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역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대방역. 대방역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떨어진 어느 골목 제일 끝에 위치한 원룸에서 나는 3년을 살았다. 2019년 2월, 대학을 졸업하고 노량진 생활을 시작하겠다 다짐했고, 엄마와 함께 집을 보러 다녔다. 그러던 중 골목 끝자락에 위치한 그 집을 만났고, 노량진 치고 넓은 평수와 주변 환경이 조용하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계약을 하기로 하고 부동산까지 다시 차를 타고 왔다. 부동산을 나와 동네를 돌아보다 말고 엄마는 화장실이 급하다며 다시 그 집으로 가자고 했다.
“거길 다시 갈 수 있어? 길 알아?”
“당연하지.”
엄마는 길눈이 밝아 초행길도 감으로 뚝딱 찾아내곤 했는데, 지독한 길치인 나는 늘 그런 엄마가 신기했다.
그 집은 방음이 잘 안됐다. 집과 집이 좁은 간격으로 붙어있기도 했고, 복도도 좁아 앞집과의 거리도 가까웠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화장실에 방문으로 연결되는 문 말고, 다른 문이 하나 더 달려있었는데, 그 문을 열면 바로 복도가 보이는 그런 구조였다. 방음이 잘 되는 문도 아니고 방 문으로 쓰는 나무 문이었는데, 화장실에서 변기 물을 내리거나 샤워를 하면 물 소리가 복도로 생생하게 울려 퍼지곤 했다. 계약할 땐 그 문이 복도로 연결되는지 전혀 몰랐다. 당연히 다용도실이거나 보일러실 정도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사를 하고 난 뒤 그 문을 열어보니 난데없이 복도가 보이는 것이었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이 약하디 약한 문을 통해 괴한이 침입하면 어쩌냐며 엄마를 붙잡고 한참이나 하소연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문 두 개 달린 화장실에서 샤워도 하고, 볼일도 보면서 3년을 꽉 채워 잘도 살았다.)
나는 엄마를 보내고 엄마와 함께 구했던 그 집에서 많이 울었다. 침대에 누워 새우처럼 몸을 구부린채로. 푸르스름하게 동이 트는 순간까지 밤을 새워 울거나,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울다가 다시 잠들었다. 나의 원룸 구조는 현관문을 열면 바로 침대가 보였다. 가뜩이나 방음도 안되는데, 현관에 가까이 붙어있는 침대라니. 나의 울음소리는 밤이고 낮이고 복도에 울려 퍼졌을테다. 간혹 울다가 생각하기도 했다. 현관 밖 사람들이 나의 울음소리를 듣고 무슨 일인가 하여 들여다봐주지는 않을까, 그래 준다면 나는 그 혹은 그녀의 품에 안겨 울어야지. 그때의 나는 무척이나 외로웠다. 거미줄에도 따뜻함을 기대하고 싶었다.
커다란 상실을 몸으로 떠안아 보고 나면 인간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조금씩 더 따뜻해지고, 부드러워지고, 주변을 살피게 된다. 언제, 어디에선가 무척이나 외로운 누군가를 마주했을 때, 지체없이 내줄 한 뼘의 따뜻한 자리를 준비한 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