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유리 Jun 11. 2024

톡 쏘는 수박

  엄마가 생에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은 수박이었다. 그리고 먹기 좋게 요구르트병에 옮겨 담은 뉴케어 한 모금. 그것을 마지막으로 엄마는 제 입으로 씹어 넘긴 음식 없이 일주일 정도를 의식 없이 누워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병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이 채 안되었을 때, 엄마는 시원한 수박이 먹고 싶다고 했다. 당장 수박을 구할 길이 없어 아쉬운대로 병원 1층 편의점에서 팔던 메론을 사왔지만 플라스틱 통에 담겨, 언제 잘렸는지 모를 메론은 수박을 향한 엄마의 갈증을 해소시켜주지 못했다. 갓 가른 ‘진짜’ 수박이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당시 노량진에서 임용고시 공부를 하며 자취를 하고 있었다. 노량진 농협은행 앞에는 혼자 살아서 과일을 사 먹기 힘든 고시생 겸 자취생들을 위해 수박을 바로바로 잘라서 플라스틱 컵에 담아주는 과일 포장마차가 있었는데, 그곳이 번뜩 떠올랐다. 아, 그게 바로 엄마가 원하는 ‘진짜’ 수박이다 싶었다. 삼성서울병원이 있는 일원역에서 노량진역까지는 지하철로 한 번 갈아타면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방금 가른 수박 세 컵을 사왔다.     


   가방에 조심히 넣어 온 수박 세 컵이 시원해지도록 수박을 잠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감격의 첫 입. 엄마는 한 입 먹더니 차가운 것을 먹으니 속에서 안 받는 것 같다며 전자레인지에 수박을 조금 데워달라고 했다. 우습지만 그렇게 했다. 하지만 전자레인지에 30초를 돌린 수박도, 엄마는 채 한 조각을 다 못 먹었다. 그렇게 미지근해진 수박 한 조각을 빼고 온전히 세 컵이 그대로 병실 냉장고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다시 노량진 집으로 돌아왔을 때, 냉장고 안에는 팽팽하게 부푼 수박 세 컵이 있었다. 엄마가 중환자실로 들어가면서 일반병실 냉장고를 비워야 했고 나는 왠지 그 수박을 버릴 수가 없어 일원역에서부터 노량진역을 거쳐 다시 집으로 들고 왔더랬다. 그랬던 그 수박이 이 주 정도 지난 어느 날에는 팽팽하게 부풀어있었다. 엄마가 이 세상에 존재하며 어떤 음식을 간절히 먹고 싶었던 순간부터 땅속에 묻힐 때까지, 겨우 수박이 팽팽하게 부푼 정도의 시간만이 지났을 뿐이었다. 컵 뚜껑을 여니 마치 탄산음료 뚜껑을 열었을 때처럼 김이 빠지는 소리가 났다. 톡 쏘는 수박이 되어있었다.


  계절이 몇 바퀴 돌아 다시 여름이 왔다. 어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수박을 먹는데 약간 톡 쏘는 맛이 났다. 주말에 사둔 건데 벌써 맛이 갈랑말랑이라니, 라고 말하면서 문득 4년 전의 그 수박이 떠오른 것이다. 나는 앞으로 몇 번의 수박이 남아있을까?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작가의 이전글 1등이 아니더라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