게 듣는다. (취임 2개월 후) 

출판저널 = The Korean publishing journal no.56 = no.56, 1990년, pp.2 - 3  

강철주(대한출판문화협회)


1990년도 문화부 업무보고를 보면, 90년대는 '새로운 문화의 세기'로써 그동안 정치와 경제의 크고 급한 문제들에 밀려 뒷전에서 소외돼 왔던 문화의 복권을 통해 인간의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정신주의 풍토를 마련하겠다고 나와있습니다. 


이를 위한 정책으로 전통문화, 생활문화, 고급문화의 3대 영역에 걸쳐 

1) 한국인의 문화적 동질성 회복 

2) 국민의 문화향수권 및 문화참여권 신장 

3) 다양성과 자율성을 토대로 한 창작력 진흥 

4) 한국문화권의 확산을 통한 우리문화의 세계화 지향 

5) 미래 문화의 주역이 될 한국문화 창조 


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도 "관주도는 피하겠다는 이어령 장관의 입장이 있었고, 당연하지만 지켜지지 않았던,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하려고 하였습니다. 


(이어령 문화부장관, 1990) " 사실 제 개인이 유능하고 무능하고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만 행정적인 도움을 제공할 뿐입니다. 문화부와 국민들 상호간의 문턱을 없애고, 일할 수 있는 여건들을 조성하는 데 힘쓸 작정입니다. 제 입장에선 문화계로부터 여러 참신한 착상들을 얻어 일할 수 있느 마당을 제공받고 싶고, 또 역으로 문화인들에게는 마음껏 뜻을 펼 수 있는 멍석을 펴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문화부나 문화부장관이 앞서나갈 것이 아니라 문화가 앞서나가야 한다. 있는 듯 없는 듯 뒷전에 숨어서 일하고 싶은 게 제 바람입니다. 마치 공기처럼, 느끼지는 못하지만 꼭 필요한 일을 하는 게 문화부장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이야 제가 처음이라 매스컴을 타지만, 장차는 일반국민이 문화부장관 이름도 모르게 되는 것이 우리 문화를 위해 훨씬 더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꼭 맞을 경우 그 존재를 잊게 되는 허리띠 같은 것이 문화부장관이란 자기가 아닌가 합니다."


이어령 장관의 문화행정지표 

- 3불(不) : '문턱'없이 일하기, '생색' 내지 않고 일하기, '사심'없이 일하기 

- 3가(可) : 마른 바위에 생명의 '이끼' 입히기, 문화우물터에 하나의 '두레박' 놓기, 국민의 작은 심부름꾼 '부지깽이'되기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281


Q1) 얼마전 이어령 선생님 1주기였습니다. 위에 인터뷰를 읽고, 어떤 부분이 인상적이었나요?

Q2) 이어령 장관의 '문화행정지표' 3, 3를 문화기획자의 자세로 읽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3, 3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직, 간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해볼 수 있을까요?   

Q3)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겠다'는 어떤 의미일까요?

Q4) 우리는 '문화의 시대'를 살고 있나요? 앞으로 어떤 '문화의 시대'를 만들어보고 싶나요? 


https://vibe.naver.com/app/clipEnd?contentId=CH_10246


참고문헌 링크) 

https://eiec.kdi.re.kr/policy/materialView.do?num=212843

‘89.10.10 대통령은 그동안 온 국민이 함께 이룩한 국력신장과 생활수준의 향상에 힙입어 선진문화 복지국가를 이룩하기 위한 문화발전 10개년계획을 마련하고 본격적으로 재정지원을 확대해 나간다고 밝혔습니다.

- 계획 수립을 위하여 그동안 문화 예술계 전문인사를 직접 만나 자유토론 방식으로 광범위하게 의견을 수렴하고, 지역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각 시도의 지역별 문화발전 과제 모집을 추진하였습니다. 

- 계획은 단계별로 추진하였는데, 1단계(90~91년)에서는 제도.법령정비 및 재원 대책을 강구하고 사업의 기초조사 및 모형개발을 추진하고, 2단계(92~95년)에서는 시범사업전개 및 보완을 추진하며, 3단계(96~99년)에서는 중핵거점 및 전국적으로 확대 전개할 계획임.

