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통제를 통해 시청각 정보의 유입을 통제하는 데 성공하더라도생활환경으로부터 유입되는 집중력과 의지를 흩트리는 정보들 때문에 자기세뇌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평소의 생활환경과 환경 내의 행위까지도 통제했다.
정보 통제에 대해서는 이전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우리는 우리가 접하는 환경으로부터도 정보를 습득하기 때문에 정보 통제와 방식이 유사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정보통제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유튜브 및 기타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도서 등 우리가 시청각 정보를 접하는 수단을 통제하는 방법에 집중했던 반면, 환경통제는 공간적 측면에서 생활공간, 공부 공간, 여가 공간 등을 통제하고 그 환경 안에서의 행위를 통제하는 방법에 집중했다.
정보통제를 통해 공부에 방해가 되는 정보의 유입은 차단하고, 도움이 되는 정보의 유입은 늘렸다, 한 달 정도 그렇게 하고 나니 어느 정도 공부가 궤도에 오른 것 같았다. 그런데 어쩌다 한번 친구들이 보자고 하는 술집이나 게임방 같은 곳에 가서 웃고 떠드는 친구들과 주위 사람들을 보고 오면 세상천지에 나만 불행한 것 같았다.
내가 이 고생을 왜 사서 하나 싶고, 이미 취업해서 행복하게 잘만 사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도 했다. 물론 당시에 날 뽑아줄 곳도 없었겠지만, 아 다 때려치우고 취업을 할까 등등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정보 통제를 통해 스스로에게 유입되는 정보를 공부에 도움이 되는 정보로만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평소에 멀리하던 자극들을 접한 경우 내 의식에 미치는 영향은 더 컸고 더 오래갔다.
억지로 채식만 하다가 고기 맛을 본 사람처럼 그 생각에 빠져들었고, 공부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그럴 때면 동기부여 영상이나 고난극복물을 시청해서 공부에 도움이 되는 정보의 유입을 늘려 대응했지만, 그렇게 되면 원래 목적인 공부에 투입하는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 주객전도인 상황이었다.
정보통제만으로는 부족하다. 내가 공부하고 생활하는 환경을 통제하고, 가끔이라도 접하게 되는 집중에 방해가 되는 환경을 멀리해야 갰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거주, 공부, 식생활, 여가 등 내가 24시간을 생활하는 공간과 그 공간에서 하는 행위들을 통제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일상을 보내는 공간들을 쭉 나열하고,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는가에 따라 공간들을 분류했다. 집, 학교, 학원, 도서관, 거리, 독서실, 식당, 코인 빨래방, 코인 노래방, 헬스클럽, 가끔 술집, 게임방, 비디오방, 당구장, 카페 등등을 나열하고, 술집, 게임방, 당구장 등 공부에 방해가 되는 정보를 접하게 되는 환경을 멀리했다.
밤새워 칠 정도로 매달렸던 당구, 살다시피 했던 게임방과 비디오방을 가지 않기로 했다. 무슨 운동선수도 아니고 하루에 두세 시간씩 매일 같이 하던 운동도 일주일에 한 번으로 줄였다. 평소 동선은 집, 학원, 도서관 세 개로 정리했다.
그 좋아하던 걸 어떻게 그렇게 딱 끊을 수 있냐고? 한 번에 딱 끊은 게 아니다. 준비하던 시험을 시작하면서 방문 빈도가 조금 줄었고, 한번 두 번 세 번 실패가 누적될수록 절박해져서 인지 자기 통제력이 강해졌다. 그렇게 끊게 됐다.
집에서는 정말 잠만 잤다. 옛 추억을 상기시키거나 해서 공부에 방해가 되는 물건들이 있었지만, 하루에 14-15시간 정도 공부를 하고 새벽 1시쯤 집에 들어오면 빨리 자고 내일도 새벽 6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실제로 커피를 하루에 10잔 이상씩 마시면서 억지로 잠을 줄여서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 도착하면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거주환경에 대한 통제는 환경 자체에 대한 것보다 그 환경 속에서 스스로의 행위를 통제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먼저 냉장고에 있는 술들을 모두 정리했다. 그래 봤자 소주밖에 없었지만 냉장고를 열 때마다 눈에 보이니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 버렸다. 마셔서 버린 게 아니고 정말 집 밖에 내놨다. 눈에 안 보이니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줄어들었다.
나는 술을 너무 좋아했고, 공부하고 돌아오면 적어도 소주 한 병 정도는 마시고 잠들었었다. 거의 이십 대 내내 매일 같이 술을 먹었다. 그걸 준비하던 시험에 몇 번이나 연거푸 낙방하고 나서야 끊었다.
