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 좀 올리면 안 되나요

샌프란시스코 거리패션

by 류지

한국서는 대도시에서만 살다가 미국에서 작은 소도시에 정착해 십여 년을 살고 나서, 따분함을 참지 못하고 재택근무를 따내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한 지 1년이다. 처음 이사 올 땐 어떻게 해서든 오래오래 살다가 여기서 은퇴해야겠다 했는데 출장 다니느라 몇 달 밖에 살지 않았는데도 벌써 시골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한국 대도시와는 달리 미국 대도시는 나 같은 사람이 살기 힘든 곳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거리에 나가면 바지를 엉덩이 중간쯤에 걸치게 내려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세 명에 한 명 꼴이다. 특히 노숙자들 대다수는 더러운 속옷이 다 드러나게 엉덩이 밑에까지 내리고 다녀서 정말 보는 사람이 고역인데, 글쎄 이게 자유를 상징하는 패션 스타일이다. 미국 감옥에서 죄수에게는 허리띠를 제공하지 않아 바지가 흘러내린 채로 지냈고 이게 90년대 미국 힙합 문화로 흡수되었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 반항과 소수문화를 상징하는 패션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지금은 유행이 지나 소수 하위문화에서만 볼 수 있는 패션이지만 팬데믹 이후로 샌프란시스코에 노숙자 수가 늘어나며 노숙자패션으로 다시 등장했고 소위 '노는' 아이들이 이 패션을 따라 하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몇 블록 걸어 내려가면 노숙자 동네인 텐더로인 구역이 나오는데 이 구역을 지나야 공공도서관으로 갈 수 있다. 가는 길에 온통 바지를 내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고 매일 도서관에 갈 때마다 보고 싶지 않은 걸 봐야 하니 오가는 길이 참 난감하다.


생각해 보면 한국은 패션에 있어서도 보기 좋은 모습을 꾸준히 유지해 왔다. 70년대 미니스커트와 나팔바지부터 80년대 어깨뽕과 메이커 운동복, 90년대 통바지와 헐렁한 티셔츠, 2000년대부터의 다양하게 시시각각 바뀌는 패션 중에 보기 불편한 패션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물론 90년대 힙합이 유행할 때 속옷 밴드가 보이는 패션이 잠깐 유행한 적은 있지만 그 속옷들도 유명 브랜드의 이름이 크게 박힌 깨끗한 고급 속옷이었다. 때 타서 색이 바뀐 더러운 속옷은 단 한 번도 한국 패션에 등장한 적이 없다.


결국 다시 이사를 가기로 결정하고 집을 내놓으며 만난 부동산 관리인은 한때 한국인과 사귀었다고 하며, "한국 사람들, 지나치게 깔끔해요."라고 한 줄 평을 했다. 샌프란시스코 토박이인 그분이 우리 집을 둘러보고 한 말이니 그 '한국 사람들' 범주에 나도 포함이 될 것이다. 여태 만난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이 단 한 번도 거리패션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걸 보면 그들에겐 속옷이 다 드러나는 패션이 익숙하고 평범한가 보다. 한국 사람 눈에 샌프란시스코 거리패션이 보기 힘든 반면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에겐 한국사람들이 결벽증이 있는 걸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문화는 상대적이란 걸 잘 알고 다양한 문화를 알아가는 게 즐겁지만 아무래도 난 불편한 걸 매일 보며 참고 살고 싶지는 않다. 이삿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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