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은 비밀 이야기

내 친구의 안타까운 비밀들

by 류지

토요일 아침마다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바닷가 산책을 하고 함께 커피를 마시는데 거기서 처음 B를 알게 되었다. 친구가 된 지 5년가량 되었고 미국서 사귄 친구들 중 가장 마음이 잘 맞고 대화도 잘 통한다. B는 내게만 비밀을 털어놓는데 지난 토요일엔 자신의 손녀가 입양아이고 손녀 자신만 그 사실을 모른다고 말해주었다. 아들 부부가 몇 년 전 이혼하기 전까지 교도소에 수감된 범죄자들의 오갈 데 없는 자녀들을 위탁받아 돌봤고 그 아이들 중 다섯을 입양했으나 다들 친 부모를 찾아가고 지금은 손녀 하나만 남았다고 한다. 이 아이도 친부모를 알게 되면 떠나갈까 봐 아무에게도 입양에 대해 말 하지 않고 비밀로 한다고 했다. 키가 크고 늘씬한 금발에 초록 눈의 B와 그 아들에 비해 손녀는 키가 작고 까무잡잡해서 손녀가 입양을 눈치챌까 늘 걱정이라고도 했다.


다른 사람들에겐 입이 무거운 B가 가족의 비밀까지 말해주는 걸 보니 꽤나 신뢰받고 있다고 느껴져 가슴이 찡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에 태어난 B는 얼마 전 80세 생일을 보냈는데도 기억력이 남다르고 아주 현명한 친구여서 가끔 내가 잊은 것도 기억하고 알려줄 정도다. 재작년 반려견을 무지개다리 건너로 보낸 이후로 가끔 깜빡깜빡하는 게 걱정이 되긴 하지만 여전히 기억력은 나보다 낫다. 우리는 별의별 이야기를 다 나누는데도 산책할 때 말고 거의 따로 만나지는 않는다. 서로의 집을 방문한 적도 없고 전화나 문자도 일 년에 한두 번뿐이다. 만날 때마다 마음을 활짝 열고 속 이야기까지 다 하지만 우리는 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그래서 서로에게 일관적일 수 있고 더 신뢰하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는 B가 처음으로 자신의 조상에 대해 말해주었는데 놀랍게도 그녀의 증조모가 마녀사냥의 피해자로 처형을 당했다고 했다. 미국의 마녀사냥은 너무나 잔혹한 역사로 마을의 리더들이 똑똑하고 자유로운 사상의 미망인들을 마녀로 몰아 처형하고 그 재산을 몰수해 나눠가졌던 비극이다. 피해 여성들은 보수적인 환경에서 스스로 공부하고 깨달은 지식들을 하층민들과 나누다가 기득권들의 눈에 띈 경우가 많았다.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서 그 피해자들의 후손들은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쉬쉬하며 숨기고 살아간다. B가 증조모에 대해 말해주었을 때 난 그 똑똑하고 자유로웠던 증조모의 유전자가 B에게 그대로 흐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B가 가족 중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손주 며느리, 큰 손자의 네팔인 아내로 손주 며느리 가족과 함께 절에도 자주 간다. 내 가족이나 조상 이야기를 듣기 좋아하고 함께 운동하는 필리핀 친구들과도 각별하다. 각 나라의 전통을 존중하고 문화의 다양성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B의 절친이란 점이 자랑스럽다. 토요일을 즐겁게 기다린다.

작가의 이전글절망도 습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