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 대한 신뢰만이 절망을 밀어낸다
오늘 오후 생각지 못한 문자가 와서 급히 해결해야 할 일이 터진 것을 알게 되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거라 보자마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쩐지 삶이 너무 평온하다 싶더니만... 이런 급작스런 일이 생길 때마다 예외 없이 깜짝 놀라고 급격히 우울해진다.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이런저런 일들이 자꾸 생기고 그런 일들을 처리하는 데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와 비용이 요구된다. 근데 무엇보다도 심리적 타격이 치명적인 것 같다.
한국에서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의논도 하고 함께 해결해 보기도 했으나 미국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만 했다. 처음에 이 나라의 시스템에 대해 잘 몰랐을 때는 일이 터지면 너무 버거워서 다 놓아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피할 수도 없어 아등바등 어찌어찌 처리해 왔고 이젠 무슨 일이든 도움을 청할 생각 없이 그냥 스스로 부딪치고 해결하려 한다. 그동안 노하우도 쌓여서 이전보다는 쉽게 해결이 된다.
그런데도 이렇게 갑자기 일이 생기면 번번이 가슴이 내려앉는다. 아무리 문제 해결에 노련해져도 막상 닥치면 당황하고 절망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문자를 받고는 사는 게 왜 이렇게 고달픈가 생각하며 무작정 밖으로 걸으러 나갔다. 머리가 복잡할 땐 한가한 길을 걸으며 마음을 먼저 진정시켜야 한다.
깊은 우울감 속에 한참을 걸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를 정도로 오래 걷다가 문득 내가 나를 믿는다는 걸 잊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에게는 늘 자신을 믿어라 너는 할 수 있다 이런 말을 되풀이해 주면서도 막상 내게 일이 터지면 그런 말을 나 스스로에게는 안 해주었다. 결국은 다 해결할 것임을 잘 알면서도 왜 매번 내려앉는 가슴을 움켜쥐어야 할까?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대답을 구하니 내가 절망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어떤 일이 예상치 못한 시간에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터질 때마다 예외 없이 절망에 빠졌었구나 싶었다.
내가 나를 못 믿어서 절망했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나를 신뢰하고 어떤 일이 터져도 감당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워낙 많은 일들이 있었고 번번이 당황했고 번번이 절망했어서 이젠 절망이 습관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일이 터지면 먼저 절망에 빠지고 아주 암울한 시간을 보낸 후에 해결책을 찾아내고 해결하는 것에 익숙해졌나 보다.
그걸 깨닫고 나니 가슴이 좀 편해졌다. 여전히 마음은 무겁고 부담으로 꽉 차있지만 깊은 우울에서는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절망은 습관이구나 이제 습관에서 벗어나야 하는구나... 다른 일이 더 이상 생기지 않으면 좋겠지만 분명 또 일이 있을 거고 그땐 오늘 내가 깨달은 걸 바로 기억해 내면 좋겠다. 그리고 평소에 나에 대한 신뢰감을 습관적으로 상기시켜야겠다. 새로운 습관이 절망의 습관을 지울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