<자료 출처: 국가기록원>


참고문헌 링크) 

https://www.arko.or.kr/zine/artspaper90_08/19900801.htm 

출처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노태우 정부 문화부에서 설립되었던 조직 

출처-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

상기 문화발전 10개년 계획 수립 후, 눈에 띄는 문화정책의 변동이 몇가지 있습니다. 

1) 첫째는 전문 예술인 양성을 위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 2) 도서관법 제정을 바탕으로 국립중앙도서관을 문교부로부터 문화부로 이관하여 도서관은 교육기관에서 문화기관으로 인식한 중요한 정책기조 변동, 3) 국립국어연구원 설립, 국어와 어문정책을 문교부로부터 문화부로 이관, 이를 바탕으로 한글의 세계화, 한국어 교육의 세계화 전략 기반 구축하였습니다. 


Q1)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설립한 것은 이후 어떤 결과를 가져왔나요?

Q2) 도서관은 교육기관일까요? 문화기관일까요? 이 차이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Q3) '한글의 세계화' 정책은 이후 어떤 결과를 가져왔나요? 우리나라에서 다른 나라 문화원을 가보신적이 있나요? 그 경험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참고문헌 링크6)

https://auditorium.kr/2022/12/%ED%95%9C%EA%B5%AD%EC%98%88%EC%88%A0%EC%A2%85%ED%95%A9%ED%95%99%EA%B5%90-%EA%B0%9C%EA%B5%90-30%EC%A3%BC%EB%85%84/

Part1) 학교의 역사와 자랑,  Part2) 총장 김대진, 

Part3) 6개원 원장을 만나다. Part4)  총동문회장 

(바로가기)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령, 국가법령정보센터 


S#2. 이승만 정부시절 어떤 문화정책이 시작되었을까?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경제적 빈곤으로 문화예술 정책에 대한 정부나 일반의 관심은 매우 적었고, 문화예술 업무를 관장하는 주무 부처의 개념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문화정책에 대한 개념이 당시에 없었더라도 어떤 문화공간이나 문화시설은 필요했을 것입니다. 어떤 문화공간이 필요했을까요?

경성부민관, 현 서울시의회 건물

문화예술정책 분야에서 공간.시설 관점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는 4개의 기둥이 있습니다. 공공극장,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입니다. 해방 이후 국립이라는 이름이 붙은 극장, 도서관, 박물관 등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1950년에 국립극장과 국립국악원이 설치되었고, 국립도서관은 1945년 10월15일 서울시 중구 소공동에서 개관했습니다. 당시 상황에서 새롭게 건축하기는 힘들었을텐데, 어떻게 설치되어 개관할 수 있었을까요? 


조선총독부 시절에 사용되었던 공간을 '국립'이라는 이름을 붙혀 전환하였습니다. 당시 해당 건물들은 어떤 곳에 있었을까요? 조선총독부가 있었던 광화문을 중심으로 서울 도심에 있었을 겁니다. 다음 챕터에서 별도로 다루겠지만 현재 서울시의회 건물로 사용되는 건물(구'경성부민관')이 1950년 국립극장이 되었고, 소공동에 있었던(현. 롯데백화점 터) 조선총독부 도서관이 1945년 국립도서관으로 전환됩니다.   


국립박물관은 '국가의 역사와 기억'을 모아두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1945년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김재원 박사를 초대관장으로 12월3일 국립박물관이 경복궁에서 개관합니다. 해당 박물관은 조선총독부박물관(1915년 개관)을 인수하여 개관한 것입니다. 조선총독부박물관은 1926년 경주분관, 1939년 부여분관을 개관합니다. 이 박물관들도 1945년 국립박물관 분관으로 편제됩니다.


그래서 해방이후 초기 국립극장, 국립도서관, 국립박물관 등은 조선총독부의 행정체계에서 운영.관리되었던 것이 넘어오게 됩니다. 관심이 있다면 해당 시점에서의 역사적 사료들을 찾아보시는 것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좋은 영화, 드라마, 공연, 웹툰의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 해방직후, 한국전쟁을 지나 1950대에 여성국극이 성행했습니다. 당시 어떤 공연장에서 공연을 했을까요.

  이 시대의 자료를 찾아 극장, 미술관, 박물관 등에서 삶을 살았던 인물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보세요.

https://www.yna.co.kr/view/AKR20230223104200005?input=1195m



Q1) 공공극장,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 중에 어떤 공간을 주로 이용하시나요?

