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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하 Aug 21. 2020

자기 세뇌 : 관계 통제와 자기 감시

집중력과 의지를 장기간 유지하기 위한 기술

정보와 환경을 통제해도 타인과의 관계에 따라 내 의지와 집중력이 부침했다. 공부모임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이나 이미 알던 사람들, 어쩌다 연락 오는 옛 친구나 친척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강렬했다. 고립된 생활 속에서 그들의 말과 행동은 다른 경험 다른 관계로 세척되지 못한 채 머릿속을 계속 부유하면서 집중을 방해했다. 정보 환경을 통제해서 만든 자기 세뇌의 무균실은 타인의 말 한마디에 오염될 정도로 취약했다.


정보와 환경뿐만 아니라 관계도 통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기 세뇌의 기술 중 정보 통제와 환경 통제는 이전 글을 참고해 주기 바란다.




정보 통제나 환경 통제와 기본 원리는 같다. 다만, 관계 통제는 의지와 집중력 유지에 도움이 되느냐 여부로 관계를 정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감시의 내면화가 수반될 때 더 큰 효과를 가질 수 있었다. 앞서 소개했던 정보 통제나 환경 통제는 통제 대상을 구분하기도 쉽고, 나만 자제하면 되니 통제 가능성도 컸다. 감상적인 영화가 문제면 안 보면 되고, 술집에 가서 마음이 심란하면 안 가면 된다. 그런데, 인간관계는 관계의 대상인 상대방을 통제할 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내 공부에 악영향을 미치는 타인들 대부분과의 접촉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먼저, 공부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은 가까이하고, 의지와 집중력을 약화시키는 사람들은 멀리했다. 공부에 방해가 되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과의 접촉은 아예 차단했다.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 내 목표를 존중해주고 신뢰해주는 이들과의 관계만 남겨뒀다. 혼자 공부하던 시기였으니 가능한 방법이었다.


먼저, 휴대폰 번호를 바꿨다. 새 번호는 부모님과 가까운 친구들, 그리고 공부하다가 만난 사람들에게만 알려줬다. 스터디 등 공부 때문에 참여하는 그룹 안에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 있으면 적당한 핑계를 대고 그만뒀다.  대학 동기 모임 같은 공부와 관계없는 모임엔 아예 가지 않았다. 공부 기간 동안 친척들은 보지 않았다. 명절이면 어쩌다 일박이일로 가서 부모님만 뵙고 왔다.


몇 년에 한 번 연락해서는 안부 한번 묻지 않고 자기의 성공을 은근히 과시하면서 내 처지를 걱정해주는 척 대체 언제까지 공부할 거냐고 묻던 옛 친구, 직장을 알아놨으니 공부는 관두고 고향으로 내려오라던 친척, 너한테는 이 공부가 안 맞는 것 같다면서 취업을 하라고 일장 연설을 하던 선배 등은 정말 날 걱정하는 마음에 그랬던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가능성에 대한 의심과 열등감,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가까스로 억눌러가며 공부를 계속하고 있던 당시의 나에게는 큰 상처가 되는 말들이었다.


그들이 걱정으로 포장한 본심은 '넌 안돼' '그렇게나 떨어지고 또 해서 될 거 같냐''주제 파악을 해야지'라는 말 같았다. 내 능력을 불신하고, 내 미래를 부정하는 말로 들렸다. 그런 상처는 오래갔다. 때로는 본심을 최소한의 걱정이나 배려로 포장조차 하지 않은 채, 상대가 어떤 상처를 받을지 뻔히 알면서, 오히려 상처를 줄 목적으로 본심을 내뱉는 악의적인 사람들도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런 상처는 더욱 오래갔다.


그렇게 정리한 관계 속에서 일상적으로 마주치던 공부에 매몰된 타인들의 시선을 혼자 공부할 때도 느끼기 시작했다. 그 타인의 존재와 무관하게 그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스스로를 감시했다. 그들은 실제로 나를 감시한다거나 나에게 왜 더 열심히 못하느냐고 질책하는 존재들이 아니었지만 나는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기 착취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자기 세뇌가 흔들리고 방황하려는 기미가 생길 때면 그들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한동안 그들과 마주치지 않고 홀로 공부할 때에도 스스로를 감시하며 채찍질할 수 있게 되었다.


내공 없이 할 수 있는 공부 모임은 공부를 시작했을 때 잠깐 하고 관뒀다. 그 공부를 이제 막 시작한 사람들은 그전에 나름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자신감이 충만하고, 목표와 자신과의 거리를 아직 몰라서 인지 낙관적인 자기 확신에 차 있는 경우가 많았다. 전의 경험과 습관에서 아직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공부만 하는 단조로운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외로움과 지루함에 결국 같은 처지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공부는 등한시한 채 술만 느는 경우가 많았다. 나도 그렇게 허송세월 하던 시기가 있었다.


내가 세심하게 관리하던 정보와 환경을 침해하지 않고, 내 의욕과 집중력은 북돋워 주고, 스스로를 다잡게 하는 사람들은 공부를 시작하고 몇 년이 지나서야 만나게 되었다. 그때가 돼서야 정보와 환경, 관계를 모두 통제할 수 있게 되었고, 이내 자가 생성하는 불안과 의심 말고는 내 공부를 방해하는 것들이 사라졌다.


관계로부터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는데 몇 년이나 걸린 것은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데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인 것 같다. 공부 습관을 몸에 붙이고 전체적인 내용들을 외우고 익히는 단계가 너무 길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대부분 이 단계에서 방황하고 실패하고 낙오했다. 익힌 바를 자신의 해석과 논리로 풀어내는 단계에 이른 자들은 이미 그 혹독한 과정을 거치고 좌절과 실패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공부에 대한 절박함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말 한마디가 상대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고 그 상처가 공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알아서 타인의 감정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었다. 당시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은 심지어 목표 달성 전까지는 함께 밥을 먹지도 않았다. 함께 하는 공부를 위해 모인 시간이 끝나면 각자의 공부를 위해 급히 돌아가는 관계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나도 의지를 타고난 인간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거의 매일을 혼자 지내는 외로움에 대학 친구들이나 선후배들 모임에도 가끔 나갔었고, 공부할 때 사귄 친구들하고 술을 마시며 공부에서 멀어지기도 했었다. 실패를 반복하면서 스스로를 더 다잡게 되었고, 그런 실패와 반성이 누적되면서 이전에는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었던 일들을 실행하게 되었다.



다음 편은 자기 세뇌 그 이후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공부나 외국어 관련 질문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기 바란다. 가능한 구체적으로 답변하도록 하겠다.

질문이 구체적일수록 답변도 구체적으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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