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명작은 막장 드라마

인류는 다들 그렇게 살아갔나 보다

by 류지

내가 다닌 중학교는 역사가 아주 오래된 기독교 여학교였는데 역사에 어울리게 아주 오래되고 낡은 책들이 가득한 도서관이 있었다. 수업을 마치면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가 먼지 쌓인 책들에 파묻혀 닥치는 대로 읽는 게 일상이었어서 누구나 아는 명작 소설은 그때 다 읽었던 것 같다. 몇 권 골라 집으로 가져와 새벽까지 읽다 보면 늘 잠이 부족해 늦는 걸 싫어함에도 아침마다 지각을 했다. 중학생이 소화할 수 없는 별의별 이야기에서 새로운 정보를 흡수하며 신기해했었는데, 세월이 흐르니 읽었다는 사실과 당시의 느낌은 기억나지만 내용이 당최 기억이 안 나는 책이 대다수이다.


성인이 되고는 현대 소설이나 인문학 서적을 주로 읽게 되어 명작소설은 수십 년 동안 꺼내보지 않다가 몇 년 전 우연히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다시 읽고는 내용이 너무나 새로워서 깜짝 놀랐다. 줄거리는 기억이 났으나 등장인물 간의 관계와 각각의 감정 묘사가 얼마나 정교하고 현실적인지 완전히 새로운 책을 읽는 느낌이었다. 어렸을 땐 안나의 사랑과 불륜으로 인한 비극적 결말에 몰입했으나 이번엔 시골지주이자 보수적인 지식인 레빈의 삶에 주목하게 되었고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문학청년의 평탄한 삶을 보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톨스토이의 섬세한 감정 묘사는 레빈의 관점에서 보는 세상을 눈앞에 펼치듯 현실감 있게 보여주어 읽자마자 몰입할 수 있었다.


시대도 배경도 경험도 현대인들과 다른 19세기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세월을 넘어 감동을 주는 이유는 경험의 공유와 이해에서 오는 공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 염상섭의 '삼대'를 읽으면서 이렇게 재미없고 긴 소설이 있을까 싶었는데 오십 대가 되어 읽으니 백회가 넘는 아침드라마를 이어서 보는 느낌이었다. 살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것들이 중학생은 절대 공감할 수 없는 인간관계와 감정의 흐름을 이해하게 했고, 막장 드라마를 욕하면서 끝까지 보듯 긴 소설을 단숨에 읽었다.


'삼대'는 자연스럽게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떠올리게 했고 이 책을 찾아 읽으며 이 대작가가 얼마나 수다스러운 만담가인지 새삼 감탄했다. 도스토옙스키는 마감에 쫓길 때마다 책의 내용을 구술한 걸로 유명한데 길고 긴 장편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도 거의 다 구술로 쓴 소설이다 (나중에 그의 아내가 된 속기사가 들으며 열심히 받아 적었다.) 이번에 책으로 읽다가 중간에 오디오북으로 바꿔서 들어 보았더니 표현들이 훨씬 생생하게 다가와서, 번역을 좀 더 현대적으로 했으면 그대로 라디오 드라마로 방송해도 좋을 정도였다. 삼 형제 각자가 사연도 많고 동시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과 겹쳐져 공감하면서 한심해하면서 끝까지 다 듣고 나니, 왜 도스토옙스키가 속편을 계획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시즌 2가 기대되는 주말 연속극이었다.


얼마 전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다시 읽었는데 히드클리프의 열등의식과 쪼잔함이 너무 두드러져 또다시 막장 드라마가 되었다.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은 예나 지금이나 명실공히 막장 드라마였으나 이번엔 이전에 보지 못했던 엠마의 성격묘사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그다지 다정하지 않았고 남의 감정에 쉽게 움직이지도 않았으니, 시골 출신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그들은 영혼 속에 늘 아버지의 손에 밴 굳은살 같은 것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가 시골의 친척들과 시골에서 온 동기들에게 느꼈던 이질감을 플로베르가 19세기에 이미 표현했던 것인데 어릴 땐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오십대의 명작 읽기는 우리의 삶을 그린 막장 드라마의 발굴이다. 스트레스를 풀고 싶으면 굳이 치정극이나 복수극을 찾아볼 필요 없이 책장 구석이나 헌책방에 반드시 있는 세계 명작을 읽는 걸 추천한다. 라디오 드라마가 그리우면 유튜브에 넘쳐나는 세계 명작 오디오북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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