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으로 드러내는 민낯

인간은 자신의 도덕적 수준을 기준으로 타인의 행동을 해석한다

by 류지

몇 년 전 팬데믹 때 처음으로 한국인들이 모인 온라인 채팅방에 가 봤다. 오랜만에 한국말로 수다 떠는 게 어찌나 재밌었던지 몇 군데의 방에 시간 날 때마다 들어가서 수다를 떨었다. 한국의 친목 모임에서처럼 편하게 대화하고 속 이야기도 하면서 한국말로 하는 대화가 고팠었구나 싶었다. 한 번도 만나 본 적은 없지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을 얻었다는 생각에 꽤 오래 채팅방을 드나들었다.


그러나 대화의 시간이 늘 즐거울 수는 없었다. 익명방들이고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다 보니 별별 사람들이 다 들어와서 별별 이야기를 다 늘어놓았다. 글로 쓰는 대화방에서는 아주 점잖고 긍정적인 사람이 음성으로 직접 참여하는 대화방이 열리면 완전히 딴 사람이 되는 경우도 흔했다. 근거 없는 소문이 무성했고 끼리끼리 음성채팅방 안에 모여서 밖에 있는 사람들을 왕따시키는 일도 잦았다. 그런 데 끼지 않으려고 음성대화방에 들어가지 않으니 이젠 내 뒷담화가 판친다는 말이 들려와서 결국 채팅을 끊게 되었다. 어차피 익명이라 쉽게 벗어날 수 있었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거기서 내가 본 것은 다양한 사람들의 민낯이었다. 평생 접해 보지 못한 사람들의 놀랄 만큼 독특한 가치관들이 마치 공통의 가치관을 대변하는 양 대부분의 대화를 이끌었다. 그리고 엄청나게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예외 없이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가치관만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도 불륜관계에 있을 것이라 믿으며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있었다. '인간은 자신의 도덕적 수준을 기준으로 타인의 행동을 해석한다'는 톨스토이의 시각이 옳았던 것이다. 각자의 도덕적 수준은 가늠하기 힘들 만큼 높낮이의 차이가 컸다.


채팅방들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 사실을 잘 모르고 살았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내 주변에 나와 가치관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물론 있지만 대다수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속마음은 알 수 없어도 행동은 도덕적으로 크게 어긋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 채팅방들은 익명이란 가면으로 사회적 가면을 대체했고 그래서 사람들이 숨기고 사는 뒷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공간이었기에 상상도 할 수 없던 이면을 엿볼 수 있었는 지도 모른다.


평생 경험했던 어떠한 인간이나 인간관계에서보다도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모습을 보고 나니 나 자신과 내 인간관계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말과 행동이 그 사람의 인격을 얼마나 드러낼 수 있는지, 사고의 행위와 물리적 행위가 어떻게 연관이 되고 어떤 식으로 정당화되거나 부정될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 인간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이 더 커졌다.


역시 어떤 경험이든 버릴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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