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집안에 엄마와 아빠만 살고 나는 엄마의 뱃속에 있던 시절에. 엄마는 나를 기다리며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을 먹었을지 궁금해진다. 아들을 원했던 아빠는 본인의 바람대로 당연히 아들일거라 믿으며 아들에게 줄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본인이 원한다고 세상 일이 다 본인 뜻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닌데, 논리가 통하지 않는 어떤 세대에는 자기가 원하는대로 당연히 모든 것이 굴러갈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버젓이 딸로 태어난 나에게 당연히 너는 아들일 줄 알았고, 그러길 원했다고 말하는 아빠, 그러고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60이 된 지금까지도 모르는 아빠. 그런 가부장이 징그럽다.
아빠는 친손주도 아니고 외손주이기에 내가 가진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 별로 개의치 않아하는 듯 보였으나 아들이라고 하니 좋아하는 눈치였다. 결혼 전부터 ’시집 가서 아들을 못 낳으면 쫓겨나니 몸 관리를 하라‘며 뭐든 잘 먹으라던 아빠였기에 내가 결혼을 하자마자 바로 아들을 가진 것이 아빠를 매우 안심케 할 법도 했다. 하지만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미래의 남동생의 첫 아이가 아들이기를 바라는 아빠의 마음은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동네 개도 알 만큼 투명한 사실이라 내가 가진 아이가 딸이든 아들이든 크게 개의치 않아 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자체가 나에게는 굉장히 생경하게 다가왔다. 친손자 아니고 외손자라 이거지. 출가한 딸이 낳는 자식은 더 이상 이 집 식구가 아니라 남의 식구라 이거지. 하지만 그 모습이 나에겐 묘하게 땡큐다. 나는 평생토록 그 집에서 분리되고싶었다.
결혼 전, 내가 대학생이 되고 집에서 나와 살기 시작하고부터 명절 연휴가 시작될때면 아빠는 ‘집에 언제 오냐’며 전화통에 불이 나도록 연락을 해댔다. 스무살, 스물 한 살쯤에는 직행 버스가 없어 4시간, 5시간이 걸리도록 버스를 갈아타며 집에 내려갔고 별달리 전을 부치거나 송편을 빚지는 않았지만 명절 아침이 되면 새벽같이 일어나 여자들만 모여있는 부엌으로 가 그곳이 내가 본래 있어야 할 곳인 양 여겼다. 20명 가까이 되는 일가 친척들의 상을 차리고 모자란 반찬이 있으면 날랐다. 물도 제 손으로 못 떠다 먹는 사람들이다. 남자들은 거실 큰 상에 앉아서 중간 중간 ‘물! 젓가락’ 같은 단어를 외치며 조기 몸통을 발라 먹으면 여자들은 부엌에 앉아 전 끄트머리와 조기 대가리를 먹는다. 놀랍게도 내일 아침에도 우리 집에서 펼쳐질 장면이다. 이제 내가 그 곳에 없어도 더이상 아빠의 전화가 오지 않는다니, 출가외인이란 얼마나 가볍고 자유로운 것인가? 웃음이 비실비실 난다.
내가 십수년간 제사상에 오를 음식을 나르고 제삿밥을 푸고, 식구들이 빠져나간 자리께를 돌며 바닥을 닦고 발바닥에 붙은 밥풀을 떼어낼 동안 남동생은 한 번도 나와 같은 일을 한 적이 없고, 지금도 하지 않는다. 내가 ‘출가 외인’이 됨으로써 더이상 그 일을 하지 않게 된 것이 불만인 그는 전 날 친구들과 밤이 새도록 술을 먹고 새벽에 들어와서 다음 날 아침 제일 늦게 일어나,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을 하는 양 거들먹거리며 절을 두 번 정도 하고 남자들이 먹는 상에서 차려주는 밥을 먹는다. 밥을 다 먹으면 자연스럽게 마당으로 나간다. 상 차리기와 치우기, 바닥을 쓸고 닦는 일 같은 것은 당연히 제 일이 아니라고 여겨 왔으며 그렇게 교육 받아왔다. 아빠는 아들을 그렇게 키웠다. 그들은 당연히 하지 않는 일이, 나에게는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었고, 그것을 불만으로 삼을때면 태초부터 내가 가지고 태어나야하는 미덕었던 양 아빠와 남동생은 나에게 죄책감 같은 것을 불어 넣었다. 정상이 아닌 사람만 있는 곳에서 그것이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을 외칠 때마다 나는 마치 일제에 맞서는 독립 투사라도 된 양 너무나 괴로웠고, 이제는 더이상 투쟁할 일이 없어졌음에 이것이 진정 독립의 기쁨이누나, 한다.
‘만약’이라는 가정은 세상에서 제일 의미 없는 일이라지만, 엄마가 조금만 더 사람 보는 눈을 길러 아빠가 아닌 다른 정상인(혹은 아빠보다 정상인에 가까운 사람)과 결혼을 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그런 이야기를 엄마와 해본적이 있는데, 그랬다면 나를 낳지 못했을 것이기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진정 아빠 때문에 삶이 폐허가 된 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존재만으로 그렇게 말해주는 엄마가 신기하고 또 고맙다. 그런 엄마를 떠올리며 조용하게 맞는 연휴의 아침, 진정 대한 독립 만세, 홍률 독립 만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