스스로에 대한 통제를 강하게 하고 있다 보니, 음주로 통제의 고삐가 풀리면 감정을 다잡기가 힘들었다. 술을 마신 영향은 다음날까지 이어져서 기억력과 이해력, 집중력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술을 마시면 감성적이 되고 이전에 좋아하던 영화나 드라마들을 찾게 됐다. 나는 잔잔한 때로는 뭐 하러 보나 싶을 정도로 고요한 영화를 좋아하는데 그런 영화들은 감정적으로는 힐링이 되지만 공부 의욕을 떨어뜨리는 감상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원룸에 싱크대 등 취사시설이 있었지만 사용하지 않았고, 빨래는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에만 했다. 세탁물을 널어 말리는 시간도 아깝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독서실 근처의 코인빨래방을 이용했다. 빨래를 넣고 독서실에 가서 공부를 하다가 예상 종료 시간 전에 다시 가서 건조기에 집어넣고 다시 독서실에 가서 공부를 하다가 예상 종료 시간에 빼오는 식이었다.
일주일 동안 입을 것들은 아래위 트레이닝복과 검은색 티로 통일했다. 안 갈아입는다고 해도 아무도 모를 옷들이었다.
청소의 필요성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집에 가면 깔아 둔 이불 안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씻는 행위 이외의 행동은 거의 하지 않았고, 과자처럼 부스러기가 나와서 청소를 하게 만드는 것들을 집에 가져가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냉수에 샤워를 했다. 한 겨울에도 냉수에 했다. 그게 집중력 관리에 좋다고 생각했다. 샤워 도구는 비누만 썼다. 샴푸니 린스니 세안 제니 이것저것 쓰는 것도 복잡해서 정리했다. 20대 초중반에는 그래도 외모 관리도 좀 하겠다고 세안제도 써보고 샴푸린스도 쓰고 했었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싶어서 단출하게 정리했다.
화장품은 로션 하나만 섰다. 존슨즈니 뭐니 큰 거 하나 사다 놓으면 몇 달을 썼다. 그전에는 뭐 티트리니 스네일이니 에센스, 스킨, 오일, 로션, 나이트타임 리커버리 크림에 가끔은 비비까지 발랐었는데 그 시간에 한자라도 더 보자는 생각에 다 정리했다.
독서실 자리에는 공부와 관계없는 것들은 단 하나도 두지 않았다. 자리도 누군가에게 신경 쓰는 일이 없도록 가장 안쪽 구석의 있는 듯 없는 듯한 자리를 이용했다. 독서실 내부 공간도 공부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로 구분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핑계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나 스포츠 경기를 틀어놓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 휴게실에도 가지 않았다. 내 자리와 화장실, 옥상만 이용했다. 옥상은 먼 곳을 바라보는 게 답답함을 풀기에도 좋은 것 같고 정신적 피로감을 해소하는 데에도 좋은 것 같아서 하루에 두세 번씩은 올라갔었다.
집에서 독서실로 이동할 때 등 거리를 걸을 때면 귀로는 외국어 뉴스나 의욕을 고취시키는 음악을 들으면서 눈으로는 바닥을 보거나 사람들 얼굴로부터 약간 위에 시선을 두고 다녔다. 특이한 사람이나 매력적인 이성을 보는 것도 집중력에 영향을 주니 아예 사람들을 안 보고 다녔었다.
정보를 통제한다고 하더라도 환경을 통제하지 않으면 자기 세뇌를 유지하기 어렵다. 환경으로부터도 정보가 유입되어 정보통제 자체에도 구멍이 나게 되고, 정보통제 초기에는 오히려 공부 이외의 정보나 자극에 취약해진 상황이기 때문에 반대 정보에 쉽게 굴복하게 된다.
때문에 자기세뇌를 유지하기 위해 정보와 환경 둘 다 통제해야 했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사냐고? 나도 내가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 줄 몰랐다. 그런 가혹한 정보통제와 환경통제 하에서 2년 가까이 버틸 수 있다고는 생각도 못 했었다.사람이 몰리면 그렇게 하게 되더라.
물론, 자기세뇌법 같은 걸 쓰기 전에 온전한 정신상태로 목표를 달성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내가 스스로를 세뇌할 방법까지 쓴 건 해도 해도 안돼서 이러다가 포기하고 도망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과 이대로 인생 망할지도 모르겠다는 공포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편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편은 관계 통제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공부나 외국어 관련 질문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기 바란다. 가능한 구체적으로 답변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