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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Feb 07. 2024

겨울 튀르키예

남들이 아무리 뭐라고 하건.

  나는 지금 보스포루스 해협을 비추는 햇볕을 쬐고 있다.

  겨울 방학을 맞아 튀르키예에 왔다. 이 곳에 앉아있기까지, 다난했다면 다난했다.


  항공권을 잘 못 산 탓에 두 달동안 환불한 비행기 티켓 값을 기다려야만 했다. '남 일인 양‘ 마음을 비우고 기다렸더니 스트레스는 크게 안받았다. 어찌됐건 환불을 받았으니 됐다.


  막상 2월자 튀르키예 행 티켓을 끊고 보니 주변에서는 겨울 터키 여행은 춥고 흐려서 힘들다,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져서 놀 시간이 짧다, 튀르키예는 여름이 좋다, 등등의 말들을 많이 했다. 나도 그래서 망설이긴 했다. 그래도 나는 튀르키예가 너무나 가고싶었는걸. 해가 짧은 것을 감수하고, 비와 눈이 오는 것을 감수하고 패딩과 우산, 핫팩을 챙겨 날아 온 튀르키예 이스탄불.


  때로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다. 한 달 전부터 튀르키예 날씨를 찾아보며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 이 곳의 날씨는 완벽하다.


아야소피아, 광장

화창하게 맑고 낮엔 덥기까지 하다.(최저 8-최고15)

돌마바흐체 궁전

  해가 짧아 마음껏 늦잠을 자도 일출을 볼 수 있고 저녁을 먹으며 일몰을 볼 수 있다. 여행지에서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늘상 일찍 잠드는 나에게는 일몰이 이른 것 쯤은 전혀 아쉬움의 대상이 아니다.

일출
일몰

  타인에게는 단점인 것이 나에게는 장점이 될 수도 있고, 타인에게는 장점인 것이 나에게는 크게 장점이 아닐 수도 있다. 세상에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가지 사랑의 종류가 있다는 말을 실감한다. 겨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스탄불이라는 도시를 곧바로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튀르키예 하면 ‘카이막’이다. 물소의 젖으로 만든 버터와 치즈의 중간 어디쯤인 튀르키예 전통 음식인데 바게트 빵에 꿀과 함께 발라 먹는 음식이다. 백종원 선생님이 이스탄불에서 먹은 장면이 티비에 나오면서 “천상의 맛”이라고 표현한 이후로 우리나라에도 크게 퍼진 디저트다. 말만 들었지 너무 비싸서 한국에서는 먹어 볼 생각도 못 했다. 알밤 두 개 크기만큼 주고 18000원 이렇게 판다.


  이스탄불에 와서 ‘백종원 카이막 맛집’을 검색했더니 한국인들 후기가 반은 좋고 반은 나빴다. “이게 무슨 천상의 맛이냐?, 아무 맛도 안나는데요, 사장님이 너무 불친절합니다, 다신 안 올 듯.”이런 글을 보자니 딱히 그 가게에 가고싶은 생각이 안들었다. 카이막을 파는 다른 곳들을 찾아 보았으나 숙소에서 거리가 멀거나 kg단위 포장 전용 가게였다. 어쩔 수 없이 ‘백종원’맛집의 카이막 가게를 택했다.


카이막 포장

  한 입 먹자마자 “이건 천상의 맛이네”하고 외쳤다. 빵과 꿀, 부드러운 카이막이 분명 크게 특별한 맛은 아닌데 천상이긴 천상이었다. 커다란 바게트빵은 어찌나 고소하고 부드러운지 카이막과 함께 먹으니 배가 부른 것도 모를 지경이었다. 중간중간 터키 전통 음료인 따뜻한 차이(홍차)를 마시면 쌉쌀한 맛이 혀 끝을 감싸며 카이막의 부드러움과 합쳐진다. 금세 한 통을 싹 비웠다. 단돈 4600원 정도에 커다란 바게트 빵과 소나무 꿀을 곁들인 카이막을 맛볼 수 있다.


  내가 본 것을 믿고 내가 경험한 것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것은 중요하다. 나는 하마터면 겨울의 이스탄불을 못볼 뻔 했고 천상의 맛을 영영 모를 뻔 했다. 앞으로 살아갈 길고 평범한 삶 속에서, 나는 경험으로 지은 탄탄한 집을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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