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나이가 조금이라도 더 있는 사람이 들으면 우스운 말이겠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도전이라는 것을 할 일이 줄어든다. 도전이란 본디 안 한다고 내 삶이 크게 달라질 것 없고, 어쩌면 무언가 잃을 수도 있을 것만 같이 두려운 느낌을 준다. 하면 좋은 것이야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안 한다고 해서 먹고 사는데 지장 없고, 오히려 편안함을 가져다주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도전할 일이 줄어드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 듯 싶기도 하다.
결국은 출판되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엄마가 출판을 결심한 것도 하나의 도전이었다. 이혼 일대기를 적나라하게 나열해 놓은 그 책이 이 세상에 나왔을 때, 엄마가 걱정한 것은 하나였다. 나에게 흠이 되진 않을까? 혹여 내가 훗날 결혼을 할 때, 남편 쪽 부모님들이 이를 흠으로 보진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가 낳은 딸은 이런 것을 흠으로 보는 사람들과는 본디 어울릴 수 없는 습성을 가졌다고. 엄마는 걱정을 얹은 도전을 내걸었다. 본디 도전이란 그런 것이다.
투지, 도전, 성장. 이런 단어들을 가슴에 품은 인생이 멋지다 여기며 살아왔지만 나도 나이를 먹고 직장을 가져보니 조금은 지쳤다. 평안, 여유, 일상 같은 단어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누군가의 인생에서는 저러한 단어들이 전부일 수도 있다는 것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은 습성대로 사는 것이라고, 나는 엄마의 이혼 일대기를 대한민국 전체에게 낱낱이 드러내는 것도 개의치 않는 습성을 가진터라, 투지와 도전 없이는 인생이 지루하게 느껴진다.
이 모든 생각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부끄럽긴 하지만, 다음 달에 수영 대회를 나가게 되었다. 원래 수영 동호회에서 함께 팀을 꾸려 나가는 1.5km 장거리 수영 대회인데, 남녀혼성 8인 1조로 팀을 짜다 보니 인원이 모자라 동호회 회원이 아닌 나에게도 기회가 오게 되었다. 1.5km를 나눠서 도는 경기겠거니 했는데 알고 보니 8명이 다 같이 1.5km를 완주하고, 38분의 시간제한이 있는 경기였다. 두 번의 공식 훈련에 참가 했지만 나는 살아생전에 그만큼의 거리를 쉬지 않고 돌아본 적도 없고, 롱핀을 사용해 본 적도 없어서 맨 꼴찌로 수영을 하다 중간중간 낙오되기 일쑤였다. 갑자기 배로 뛴 운동량에 너덜너덜해진 어깨를 붙잡고 하룻동안 고민 고민을 하다 결국은 매니저님께 저는 다음번을 기약해도 되겠냐고 연락을 드렸다. 그런데 수영의 목적은 우승이 아니라 즐거움이며, 내가 속한 팀은 완영이 목표이니 걱정 말고 도전해보라고 하셨다.
도전. 그래, 애초에 ‘할 만 한 것’을 두고 ‘도전’이라는 단어를 쓰지는 않는다. 두려움, 걱정, 지금 내게 드는 이런 마음들이 ‘도전’을 앞둔 누군가의 지극히 정상적인 회로이다. 그럴 때면 누구나 다 아는 뻔하디 뻔한 말을 되뇌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No pain, no g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