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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Jul 23. 2024

빵으로 행복 채우기

호미탐 소보루빵

  내가 다니는 헬스장 맨 아래층엔 빵집이 있다. 아직 공실이 많은 새 건물이라 어떤 빵집인지 눈여겨 본 적이 없었다.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고 엘리베이터로 바로 올라가니 빵들의 모양새를 볼 틈도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타기만 해도 향긋한 빵 냄새가 솔솔 올라오니 ‘아, 이 건물에 빵집이 있구나.’ 한 정도였다. 원래 빵에 관심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고, 빵이나 피자, 국수같은 밀가루 음식에 환장을 하는 나다. 운동하자고 온 헬스장에서 굳이 빵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이 이상해 일부러라도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노력했더랬다.


  어느 주말, 느즈막이 운동을 하려고 헬스장에 갔는데 오픈 시간이 10분 조금 넘게 남아 들어갈 수 없었다. 어둡고 더운 로비에서 기다리느니 커피라도 한 잔 할까 싶어 처음으로 1층으로 내려가보았다. 그렇게 탄 엘리베이터, 빵 향기가 무지막지했다. 분명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시작했는데, 홀린 듯 빵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침 9시. 빵이 갓 나오기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어느 누가 이 향기를 거부할 수 있었을까?


  빵들을 쭉 둘러보다가 발견한 몽블랑. 설탕 시럽에 절여진 페스츄리를 겹겹이 떼어 먹는 빵이다. 방금 구워진 윤기가 줄줄 흐르는 자태가 참 아름다웠다. 커피랑 먹으면 정말 맛있을 것 같아 집어들었지만, 당과 밀가루때문에 혈당 걱정에 양심에 조금 찔렸다. 그래서 양심상 샌드위치를 하나 더 골랐다. 그리고 계산대에 가서 계산을 하려는데 방금 나와서 미처 가판에 올라가지 못 한 빵들이 미친 자태를 뽐내며 줄지어있었다. 그 중 대파와 크림치즈가 뒤섞여 빵 사이에 쑥쑥 들어앉아있는 빵을 발견했다. 빵의 겉면은 계란을 펴발라 내 얼굴이 비칠만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나는 샌드위치를 제자리에 갖다 놓고 그 빵을 집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완성된 나의 아침 한 상 차림.


허겁지겁 먹다가 찍어서 조금 지저분하다.

  대파와 그림치즈, 체다치즈가 뒤섞인 것이 빵과 함께 내 입 안에 가득 찰 때 나는 인생이 꽉 차게 행복함을 느꼈다. 커피 한 모금에 빵 한 조각, 단 두 가지가 인생 행복의 필요충분조건 전부였던가. 운동복 차림으로 빵집에 앉아있는 나의 모습이 조금은 우습게 느껴졌지만 그래서 더 행복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헬스장으로 가려다 빵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그 ‘예상치 못 함’이 우리의 삶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주니 말이다.


  알고 보면 행복은 도처에 널려있다. 때때로 보물찾기의 작은 쪽지처럼 숨겨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한 조각의 퍼즐처럼 도무지 찾을 수 없는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지만, 숨겨놓았던 보물찾기 쪽지가 예상치도 못 한 곳에서 툭 튀어나오듯, 앉아있던 방석을 뒤집으니 퍼즐 한 조각이 또르르 굴러 떨어지듯,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면 결국은 다 있다. 숨겨진 듯 아닌 듯 한 일상 속 행복을 누가 얼마나 잘 찾아내며 살아가느냐, 그것이 삶의 부피를 좌우하는 것 아닐까?


  아, 저 아름다운 빵들을 파는 빵집 이름은 ‘호미탐’이다. 저 맛을 잊지 못하고 다음 날 또 배달 시켜 먹었다. 혹시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 빵을 좋아하는 분이 계시다면, 호미탐에 꼭 방문해보길 바란다. 대파크림치즈 빵도 맛있지만 다음 날 배달시켜 먹었던 소보루빵이 정말 맛있었다. 요즘 같이 화려한 빵이 많은 와중에 소보루 빵이라니, 전혀 특별할 것 같지 않은 맛이지만 아주 심플하게 맛있어서 계속 생각나는 맛이다. 꼭 한 번 드셔보시길 바란다. 소보루 한 입에 커피 한 모금, 그 정도면 하루 치 행복을 채우기에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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