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생사도 알지 못하는 친구가 있다. 그 아이의 엄마는 친구가 어릴 때 집을 나간 뒤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십 수년간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모르고 살다가 우연히 등본을 떼어보고 그래도 ‘어딘가에 살아는 있구나.’ 알게 되었던 날, 친구는 기분이 이상하다며 눈물을 쏟았다고 말했다.
엄마를 보내고 나는 문득 그 친구가 부러울 때가 있었다. 아빠와 엄마 두 번의 이별 중 한 번은 거저 넘긴 거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물론 살아 있는 동안 그 부재를 견디는 일이 죽은 뒤 상실의 아픔을 견디는 것과 맞먹는다는 것을 안다.)
사랑해보고, 잃어도 보고 그러면서 나는 조금쯤 알게 되었다. 사랑에는 많은 고통과 아픔이 따른다는 것을. 사랑은 어디에선가 끊임없이 솟아나는 우물 같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나를 조각내어 누군가를 먹이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랑했던 사람이 사라졌을 때, 조각낸 나 자신이 다 사라져버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아름답지만 그 빈자리를 견디며 아파하는 아픔까지 아름다울 수는 없나보다.
사랑 한 만큼 아프다는 것은 언제나 알 수 있었다. 조금 덜 좋아한 남자친구와 헤어질 때는 눈물 한 방울 안 나오지만, 조금 더 좋아한 남자친구와 헤어질 때는 다만 며칠이라도 더 슬프다. 내 전부였다고 생각한 사람과 헤어졌을 때는 몇 날 며칠을 아무것도 못 먹기도 했다.
엄마의 죽음. 사랑 한 만큼 아프려면 나는 얼마나 더 남은 것일까? 하지만 이상하게 엄마와의 이별을 겪은 뒤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나를 더 많이 조각내어 더 많은 사람을 먹이고 싶다. 내가 전부 다 타버릴 때까지 더욱 열렬하게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