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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Jul 11. 2024

엄마와 딸, 그 무서운 관계

  나는 뭐 얼마나 오래 살고 싶은 건지 몸에 좋은 것을 살뜰히도 챙겨 먹는다. 술이나 맵고 자극적인 음식같이 몸에 안 좋은 건 멀리하려고 노력한다. 너무 과하면 독이라는데 운동도 쉬지 않고 한다. 근력 운동도 하고 유산소도 하는데 아무래도 나는 유산소 체질인 것 같다. 며칠 전, 수영 대회 준비로 훈련을 하다가 어깨 부상을 입어 물리치료를 다니는데, 수영 금지령에 찌뿌둥한 몸을 못 견디겠어서 하체를 주로 쓰는 런닝에 손을 뻗은 참이다.     


  요즘은 또 혈당에 대한 잡지식을 주워듣고는 식후 10분 걷기, 밥 먹을 때는 야채부터 먹기와 같은 것들을 실천하고 있다. 아침 공복에 탕비실 과자로 배를 채우지 않으려고 채소를 갈아 만든 쥬스를 교무실에 두고 먹는다. 밀가루와 당류를 멀리하기 위해 감자, 고구마, 단호박 같은 간단한 간식을 직접 찌거나 삶아서 간식으로 들고 다닌다. 직장 동료들은 젊은 나이에 건강 엄청 챙긴다며 웃는다. 맞다. 뭐 얼마나 오래 살려고 열심히도 건강을 챙긴다. 그리 오래된 습관은 아니다. 엄마가 49세의 나이에 암으로 갑자기 죽게 되면서 생긴 습관인데, 사실대로 말했다간 분위기가 싸해질까봐 굳이 말은 않는다.    

 

  엄마를 닮은 머릿결과 속눈썹, 입술 모양새와 같은 ‘보이는 것’ 말고도 엄마는 나의 엄마이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도 많이 닮아있었다. 엄마의 말투, 생활 습관, 사고방식 같은 것 말이다. 전에는 엄마가 낳았으니 닮았고, 같이 살았으니 닮았다 생각했지만, 요즘 생각해보면 서로가 눈물 나게 사랑했으니 닮을 수밖에 없기도 하겠다는 생각이다. 엄마는 나의 ‘엄마’이기에 태초에 나의 생을 만들었고,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닮게 했고, 죽고 나서까지 나의 삶을 거의 통째로 바꾸었다. 인간이 다른 한 인간에게 이토록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관계가 또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엄마와 딸의 관계는 어쩐지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훗날 나의 딸과 마주할 순간이 두려워 지금의 나를 고쳐먹게 된다.      


  엄마도 각종 운동을 쉬지 않고 했고, 몸에 좋다는 식이요법을 늘 달고 사는 사람이었다. 이혼 후 혼자서 돈을 벌고 아이까지 키우는 상황에서도 틈틈이 짬을 내서 헬스장에 다녀오거나, 뒷산에 올랐다. 엄마와 나는 단둘이 장기 여행을 자주 다녔었는데, 지루한 비행기 안에서나,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에 ‘서로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아는지’에 대한 퀴즈를 내면서 놀곤 했다. 엄마는 ‘엄마가 한국에 돌아가서 제일 하고 싶은 것은?’이라는 문제를 낸 적이 있는데 답은 등산이었다. 그만큼 엄마는 운동을 좋아했고, 잘하기도 했다. 


  또 엄마는 탄산음료, 맵고 자극적인 음식, 술, 휴.. 다 나열하기도 힘들다. 그냥 몸에 안 좋은 음식이라 하면 다 멀리하고 살았다, 그랬던 엄마가 그렇게 일찍, 40대엔 잘 걸리지도 않는다는 췌장암 말기로 죽었을 때 나는 ‘건강을 챙기는 행위’에 큰 회의감이 들었다. 엄마가 했던 그 모든 노력이 과연 효과가 있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죽기 전에 진탕 술을 마시지 않은 것이, 맵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을 절제하며 살아 온 것이 억울하진 않을까 싶기도 했다.      


  내키는 대로 막 살다 죽어버릴까 생각했던 때도 있었으나, 나는 20대부터 건강 챙기는 성인으로 성장했다. 엄마가 먹고 있을 때는 ‘저걸 무슨 맛으로 먹나’ 싶었던 슴슴한 콩국수, 초장에 찍지 않은 브로콜리를 좋아하게 되었고, ‘저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었던 ‘직장에 도시락 싸서 다니기’를 지금 내가 하고 있다. 퇴근 후 가방에서 고구마를 쌌던 호일을 정리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지금의 나를 본다. 어쩌면 엄마는 나의 시작이었고, 과거였으나 현재이며 미래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엄마도 엄마의 엄마를 보며 이 사실을 깨달았었을까? 물어보고 싶지만 엄마가 없다. 어쩌면 한 대가 죽어야만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엄마와 딸 그 무섭고도 두려운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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