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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Jan 09. 2024

남 일인 양

  세상은 약간 ‘남 일인 양’ 살아야 한다. 뉴스를 보면 하룻밤 사이에도 별의 별 일이 다 일어난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지진이 나기도 하고, 바로 옆 동네에서 칼부림이 나기도 한다. 별안간 심장마비로 죽는 사람도 있고 빙판길에 미끄러져 이가 부러지는 사람도 있다. 기사를 읽는 순간에는 ‘아이고, 어쩐대.’ 하며 안타까워 하지만 창을 끄는 순간 모두 잊는다. 다음 날, 그다음 날까지 기사를 떠올리며 마음 아파하지는 않는다.      


  항공권을 잘 못 사서 90만원 정도를 날리게 생겼다. 항공사와 구매자를 이어주는 중개 사이트를 잘 못 선택했기 때문이다. 저가로 사려고 외국 사이트를 이용했는데, 항공기 시간이 두 번이나 바뀌어 환불을 요청했는데 감감무소식이었다. 이상해서 해당 사이트에 대한 평판을 찾아보니 악명이 높은 곳이었다. 환불은 고사하고 변경도 잘 안되고 해당 사이트를 관리하는 콜센터도 없어서 ai 상담원과 채팅으로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단다. 내 돈을 돌려받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가슴이 갑갑해졌다. 내 돈 90만원은 피 같은 돈이지만 해당 사이트에서 사기를 당한 다른 사람들의 200만원, 300만원은 그야말로 ‘남 일’이었다. 안타깝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창을 끄면 그만이었다.      


  세상에는 ‘내 일’을 ‘남 일’처럼 보았을 때 편안한 일들이 많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어젯 밤 뉴스에서 본 일인 것처럼 대하는 것이다. 한 발자국 물러서면 두 발자국 더 편안하다.

  그렇다고 내 돈 90만원을 포기할 생각은 아니다. 그냥 ‘남 일이다’ 생각하고 여유 있게 해당 사이트 ai와 계속 대화를 해 볼 예정이다. 그것도 안되면 이 방법, 저 방법 다 시도해 볼 생각이다. ‘남 일이다’ 생각하면 과정에서 스트레스도 덜 받고 여유를 가지게 된다. 그러면 일 처리도 더 잘 된다. 꼭 이 일만 아니더라도 모든 일에서 그렇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내야만 할 때, 몸이 아파 수술대에 오르게 되었을 때, 큰 실수를 저질러 상사에게 혼나게 되었을 때 등등. 약간은 남 일같이 모든 일을 대해보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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