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 정신

by 비유리

남편의 성과 나의 성, 그리고 엄마 이름 중 한 글자를 넣어 아들 이름을 지었다. 이름 그렇게 짓는 것 아니라며 세상의 모든 순리와 논리를 들어 나를 나무라는 아빠의 질책이 가상하였지만 나의 고집을 바꾸게 하진 못했다. 남들은 뭐라 생각할지 몰라도 내가 생각하기엔 볼수록 예쁜 이름이다. 아기를 창조한 사람과 그 창조한 사람을 창조한 사람의 흔적이 있는 이름이라니, 명리학이니 사주팔자니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일단 멋있다고 생각한다. 엄마 이름의 나머지 두글자 중 한 글자는 훗날 있을지 없을지 모를 딸의 이름을 위해 남겨두었다. 그것은 내가 결혼도 하기 전에 이미 정해진 일이다. 이미 죽은 사람이지만 그 이름이 흔적을 남겨 앞으로 몇십년 정도는 세상에서 더 불릴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의 위로가 된다. 나만의 애도요 그리움의 발산이다.


아빠는 이혼당하기 딱 적합한 가부장제와 유교사상을 숭고히 모시며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어른들의 뜻에 따라 이름을 짓지 않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표했다. 알아듣고 싶지도 않고 알아 들을 수도 없는 사주팔자 용어들을 가지고 와서 이름은 그렇게 짓는 것이 아니라고 미간을 구기며 훈수를 두었으나 설득력이 매우 떨어졌다. 나의 이름도 고심의 고심을 거쳐 아빠가 지은 이름이지만 내 인생은 갖은 분투가 뒤따르던 그야말로 기구절창한 인생이었다. 사주팔자에 맞게 좋은 이름 지어주면 뭣하나, 아빠가 불륜을 저지른 그 순간부터 나의 인생도 꼬이기 시작한 것을. 그러니 나는 이름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주팔자도 명리학도 아닌 부모의 성정이라는 생각 하나로 그 이름을 밀어부쳤다. 적어도 우리 집 남편은 불륜을 저지를 것 같진 않고 그러니 나의 아들 인생은 그렇게 기구절창할 가능성이 하나라도 줄었으니 말이다.


성평등의 실천과 더불어 가부장제의 대항으로 나의 아들에게 나의 성을 주고싶었으나 그것은 실패했다. 실패의 과정을 모두 나열하기에 아직 우리나라의 복잡한 남성 및 가족구성원 중심의 사회의 배경을 모르는 이 없을 것이므로 생략하겠다. 때때로 엄마는 나에게 ‘강률’이라고 부르곤 했고 아빠는 이러한 사실에 매우 분기탱천 했더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바꿀 수 없는 사실은 내가 엄마의 뱃속에서 열달을 키워졌고 탯줄로 한 테 묶였던 한 몸이라는 사실이다. 내 성을 못 주었다고 해서 내 아들이 아닌 것은 아니니 나의 성을 이름 두번째에 넣는 것으로 나의 신념을 대충 매듭 지었다. 결혼이라는 제도 앞에 어쩔 수 없는 가부장제에 대한 순응이었지만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언젠가 내가 딸을 낳는다면 그 딸이 살아갈 세상은 여자의 신념을 펼치기에 조금 더 쉬운 세상이 되어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흐르는 세월을 기다려본다.


지독하게 따라오는 훈수 덕에 내가 지은 이름으로 출생신고를 하고도 3주가 다 되어서야 아빠에게 나의 아들 이름을 밝혔다. 이름을 듣더니 한자는 뭐냐고 물어왔다. 엄마 이름에 들어가는 한자가 들려와 쎄한 느낌이 들었는지 수화기 너머에서 잠시 침묵이 돌았고 나는 그 침묵이 고소했다. 엄마에 대한 사랑이 뭍으로 드러날수록 동시에 아빠의 과오가 선명해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탓일까? 과오가 부끄러워 머쓱함을 숨기려는 목적인지, 사실은 엄마 이름에 들어가는 글자가 소스라치게 못마땅한 것이면서 아빠는 시부모님에 대한 예의와 명리학을 들먹였다. 아빠는 늘 그랬다. 좁디좁은 아량으로 나에게 있어 엄마라는 존재를 일평생 인정한 적이 없다. 아빠가 미워하는 엄마를 나도 똑같은 강도로 미워하길 바랐다. 그 속을 모를 줄 알고? 나는 본심을 숨긴 잔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이미 출생신고를 끝낸게 맞냐고 되묻기를 서너번 했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자식이 엄마를 사랑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것을 거스르려는 것은 잔인한 처사다. 아빠는 불륜이니 폭력이니 하는 본인이 저지른 잘못의 종류가 치졸한만큼 그 잘못의 원인을 엄마에게로 돌리려고 했다. 동시에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을 숨길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건물 사이에 핀 장미처럼 나는 엄마를 사랑했고 그토록 사랑해 마지 않은 엄마의 흔적은 나의 자식에게도 뿌리를 내렸다. 지구가 멸망해도 그 사랑만은 길이 길이 기억되길.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기 키우기