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정의 내릴 수 있는가
한 때 '소확행'이란 단어가 방송마다 등장한 적이 있다. 말 그대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사람들에게 쉽게 각인되었는지 토크쇼, 드라마, 예능, 심지어 뉴스에서 까지 등장해서 하루에 한 번은 듣게 되는 단어였다. 나도 초컬릿 한쪽을 녹여 먹으면서 소확행을 떠올렸을 정도니까. 미국 친구에게 소확행을 풀어서 설명했더니 너무나 감동한 얼굴로 자신도 소확행을 늘 염두에 두어야겠다고 했다. '꽃으로도 때려서는 안 된다'는 말처럼 영어로 번역해 말할 때마다 예외 없이 상대를 감동시키는 확실한 표현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처음 썼다지만 한국인들이 더 많이 사용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매일 듣는 표현이었어서 소확행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몇 년 지나니 내가 그랬나 싶을 정도로 잘 떠오르지 않는 단어가 되어 버렸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다가 갑자기 '유별나다'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고 있을 때 난 사람들이 유별나게 행복에 집착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행복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으면 명쾌하게 하나로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소확행에 열광하고 행복해지려는 욕망을 쫓는 게 내겐 너무 요란하고 유별나 보였다. 행복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우리는 행복에 대해 잘 알고 있는가?
아이들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남편과의 행복을 자랑하는 사람들도 있고 친구들이 많아서 행복하다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다. 동시에 사람들로 인해 받는 상처는 다른 종류의 상처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큰 고통을 느끼게 한다. 자식이 잘 되지 못해 열패감을 갖는 부모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함께 사는 이가 잠시 집을 비우면 혼자 있는 걸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가족이든 친구든 그저 아는 사람이든 사람들과 어울리는 삶은 기쁨과 고통을 함께 동반한다. 사람들은 행복하다 불행하다 반복해 말하면서 더 크고 확고한 행복을 열망하며 살아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난 주변에 사람도 없고 좋아하는 반려동물도 안 키우고 늘 조용한 집에서 조용한 학교에서 점잖은 동료들과 학생들과 시간을 보낸다. 혼자 산책하고 책 읽는 시간이 가장 만족스러운 시간이고 하루 중 소리 내 웃거나 미소를 띠고 있는 시간이 꽤 길다. 그래서 눈가에 웃음으로 생긴 곡선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난 이런 삶이 꽤나 만족스럽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가고 싶다. 그러나 여전히 내가 행복한 지에 대해서는 확답을 하지 못한다. 굳이 행복하다고 말할 필요가 있을까?
문득 책장 위에 있는 난초에서 여러 개의 꽃봉오리가 연둣빛으로 커가고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기대되고 흐뭇하고 살짝 기분이 밝아지는 느낌이다. 지금 행복한지는... 글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