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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Mar 15. 2021

이혼가정 자녀도 결혼할 수 있나요?

나에겐 아픈 상처가 있는데 과거가 없는 사람은 부담스러워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에서 특히나 이 가사를 좋아한다. 

나에겐 아픈 상처가 있는데 과거가 없는 사람은 부담스러워~


  대학교 때 사겼던 남자친구와 있었던 일이다. 나는 웬만하면 가정사를 숨기지 않는 편이고 가정사 이야기를 할 때 우는 일도 잘 없다. 이상하게 혼자 있으면 눈물이 잘 나도 누구랑 같이 있을 때는 눈물이 잘 안 나기 때문이다. 그 날은 우연히 남자친구와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된 날이었다. 가볍게 맥주를 마시면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빠의 외도, 부모님의 이혼, 이어서 사이비에 빠지게 된 사연을 꺼냈다. 그리고 이혼 가정에서 자라면서 내가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엄마를 보고 싶어 하면서 살아야만 했는지 이야기 했다. 취기가 올라 약간 눈물이 날 뻔 했지만 참았다. 그런 말을 듣자고 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내심 남자친구가 ‘정말 강한 사람이 되었구나, 대단하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해줄 줄 알았다. 그런데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다가 이번엔 남자친구가 자기의 이야기를 꺼냈다. 


  자기(남자친구)가 고등학교 때는 제법 공부를 잘 해서 인 서울 대학교를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수능 날 실수를 많이 해서 성적 맞춰 대학에 간 것이 너무 속상하고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주변 친구들은 서울대, 고려대를 갔는데 그런 친구들을 볼 때마다 자기가 너무 작게 느껴지고 비교가 되어서 아직도 힘들단다. 그 때 그 오빠 나이가 24살 내 나이가 22살이었는데 그 이야기를 하면서 갑자기 대성통곡을 했다. 술은 나보다도 못 마셔서 얼굴이 시뻘개진 채로 그런 말을 하며 우는 남자친구를 보고 있자니 술이 다 깨고 참으로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어느새 내가 남자친구를 안아주며 위로를 하고 있었다. 

  ‘괜찮아, 수능 못 쳐도 괜찮아...’  


  같은 남자친구와 있었던 또 다른 일화이다. 남자친구 부모님을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남자친구네 어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했다. ‘률아, 아빠한테 잘 해. 혼자 키우신다고 얼마나 힘드셨겠어.. 빨리 시험 붙어서 교사 돼야지..’ 어쩌고 저쩌고.. 나는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대충 대답을 하고 나중에 남자친구에게 물어봤다.    

  ‘오빠네 어머니한테 우리 엄마 아빠 이혼한 거 말씀드렸어?’

  ‘응. 엄마가 말실수 할까봐 미리 말씀 드렸어. 잘 했지?’


  이 말을 듣자마자 물음표가 머릿속에 계속 떠올랐다. 말실수라면 무슨 말실수? 이혼가정이 무슨 대수라고 조심하고 말실수를 할 것 까지 있나? 무슨 말을 해야 말실수가 되는거지? 도대체 이혼가정을 뭐라고 생각하길래? 그리고 왜 아빠 혼자 날 키운다고 생각을 한거지? 꼭 같이 살아야만 키우는건가? 콕 찝어 아빠한테만 잘하라는 그 묘한 뉘앙스가 우리 엄마를 애 안키우는 나쁜 사람 취급 하는 거 같던데 내가 너무 예민한건가? 우리 엄마 아빠도 빨리 교사되라는 말 같은 거 안하는데 저 아줌마가 뭐라고 나한테 시험 스트레스를 주지? 지금 내가 자기 아들한테 내가 아깝다는건가? 뭐 이런 질문들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너무 예민했던 것도 맞는 것 같고 저 아줌마가 참 오지랖이 넓었던 것도 맞는 것 같다.


  당시 남자친구는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나이터울이 많은 누나를 둘 둔 막둥이로 자랐다. 부모님은 한시간이 걸리는 아들 자취방에 이틀에 한 번씩 오셔서 밥, 빨래, 청소까지 다 해주고 가시는 자상한 분들이셨다. 그렇게 곱게만 자라서, 그래서 내 마음을 이다지도 몰라주는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아, 그러면 나는 이혼가정에서 자란 남자만 만나야하는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약간 이상한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3살 때 아빠가 바람을 피고 6살에 부모님이 이혼을 하고 사이비에 10년 있다가 나와서 25살에 엄마가 돌아가신 희한하고 박복한 팔자를 살고 있는데 이런 나를 헤아리는 사람을 만나려면 뭐 얼마나 산전수전을 겪은 사람을 만나야되는 것인가?


  아직도 나는 이 생각에 결론을 내지 못 했다. 26살인 나에게 아직은 어려운 주제인 것 같다. 꼭 그만큼의 상처가 있어야 그 사람과 공감할 수 있는 거라면 세상은 너무 잔인하다. 그리고 나는 분명히 나와 똑같은 상처를 가지지 않은 친구들에게도 많은 위로와 따스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고 아무 걱정 없이 화목하고 행복하게만 자란 사람이 나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내면의 상처와 고통을 극복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무게감과 진정성이 있었고 나와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은 그냥 그 사람의 존재 자체로 나에게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런 노래 가사도 있나보다. 


나에겐 아픈 상처가 있는데 과거가 없는 사람은 부담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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