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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Mar 16. 2021

엄마의 유품을 잃어버렸을 때

생각의 다이어트를 해보자!

  엄마가 하늘로 가고 나서 엄마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도 물론 슬펐지만, 나를 정말로 힘들게 했던 것은 지극히 작은 일에도 비틀거리는 나의 모습을 보는 일이었다. 지금껏 내가 약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피폐했고, 처참했고, 나라는 형체를 잃고 뭉개지고 있었다.      


  나는 아주 작은 일에도 크게 휘청거렸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나를 공격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버스를 타러 갔는데 눈앞에서 버스가 가 버리면 갑자기 눈물이 날 만큼 억울하고 슬퍼지는 것이었다. 또 친구랑 카톡을 하다가 하루나 이틀정도 답장이 없으면 갑자기 내가 싫어졌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우울감에 빠졌다. 지하철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봐도 우리 엄마는 왜 저 나이까지 살지 못한 거지? 하는 원망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고 기분이 좋다가도 내가 이렇게 웃는 것, 기뻐하는 것에 죄책감이 들어 슬픔을 잊고 지낸 시간만큼, 혹은 그 두 배로 지독한 우울함에 시달렸다.      


  엄마가 살아있을 때 특별한 날에만 하던 목걸이가 있었는데 내 눈에도 예뻐서 그 목걸이 나 주면 안 되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엄마는 10년 뒤에 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 목걸이를 사고 1년이 지나 엄마가 하늘로 갔고 나는 그 대화가 생각이 나서 엄마 화장대에서 그 목걸이를 꺼내 내 목에 걸었다. 그리고 엄마 생각이 날 때 마다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작년 11월 저녁, 수영강습을 마치고 노곤해진 채로 침대에 누워 습관처럼 목 언저리를 만졌는데 목걸이가 없었다. 갑자기 눈앞이 아득해져서 벌떡 일어나 베개 주변과 오늘 입었던 옷을 다 뒤졌지만 목걸이는 없었다. 수영장 카운터에 급히 전화를 했다. 그리고 수영장은 이미 마감을 했고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께서 아무것도 못 찾았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눈물이 났다. 엄마의 유품을 잃어버렸다니, 나는 정말 한심하고 나쁜 딸이야.. 수영장에서 악세사리를 잃어버리는 일이 빈번하다는 것을 분명 알았는데. 아.. 빼고 들어갈걸.. 도대체 왜 그걸 안 빼고 들어갔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한 시간정도 울었나? 처음에는 내가 괴로움 한 모금 정도를 마신다고 생각했는데 한 시간쯤 지나니 괴로움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지칠 만큼 울다보니 갑자기 어느 순간 번뜩 정신이 차려졌다. 상황만 보자면 나는 수영장에서 목걸이를 잃어버린 것뿐이었고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생길 수 있는 일이었다. 그게 엄마의 물건이라는 것이 마음이 아프긴 하지만 나는 나쁜 딸도 아니었고 한심한 인간도 아니었다.      


  내가 언제 이렇게 약해졌나, 이대로 나를 내버려두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생각의 다이어트'를 했다. 어떤 상황이 펼쳐지면 그냥 그 상황 그대로만 받아들이고 더 이상 생각 하지 않았다. 엄마 생각이 밀려와서 슬퍼지면 그냥 잠시만 접어두기로 했다. 지금 잠깐 접어둔다고 해서 내가 엄마를 잊는 것은 절대 아니니까, 슬픔을 외면하는 일에 더 이상 죄책감을 갖지 않기로 했다. 엄마의 목걸이를 잃어버린 일은 정말 슬프지만 물건 하나에 너무 집착하면서 내 자신을 갉아먹지 않으려고 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떠올리며 소유할수록 자유와 멀어진다는 말을 되새기기도 했다. 엄마를 보내주듯이 목걸이도 보내주자.. 마음의 자유를 되찾자.. 뭐 이런저런 생각으로 밤새 나를 어르고 달랬다. 그 날 밤 나는 편히 잠에 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수영장에서 전화가 왔다. 목걸이를 보관해 놓고 있으니 찾으러 오라는 전화였다. 삶이 나에게 선물도 주는구나! 만약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목걸이를 꼭 찾아야 된다’고 생각했다면 밤 새 너무 괴로워서 한 숨도 못 잤을 것이다. 그리고 목걸이를 되찾았을 때 행복보다는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을 비우고 작별을 고한 상태에서 다시 목걸이를 돌려받았더니 선물을 받은 것 같이 기쁘고 행복했다. 밤 새 삶을 대하는 자세를 배운 기분이었다. 어제보다 훨씬 행복한 오늘이었다.     


  며칠 전 엄마가 준 그릇을 깼다. 참 예쁘고 아끼는 그릇이었는데.. 엄마가 이 그릇을 주면서 했던 말과 표정이 아직도 생생한데.. 눈물이 찔끔 났지만 참고 바로 ‘생각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나는 그릇을 깼을 뿐이고 새로 사면된다! 엄마가 준 거라 속상하지만 엄마가 준 다른 그릇들도 아직 너무너무 많다!!’ 그리고 바로 네이버를 켜서 그릇을 골랐다. 예쁜 그릇들이 많았다. 새로운 그릇을 고르면서 나는 기분이 나아졌다. 단순하게 생각을 하고 슬픔은 그 순간에서 끝내고, 남은 부분은 행복과 기대, 열정 같은 것으로 채우려고 노력했다.  

   

  엄마를 하늘로 보내고 크고 작은 시련을 이겨내며 나는 나를 키우고 있다. 어르고 달래고, 넘어지면 일으키고, 배고프면 먹이고, 추우면 입히면서 나는 나와 함께 그렇게 자라고 있다. 나는 멋진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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