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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따라하기

by 비유리

출산 휴가에 들어온 나는 요즘 미싱을 배우고 있다. 엄마한테 배웠으면 돈 안들이고 했을텐데. 청개구리같은 나는 자라는 내내 집 안에 작업실을 두던 엄마가 있을 때는 미싱을 배울 생각조차 하지 않더니 엄마가 죽고서야 갑자기 돈까지 주면서 미싱을 배우게 되었다. 집 안 구석진 곳에 재봉틀과 넓은 탁자, 각종 다리미와 재단용 가위, 천들을 쌓아둔 선반. 천들 사이에서 날리는 먼지와 각종 실밥들로 쿰쿰한 냄새가 나던 엄마의 지나간 작업실들이 그립다. 기름진 재봉틀 끝에 꽂힌 뾰족한 바늘에 찔릴까 무서워 그걸 만져 볼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던 날들이 몹시 그리운 요즘이다.


아직 겨우 초급반을 듣고 있는 나지만, 배운 것을 조금 아는체 해보자면 어떤 것을 만들든 바느질을 처음 시작하는 지점과 끝내는 지점에는 되박음질이라는 것을 해야한다. 바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세네땀정도 뒤로 갔다가 앞으로 오는 되박음질의 과정을 통해 바느질 시작부분의 땀이 벌어지거나 튿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끝낼때도 마찬가지이다. 끝까지 왔다고 그냥 바늘을 빼버리면 실밥을 짧게 정리하는 과정에서 올이 풀려버릴 수 있기 때문에 세네땀정도의 후퇴를 통해 바느질을 겹쳐서 탄탄하게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 같은 초보는 아직 일직선으로 박는 것이 어려워 왔던 곳에 정확히 겹치도록 되박음질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천이 두껍거나 손으로 잡고 있을 천의 공간이 부족할 때 그렇다. 어떤 때는 되박음질하는 것을 까먹어서 나중에 실밥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투둑 하고 뜯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꼭 다시 박아주거나 손바느질로 마무리를 해주어야 한다. 조금은 귀찮은 과정이다.


엄마의 육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상태겠지만 엄마가 만들어주고 간 나의 옷들, 커튼, 방석같은 것들은 아직 그대로다. 쓰다보면 낡아버릴 것 같아 엄마가 죽고부터 하나의 상자에 담아 시간의 흐름을 멈추어 두었다. 미싱을 시작하고 문득 엄마가 만들어 준 방석이 생각이 나 꺼내보았다. 노루발 간격으로 일자 반듯하게 박은 엄마의 바느질, 시작점과 끝나는 점을 알아보기도 힘들만큼 정교한 되박음질에 감탄을 하고 그런 엄마가 멋있게 느껴졌다.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나의 옷을 만들어 입혔던 우리 엄마. 어린이집 원복부터 시작해 내 졸업 연주회 드레스와 노량진 자취방 커튼과 베개 커버도 엄마가 만들어 준 것이었다. 한 살부터 스물 다섯살까지 엄마가 미싱 앞에서 만든 수많은 나를 위한 작품들에는 모두 되박음질이 되어있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눈물을 참을 수가 없다.


나는 왜 미싱을 배우게 되었을까, 이렇게라도 엄마가 했던 것들을 따라해 보고 싶었다. 재봉틀 페달을 밟으며 엄마가 그 앞에서 보낸 수백, 수만 시간을 느껴보고 싶었다. 책상에 가위를 대고 사각사각 천을 가르며 재단하는 소리, 스팀 다리미의 스팀 버튼을 누르면 나는 구수한 냄새, 신경을 놓고 있으면 어느새 옷가지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실밥의 모양새. 미처 지우지 못한 초크의 흔적과 떨어진 빨간 머리의 시침핀을 줍는 행위까지, 미싱 앞에서 일어나는 그 모든 일들이 나에게는 향수이자 엄마를 느낄 수 있는 방도였다.


훗날 내가 죽고 난 뒤, 나의 자식이 내가 했던 것들을 똑같이 따라해본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이상하다. 나를 이렇게 사랑하여 두고두고 나를 그리워하는 존재를 남겨두고 떠나야만 하는 세상의 순리가 미우면서도, 나에게도 그러한 존재가 생긴다는 자체가 두렵고 경이롭다. 엄마도 몰랐겠지, 서른살의 내가 엄마가 만든 방석의 바느질을 눈으로 샅샅이 쫓아가며 감탄하고 있을 거라고. 그래서 배가 잔뜩 부른채로 미싱 공방에 나가 세 시간씩 미싱을 밟고 있을 거라고.


나는 앞으로도 갖은 수를 써서 평생 엄마를 그리워하며 살아갈테다. 그것이 아마도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였을까?


직접 만든 티슈 케이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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