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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Apr 22. 2021

엄마는 세상에서 누구를 제일 사랑해?

엄마는 엄마를 제일 사랑해

  2017년 엄마와 네덜란드에 갔을 때의 일이다. 반 고흐 미술관 앞에서 긴 줄을 서고 있었다. 끝도 안보이게 늘어져있는 사람들 틈에 껴 줄을 서고 있었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금방 그칠 줄 알았는데 점점 빗발이 거세졌다. 사람들은 하나 둘 우산을 사기 시작했다. 매표소 줄 바로 옆에 잡화점이 있었는데 우산 하나에 30유로(한국 돈으로 약 3만 5천원)정도 했다. 비가 점점 많이 와서 우산을 사볼까 하고 가게로 갔는데, 엄마는 가격표를 보더니 갑자기 비가 금방 그칠 것 같다며 좀 기다려보자고 했다. 나중에 보니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만 우산 없이 오들오들 떨면서 줄을 서고 있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다들 키도, 덩치도 큰데 그 틈에서 작은 동양인 여자 둘이 껴안고 비를 맞으며 추위에 떨고 있자니 갑자기 우리 처지가 너무 처량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또 서로가 무진장 애틋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엄마가 말했다.


  “률아, 엄마가 줄 서고 있을테니까 너는 저 쪽 건물 밑에 가 있어.”

  내가 대답했다.

  “그럴 수는 없어! 나는 엄마랑 무조건 같이 있을거야!” 라고 하며 엄마를 더 꼭 끌어안았다.

  그랬더니 엄마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래? 그럼 엄마가 가 있을게.”

  나는 기가 차서 대답했다.

  “뭐???? 참 나. 엄마가 뭐 이래!!!”     


  엄마답지 않게 웬일로 희생정신을 발휘해 나보고 비를 피해있으라고 말하나 싶었더니만. 두 명이 꼭 한 번에 서 있을 필요는 없지 않냐고, 한 명이 줄을 설 동안 한 명은 비를 피하고 있는 것이 합리적이니 내가 서 있는 동안 자기가 비를 피하고 있겠다는 거다. 그럼 그렇지, 순간 보통 엄마가 된 줄 알고 착각했네! 이런 농담을 하며 한참을 눈물이 찔끔 나도록 웃었다. (그래도 그 날 우리는 보다 비합리적인 쪽을 선택해 비가 그칠 때까지 함께 줄을 섰다.)


  작년엔가, 엄마에게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은 적이 있다. 엄마가 대답했다. “나!”(엄마 본인). 그런 비슷한 대답이 나올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내심 섭섭해서 “힝! 엄마 너무해!” 하고 토라졌더니 엄마가 냉정하게 덧붙였다.

  “너랑은 25년이지만 나랑은 50년인데, 내가 나를 더 사랑하지 누구를 더 사랑하겠냐?”

  “알겠다, 알겠어. 엄마 잘났다!”


  엄마는 엄마답지 않았으며 보통 엄마 같지 않았다. 티비나 영화에 나오는 엄마들과 우리 엄마가 너무 달라서 한 때는 왜 우리 엄마는 저런 엄마가 아닐까 하고 섭섭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 해 보면 엄마가 ‘엄마답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든 이 아픔을 극복하여 행복을 쟁취하려는 나의 모습은 씩씩하며, 독립적이며, 단단하다. 가끔은 나 스스로도 나에게 감동 받을 만큼.

  이것은 ‘엄마답지’않은 엄마, 강단형의 딸이라서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이 날이 바로 반고흐 미술관 앞에서 비를 쫄딱 맞고 다시 햇볕에 바싹 말린 뒤에 잔디밭에 누워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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