Q2) 국립 문화공간은 국가의 자부심이 응축된 곳일 수 있습니다. (상상해볼까요) 조선총독부 행정체계에서 운영.관리되었던 공간이 이양될 때, 어떤 문제들을 해결하는 게 필요했을까요? 

      - 경영의 관점, 행정의 관점, 당시 인물에 감정을 이입하여 상상력을 발휘해보는 관점 등 


* 김재원 박사는 해방 후 36세 때 박물관장 자리에 올라, 25년간 국립박물관을 지킨 분입니다.

http://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3488

- 1950~60년대 국립박물관의 인재 양성(장상훈, 국립박물관 아카이브기행)

http://webzine.museum.go.kr/data/vol616/sub09.html


Q1) 고고학이나 박물관학의 전문가는 쉽게 양성되는 게 어려웠을 것입니다. 김재원 관장님 이야기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Q2)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했던, 경험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Q3) 최근 10년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무엇이 박물관에 남겨질까요? 혹은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할까요?

Q4) 100년 후에 '박물관'에 당신의 공간이 생긴다면, 어떤 자료나 이야기가 남겨지면 좋을 것 같나요?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1102082137135


 국립박물관 연혁 및 발자취(1945~1954, 경복궁1기), 바로가기(국립중앙박물관)


S#3. 박정희 정부에서 시작되었던 문화정책은 무엇이 있을까? 

박정희 정부는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후 1979년 10.26 사건으로 대통령이 사망할 때까지의 기간입니다. 60년대와 70년대 대부분이 해당됩니다. 1960년을 지나 1970년 초까지 문화정책은 먹고사는 문제 해결을 위해 우선순위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국가정책이 한 호흡을 돌리고, 1970년대가 되면서 문화에 관심을 갖습니다. 


박정희 정부 문화정책분야에서 가장 크게 보이는 것은 1972년 8월14일 <문화예술진흥법>을 제정한 것입니다. 한국 문화정책의 실질적인 시작점이라고 생각합니다. 1973년 문예진흥사업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할 한국문화예술진흥원(현.문화예술위원회) 설립합니다. 그리고 1973년 10월15일 1차 문예중흥 5개년 계획(1974년~78년)을 수립합니다. 


참고자료 링크1) 문화예술진흥법 기안용지 사본 (출처, 대통령기록관)

참고자료 링크2) 기록을 통해서 본 70년대 '문예진흥 5개년 계획(이영도 국가기록원 학예연구사) 


남산 국립극장(출처, 국립극장)

이 시점 때, 현재 남산 국립중앙극장(1973), 세종문화회관(1978)이 건립되었습니다.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은 문화예술 활동의 지원과 전통문화 계승을 목적으로 우리나라 문화정책의 골격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김정수, 2006). 그러나 박정희 정부의 문화입법은 일제하의 법을 답습했으며, 행정절차법 위주로 정부규제가 강화되어 결과적으로 예술활동을 통제하였다는 비판도 있습니다(오양열, 1995).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121500035

아이러니 한 것은 1972년은 유신 헌법을 선포한 해이기도 합니다. 박정희 정부의 문화정책은 제도적 기반 조성, 민족문화 중흥, 반공이념의 실천 등을 강조하였지만, 정권의 전통성을 확립하기 위한 지나친 심의와 검열로 예술의 창의성을 저해한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유신정부(1972~1979)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심회되어 예술에 대한 정부지원의 기준이 유신이념을 얼마나 잘 구현하느냐에 좌우되었습니다(정철현, 2015).


Q1) 박정희 정부의 문화정책은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과 과로 나누어 본다면, 전체적으로 어떤 해석을 해볼 수 있을까요? 

Q2)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법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참고자료 링크1) 1972년 이후 영화정책 변화와 <수절> 검열자료 (조중형, 2020)

출처 영상자료원 

https://www.kmdb.or.kr/history/contents/3305

- 유신정부 (문화공보부에서) 국가비상사태에 대한 대응으로 영화분야 정책방향 제시 (확인가능)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528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문화정책의 역사'를 다음 장에서 한번 더 다루겠습니다. 

https://brunch.co.kr/@ryujang2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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