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의류가 키워낸 패션감각
난 70년대 초에 태어나 한 번도 교복을 입어 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 때 두발자율화가 실시됐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대다수 중고등학교에서 교복이 없어졌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다시 부활했다. 당시 대통령의 아들 중 내 동갑인 아들이 입기 싫다고 해서 교복이 없어졌다는 루머가 있긴 했지만 왜 없어졌다가 다시 입게 했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한다. 아무튼 교복을 없애지 않고 새로운 디자인으로 교체한 소수의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깔끔한 정장 같은 교복을 입고 다니는 걸 엄청 부러워했었다.
사복을 입으면서 나이키니 아디다스니 하는 브랜드 의류들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그땐 중국산 저가 상품이 보급되기 이전이라 상당한 고가였다. 옷이나 신발 같은 잡화는 주로 시장의 어둠침침한 상점에서 구입하던 시절에 갑자기 형광등을 환하게 켜 놓은 밝고 깨끗한 브랜드 상점들이 등장했고 여유 있는 집 아이들이 브랜드 로고가 찍힌 옷을 입고 다녔다. 아디다스의 삼선 슬리퍼가 실내화로 등장한 게 그때다. 저작권에 대한 인지가 희박했던 시절이었으므로 시장에 '나이스', '아디도스', '게스트'와 같은 짝퉁이 넘쳐났다. 짝퉁 삼선 슬리퍼는 천오백 원이면 살 수 있었고,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나 같은 아이들은 짝퉁을 입고 학교를 다녔다.
청소년들의 자유로운 감성이 사복을 만났으니 시장 패션이나 짝퉁으론 만족하지 못했고 그때 등장한 '명동의류'는 우리의 구세주였다. 브랜드 없는 속칭 '보세' 옷과 신발들이 시장보다 더 싼 가격과 참신한 디자인으로 명동의류 매대에 산처럼 쌓여 있었다. 바느질 처리나 완성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으나 다들 집에서 바느질 정도는 하고 살던 시절이라 사이즈가 안 맞아도 거뜬히 고쳐 입고 폭이나 길이도 마음대로 늘이고 줄여 입었다. 아이들은 유행을 만들어 갔고 명동의류와 그 근처 보세상점들은 그 유행을 만드는 데 모든 재료를 공급했다.
그 후로 사십 년이 흘렀다. 따로 패션에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닌데 내 평생 옷 못 입는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한국의 내 또래 친구나 지인들도 패션의 첨단을 걷는 사람은 몇 안 되지만 촌스럽게 하고 다니는 사람들은 없다. 민감한 감성의 청소년기를 사복의 자유 덕에 명동의류와 같은 패션의 보고에서 보낸 것이 평생의 취향을 결정했고 자연스러운 패션 감각을 얻게 한 것 같다.
뉴스에서 요즘 교복이 60만 원이 넘는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가 댓글에 학부모들이 절대 교복을 폐지해서는 안 된다고 해서 더 놀랐다. 아이들이 비싼 브랜드 의류에 꽂혀 사달라고 할까 봐 반대하는 건 알겠지만, 아이들은 고가의 물건은 쉽게 얻는 게 아니라는 것을 교육받아야 하고 스스로 패션을 알아가는 자유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중고등학교 때 나이스와 아디도스 옷을 입고 다니면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반면에 명동의류의 이천 원 삼천 원짜리 옷들로 내 개성을 만드는 데에서 엄청난 희열을 느꼈다. 청소년들에겐 무엇이든 다양한 체험이 엄청난 가능성을 키우는 씨앗이 된다. 그게 반드시 비용이 든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양한 시도와 창의적인 사고가 요구되는 첨단 과학 시대에 도대체 교복이 웬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