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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Apr 23. 2021

자연이 주는 위로

엄마는 논밭을 보면 마음이 편해져

  재작년이었나, 엄마와 함께 사방이 논으로 둘러싸인 벌판 한 가운데에 있는 카페에 간 적이 있다. 8월쯤이었는데, 온 사방에는 초록색으로 짙게 물들어가는 벼들이 생기 있게 바람에 넘실거렸다. 들판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다.


  “률아, 너도 이런 논밭을 보면 마음이 편해져?”

  “응.”

  “근데 참 신기하지, 옛날에 엄마 친구 중에 제주도에서 온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논밭이 아니라 바다를 봐야 마음이 편해진다는거야. 제주도에는 논이 잘 없고 우리는 바다보다는 논밭을 보고 자랐잖아, 그래서 바다가 아니라 논밭을 봐야 마음이 편해지나봐.”

  “진짜 그런 것 같아.”


  나는 아주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하루에 버스가 3대 밖에 안 들어오고 편의점도 아니고 구멍가게만한 슈퍼를 가려고 해도 차를 타고 10분은 가야하는 그런 시골 마을. 클락션 소리보다는 고라니가 우는 소리가 더 익숙한 밤을 보내는 그런 시골 마을. 물론 불편함과 답답함도 많지만 머리가 복잡한 일이 있거나 마음이 힘들 때면 어김없이 나는 산과 밭, 논이 그리워진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나는 자연에서 위로를 많이 받았다. 병원에서 엄마의 시신을 싣고 장례식장으로 가던 길에 나는 유난히 화창한 구름과 햇살을 보며 이상한 기분을 느꼈었다. 나의 세상은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는데 구름과 바람은 이렇게나 아무 일 없다는 듯 평온하다는 것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지면서 희한하게도 동시에 위로로 다가오기도 하는 것이었다. 엄마를 떠나보내고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동안 바람이, 태양이, 달이 나에게 말하는 듯 했다. ‘나는 언제나 여기 있어. 니가 숨을 쉬고 살아있는 한 나는 언제나 이곳에 있어.’


  엄마가 떠났던 7월이 다가올수록 마음속에서 짭짤한 눈물 맛이 느껴지지만 동시에 햇살 한 줌이 내 마음에 퍼진다. 앞으로 길어봤자 100년도 채 되지 않을 나의 남은 생에는 어김없이 매일 해가 뜰 것이고 밤이 찾아올 것이고 봄비가 내렸다가 장마가 찾아 올 것이다.


  지난 주말에 시골에 다녀왔다. 5월의 모내기를 위해 찰랑찰랑하게 물을 대 놓은 논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벼는 올 해도 초록색으로 물들것이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작년 8월 , 아빠랑 논에 갔을 때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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