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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Feb 01. 2024

불길한 예감

  때로는 어떤 불길한 예감이 무서울 정도로 정확할 때가 있다. 내가 기억하는 직감의 순간 그 첫번째는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우리 반에서 남자 애들끼리 싸움이 났는데 주변에 있는 것을 던지며 싸우다가 뒤쪽에 전시해 놓은 누군가의 미술 작품이 망가졌다는 것이다. 나는 친구와 이야기를 하던 중 누군가의 꽃이 망가졌다는 말을 등 뒤에서 들었는데, 순간 왠지 그 꽃이 나의 꽃일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바로 뒤를 돌아 남자 아이들의 손에 들려있는 것을 보았는데, 어김없이 두 동강 난 나의 꽃이었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직감의 순간이다.      


  3년 전 여름, 엄마도 아마 그런 직감을 느꼈던 것 같다. 한 번도 이렇게 아파 본 적이 없었는데. 이상하다. 이건 필시 암일테다, 어쩌면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 하는 직감을. 항암을 하거나 길게 입원을 하게 되면 긴 머리를 관리하기 힘들어질 것 같다며 병원에 가기 전에 길었던 머리부터 짧게 잘랐다. 분명 엄마는 뭔가 불길한 하늘의 계시를 받았던 것이다.      


  어젯 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동생이 근무하는 문경의 한 공장에서 큰 화재가 났다. 낮에 장염이 걸렸다며 침대에 누워있던 동생을 보고 오후에 평택으로 올라왔는데, 밤에 아빠에게 연락이 왔다. 비상이 걸려서 동생이 출동을 했다는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불의 규모를 몰랐기에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밤 11시면 잠에 드는 나인데 왜인지 어제는 잠이 오지 않았다. 시간은 새벽 1시를 넘기고 있었다. 왠지 걱정이 되는 마음에 ‘문경 화재’로 검색을 해 보니 진화 과정에서 소방관 2명(27세, 35세)과 교신이 끊어졌고, 그 중 한 명이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는 내용의 기사가 10분 전에 올라와 있었다. 동생에게 전화를 해보니 핸드폰은 꺼져있었다. 동생이 27살이었다.


  불길한 일에 대한 ‘직감’ 같은 것은 원한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계시’ 같은 거다. 아무 예고 없이 그냥 어느 순간 문득 그런 확신이 든다. 하지만 인간이 불안해지니 누군가의 계시를 받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어쩌면?’ ‘혹시나?’ 하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어쩐지 동생은 아닐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지만 기사에 나온 나이가 나를 매우 불안하게 했다. 나는 자느라 이 상황을 모르고 있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뉴스에 나온대로 상황을 설명해 주고 연락할 수 있는 방도가 있냐고 물었다. 아빠는 곧장 화재 현장으로 가본다고 했다. 그 때가 새벽 2시였다. 


  2시가 훌쩍 넘어 거의 3시가 다 되었을 무렵, 아빠는 동생을 만났다는 연락을 보내왔다. 안도감이 들었다. 동생에게도 연락이 왔다. 불에 들어가면 열기에 못이겨 핸드폰이 저절로 꺼져 연락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순직한 소방관은 동생의 동기였고, 유가족들은 소식을 듣고 ‘오열’하고 있다는 기사가 떴다. 삶은 누구에게나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의 연속이다. 앞으로 나의 삶에는 몇 번의 불길한 예감이 남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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