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로 말할 것 같으면 아직도 한 해에 열 댓번을 갓을 쓰고 집을 나선다. 화수회, 문중 제사, 시사, 벌초까지 다 쫓아 다니느라 1년 365일이 바쁘다. 칠거지악을 운운하며 여자가 남의 집으로 시집을 가서 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주지 못하면 쫓겨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외친다. 우리 아빠는 그런 남자다.
가족은 그런 속성이 있는 것 같다. 멀어져야 애틋하고 붙어 있으면 한숨 나온다. 방학을 맞아 아빠와 며칠 붙어 있으면 바로 싸운다. ‘밥 좀 달라’는데 나는 그놈의 ‘밥’ 소리에 진절머리가 난다. 남동생 얼굴을 볼 때는 절대 떠오르지 않던 그놈의 ‘밥’이 내 얼굴만 보면 떠오르나보다. 아빠가 좀 차려 먹으라고 대꾸하면 ‘시집 갈 연습 해야지.’ 이런다. 그 저녁을 겪고 나면 나는 보통 다음 날 아침, 자취방으로 올라오곤 한다.
그런 아빠도 요즘은 자아가 충돌하나보다. 내가 결혼 이야기를 꺼냈을 때, 아빠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어김없이 칠거지악을 외치며 남의 집 대를 이어주기 위해 지금부터 몸 관리를 열심히 하라던 아빠는 묵묵히 밥을 먹다 말고 ‘요즘은 세상이 달라져서 여자라고 그런 거 없다며, 오고 싶을 때 오고 가고 싶을 때 가고 하는거’ 라며, 언제든 자유롭게 본가에 오라는 말을 덧붙인다. 제아무리 세상이 변했다지만, 결혼이라는 제도 속으로 걸어 들어가려는 내 다짐에 불안이 한 겹 씌워진다. 아빠의 시원섭섭한 눈빛과 손길이 슬프다.
우리 집은 초상집인데 반해 남자친구네 집은 그렇지 않았다. 나를 정말로 많이 반겨주셨다. 감사하고 황송할 정도로 잘 챙겨주셨다. 딸 가진 집에서는 키워서 내보낸다고 생각하고, 아들 가진 집에서는 새 식구를 맞는다고 생각하니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 같다. 나는 그럴수록 우리 아빠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정말 울고 싶지 않은데, 눈물이 난다. 밥 차려 달라고 할 때는 그렇게 싫던 아빠가, 왜 이리도 내 마음을 무겁게 하는지 모르겠다.
아직 나는 결혼 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일까? 그렇다면 몇 년이나 시간이 더 흘러야 아빠의 눈빛을 뒤로하고 결혼이라는 제도 속으로 성큼 들어설 용기가 생길까? 내가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아직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고 싶은데. 전 세계를 내 두 발로 걸어보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