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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4주 5일차

by 비유리

임신 4주차,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곤 악착같이 먹는 것 밖에 없다. 0.07mm 민들레 홀씨만 한 작은 씨앗이 나를 무섭게도 배고프게 한다. 요즘은 입안에 어떤 것을 넣어도 과하게 맛있게 느껴지는 나머지 혀가 춤을 추는 기분이 든다. 야채는 야채대로 고기는 고기대로 맛이 좋다. 밥을 먹고 나서 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속이 허한 기분이 든다. 아침 공복에는 현기증이 나서 침대에서 일어나면 세상이 짧게 핑글 하고 돈다.

이렇게 빨리 아이를 가질 계획은 아니었는데, 지난달 초에 나라에서 검사비를 지원해 준다길래 준비하는 마음으로 산전 검사를 했다. 폐경이 빨랐던 엄마를 닮은 탓인지 짧은 생리 주기 탓인지 혹은 둘 다인지, 남은 난자의 갯수를 통해 측정하는 ‘난소 나이 검사’에서 나는 본래의 나이보다 8살이 많다는 결과를 듣게 되었다. 어차피 아이를 가질 계획이었다면 1년 뒤, 2년 뒤가 아니라 지금 당장 시도하라는 의사의 소견이 따랐다.


엄마는 종종 나에게 남편은 없어도 자식은 있어야하지 않겠냐는 소리를 했다. 진담인지 농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랬다. 미혼모로 임신을 한다 해도 지우지 말고 낳으라고, 엄마가 다 키워주겠다고 했다. 이젠 미혼모가 될 일도, 엄마가 내 아이를 다 키워줄 일도 없지만 엄마의 그 말을 들었을 때부터 나는 언젠가 꼭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은 채 살아왔다. 엄마가 죽은 뒤로 그 소망은 더욱 짙어졌다. 언젠가 딸을 낳아 그 아이에게 나의 엄마같은 엄마가 되어주겠다는 다짐은 생각만으로 나를 촉촉하게 눈물 고이게 만들었다. 나는 진심으로 아이가 갖고 싶었다.


운이 좋게 한번의 시도만에 임신에 성공했다. 도무지 생리통과 구분을 할 수 없이 싸르르 아픈 복통에 진통제를 미리 먹으려던 찰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해 본 테스트기에 분홍색으로 올라오는 두 줄을 보고 나는 왈칵 울음이 터졌다. 내 몸안에 새로운 생명이, 정말 새로운 생명이 자리를 잡고 있는건가? 난생 처음 보는 테스트기 위의 두줄에 손이 떨려왔다. 믿을 수 없었고, 아직도 썩 믿어지지는 않는다. 그날 오후 바로 산부인과로 달려갔지만 아직 너무 초기라 아무것도 볼 수 없다고, 열흘정도 뒤에 다시 오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기다리기를 일주일 째, 이번 주 수요일이 병원에 가는 날이다. 7주차에 심장 소리를 듣고도 유산이 되는 일이 많다고 하니, 아직 4주차인 나는 안정기에 들어서려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하지만, 그래도 이 순간의 나의 감정과 생각들을 기록하고자 이렇게 글을 쓴다.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이 나를 무한히 행복하게 만듦과 동시에 불안에 떨게 만든다. 갖은 상념에 꿈자리가 사납길 2주째다. 유산을 하면 어쩌지? 아이가 건강하지 않으면 어쩌지?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에 머리가 아플 때도 있다. 너무 사랑하면 약자라 했던가, 세상에 내가 이토록 사랑하는 것이 생겼다니,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도 기대고싶을 만큼 약한 약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이 아이가 12월에 건강하게 세상에 태어난다고 해도, 그렇지 못한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 내 몸에 심긴 0.07mm의 작은 씨앗으로부터 시작된 나의 모든 변화를 생생히 기억하고 싶다. 과연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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