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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Apr 26. 2021

이혼가정에서 자랐어요. 저를 마음껏 동정해주세요.

동정에 대하여

  내가 다니던 대학교 후문에는 말을 못하는 부부가 와플을 파셨다. 와플을 사러 가서 ‘하나에 천원 맞아요?’ 라고 물었는데 대답을 못하시고 고갯짓과 ‘으으응’ 하는 목소리만 내시는 아주머니를 보며 마음속에 와플 사먹으러 자주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팔아드리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순간 의문이 들었다. 이 마음은 동정일까?


  나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동정에 민감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해서 소풍날에 김밥을 싸가지 못하면 나이가 드신 몇몇 선생님들은 괜히 나의 짝꿍보고 친구랑 김밥을 나눠먹으라는 둥 하는 말을 덧붙이셨다. 초등학교 4학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종례시간에 ‘엄마 없는 아이들’은 잠깐 앞으로 나와보라고 한 뒤 커다란 과자꾸러미를 안겨주신 선생님도 계셨다. 이것 또한 동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중학교 2학년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을 때 호랑이 같던 음악선생님이 우연한 기회로 내가 한부모 가정인 것을 아신 후 부터는 나를 혼내지도, 꾸중을 하지도 않으시고 그저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시기만 하셨다.

  대학에 입학해 과 사무실에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해야할 일이 생겼는데 엄마가 없는 나의 가족관계증명서를 보시고는 엄마가 보고 싶어서 어떡하냐며 눈물을 글썽이신 할머니 조교선생님, 이게 동정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래, 나도 내가 불쌍한 것을 안다. 6살, 부모님의 이혼을 겪으며 말 하지 못 할 마음고생을 많이도 했다. 이혼 가정에서 오는 불안함과 결핍은 생각지도 못 한 곳곳에 있었다. 그것들을 몇 년간 한 입, 한 입씩 주워 먹고 살다 보니 나는 나 스스로가 불쌍히 여겨질 때가 많았다. 하지만 내가 나를 불쌍하게 보는 것은 용납해도 남이 나를 불쌍하게 보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나는 동정에 유난히 민감해졌고 이제 와 생각 해 보면 동정이 아니라 사랑과 관심에 비롯한 마음들도 색안경을 끼고 보아 괜한 상처를 받은 적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 누가 나를 동정하는 거 아니야?’ 하고 날을 세우며 살던 내가 어느 순간 ‘어쩌면 동정도 사랑이지 않을까?’ 하며 마음을 한 뼘 넓히게 되었다. 엄마의 죽음을 겪고 난 뒤 부터다. 비록 어릴 때부터 이혼 가정에서 자랐지만 엄마 덕에 남부럽지 않은 사랑 속에서 자랄 수 있었는데. 나의 인생에서 엄마까지 사라져 버리다니. 나는 모든 것을 잃은 기분이었다. 그 때 나는 나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에게서 무한한 사랑과 보살핌, 관심을 받았다. 나는 그 중에서 동정과 사랑을 분간할 수 없었고 그럴 만 한 상태도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  친구가 나에게 ‘나는 진짜 운이 좋은데,  인생은  이렇게  좋은 일만 생기니?  보고 있으면 너무 안타까워.’라는 말을 했다.  말을 들었을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고 나를 동정하며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루  기분이 찝찝했다. 하지만 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동정이면 어떤가, 그래도  생각해서   말인데  동정 속에 숨어있는 사랑만 받으면 그만이지.


  관계 속에 스며있는 세상의 많은 사랑에는 다양한 성분이 존재한다. 사랑 20%, 동정 80% 위로도, 사랑 90%, 죄책감 10% 사과도, 순도 100% 사랑으로만 구성된 안부인사도 있는 것이다. 나는  중에 좋은 것만 가져다 먹으면 된다.


  와플가게 아저씨에게 가진 나의 마음은 동정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와플을 사먹으러 자주 와야겠다는 마음 그 속에는 와플이 맛있기 때문에, 와플을 좋아하는 동기와 친해지고 싶기 때문에 등 많은 이유와 성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 속에서 밝고 예쁜 마음만 다시 모아 와플을 파는 부부께 드리고 싶다.


  동정에 날 세우며 보냈던 나날에는 나의 인생이 온통 동정으로 범벅이 되어있다고 생각했는데, 동정 속에서 사랑을, 관심을, 위로만 모아 내가 품었을 때 나는 한 뼘 더 넓어진 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말 할 수 있다. 나를 마음껏 동정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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